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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니들이 괴수를 알아?…괴수영화 알파와 오메가

등록 2007-08-06 09:00

심형래 감독 ‘디-워’에 등장하는 이무기
심형래 감독 ‘디-워’에 등장하는 이무기
거대 존재의 파괴 자체가 매력…미 ‘킹콩’ 일 ‘고지라’ 대표주자
한국 원조는 62년작 ‘불가사리’…침체 벗어나 다시 대중 곁으로
<괴물>이 1300만명을 불러모으더니 심형래 감독의 <디-워>도 흥행몰이 조짐을 보이고 있다. 1일 개봉한 <디-워>는 4일까지 모두 220만8000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나흘 만에 200만명을 넘겼다. 한국 영화사에서 한때 사라졌던 괴수 영화들이 2000년대 들어 부활하면서 대중들의 폭넓은 관심을 끌어모으고 있는 것이다.

괴수영화의 고갱이는 상상속 생물을 좀더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데 있다. 인간보다 월등한 존재가 주는 경외감, 괴수들이 벌이는 파괴행위 자체가 매력이자 볼거리다. 현실에서 볼 수 없는 쾌감을 주기에 괴수라는 소재는 영화 제작자와 관객을 이끌어 왔다. 괴수물은 영화산업이 구현할 수 있는 상상력의 최대치를 보여주는 갈래가 됐다. 또 성공한 괴수들은 시대별 사회별 공포를 대변하기도 한다. 한국에서도 <괴물>과 <디-워> 이전부터 괴수영화들이 갸날프게나마 면면한 흐름을 이어왔다.

일본 영화 ‘고지라 대 메카고지라’에 등장하는 고지라(왼쪽)
일본 영화 ‘고지라 대 메카고지라’에 등장하는 고지라(왼쪽)
일본 ‘괴수’ 대 미국 ‘몬스터’ 영화사에서 최초의 괴수영화는 프랑스의 조르주 메리에스 감독이 1912년 만든 <극지 정복>로 알려졌다. 그렇지만 괴수영화의 종주국은 킹콩을 둔 미국과 괴수의 왕 고지라가 있는 일본이다. 1933년 메리안 쿠퍼가 감독한 <킹콩>은 괴수 영화의 대표적인 고전이다. 일본에서는 1954년 혼다 이시로 감독이 만들어 첫선 보인 <고지라>가 일본 괴수영화를 대표한다. 고지라는 2004년 <고지라:파이널 워즈>까지 모두 28편 시리즈를 이어가고 있는 경이로운 캐릭터다. 고지라와 함께 거대한 거북이 가메라는 일본 괴수 캐릭터의 양대 산맥을 이룬다.

일본에서 괴수가 특별히 사랑받게 된 것은 고지라가 원자탄 피폭을 경험한 일본 사회의 불안과 두려움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고지라는 수소폭탄 실험으로 탄생한 돌연변이 괴수로, 인간의 오만을 심판하는 신으로 상정돼 있다. 영화 속에서 고지라는 거의 자연 재해로 그려진다. 인간들은 고지라에 대항하기 보다는 어떻게 피해를 줄일 수 있을지 고민한다. 고지라는 어떤 공격을 받아도 물러서지 않고 도시를 완전히 파괴한 뒤 유유히 사라진다.

반면에 킹콩은 문명과 자연의 대결구도를 도드라지게 보여주며, 결국 인간에게 응징당하는 존재다. 미국의 몬스터들은 킹콩처럼 실제 동물이 거대해진 경우가 많다. 물론 미국 괴수들 역시 밑바탕엔 과학의 오남용에 대한 공포도 깔려있다.

왕성하게 외국의 독특한 캐릭터를 빨아들이는 할리우드가 일본의 대표 괴수 고지라를 수입해 만든 영화가 롤란트 에머리히 감독의 <고질라>(1998)다. 거의 신이어야 할 고질라가 총알 따위를 요리조리 피하더니 인간에게 응징당하고 마는 식으로 바뀌어 골수팬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피터 잭슨 감독의 ‘킹콩’
피터 잭슨 감독의 ‘킹콩’

한국의 괴수들 1960년대만 해도 한국은 일본과 비교해도 크게 떨어지지 않는 괴수물들을 만들었다. 가장 오래된 작품으로는 김명제 감독의 남한판 <불가사리>(1962년)가 꼽힌다. 최무룡과 엄앵란이 주인공을 맡았고 억울하게 죽은 청년이 쇠를 갈아먹는 괴수로 다시 태어나 복수를 한다는 이야기다. <대괴수 용가리>(감독 김기덕·1967년)는 작은 모형을 활용하는 등 본격적으로 특수효과를 쓴 한국 괴수 영화의 고전이다. 배우 이순재씨가 용가리에 맞서는 우주비행사로 나왔다. 이 영화를 다시 만든 것이 심형래 감독의 <용가리>다. 1967년에는 <우주 괴인 왕마귀>(감독 권혁진)도 같이 나왔다. 외계인이 지구를 정복하려 선발대로 보낸 왕마귀를 거지 소년과 비행기 조종사가 쓰러뜨린다. 거지 소년은 왕마귀의 귓속에 구멍을 내어 괴수를 물리친다.

그러나 한국 괴수영화는 1970년대 들어 오히려 조악해졌다. 그나마 ‘이무기’가 나오는 영화들의 원조랄 수 있는 <용왕삼태자>(1977)가 이 시기 주요 영화로 꼽힌다. <디-워>의 이무기처럼 생긴 용들이 싸우는 내용이다. 1976년에는 한-미 합작영화인 <킹콩의 대역습>이 선보였는데 이야기가 희한하다. 거대한 고릴라가 인천항구에 도착해 난장판을 만들더니 미국 여배우 마릴린을 잡아 서울의 한강까지 치고 올라간다. 폴 리더가 감독하고 조춘, 이낙훈 등이 출연했다. 80년대는 기술 수준으로 보나 제작 편수로 보나 한국 괴수 영화가 기진맥진한 시기였다. 특히 <비천괴수>(1984년)는 일본 울트라맨 시리즈에서 괴수 장면만 따다 한국 배우와 합성해 ‘필름 훔치기’라는 비난을 샀다. 70~80년대 한국 괴수영화가 거의 궤멸한 까닭은 사회적으로 군사독재 시절이라 미신 등 현실과 동떨어진 것들이 타파 대상으로 몰렸고, 영화산업적으로는 할리우드와 기술 격차가 크게 벌어지면서 할리우드 대작들이 한국 괴수물을 대체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북한에서 신상옥 감독이 만든 <불가사리>(1984)가 괴수물의 명예를 유지했다. 지주의 압제에 견디지 못한 농민들이 봉기를 일으키고 쇠를 먹는 괴수 불가사리가 농민 편에 선다. 나중에 불가사리는 토사구팽이 되는 비운을 맞는다.


이어 90년대는 영구아트무비가 <영구와 공룡 쭈쭈>(1993년) <티라노의 발톱>(1994년) <용가리>(1999년) 등을 만들며 괴수 영화의 명줄을 이어갔다. 글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도움말 괴수영화동호회 ‘빅몬스터’(cafe.naver.com/bigmonster)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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