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회 부산국제영화제가 4일 저녁 부산 수영만 요트경기장 야외상영관에서 개막된 가운데 이를 축하하는 불꽃이 밤하늘을 화려하게 수놓고 있다. 12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영화제에는 64개국 275편의 영화가 해운대와 남포동 일대 34개 상영관에서 선보인다. 손홍주 <씨네21> 기자 lightson@cine.com
독주 굳히는 부산…뒤쫓는 홍콩·도쿄
부산, 홍콩, 도쿄. 아시아에서 영화제 삼국지를 벌이고 있는 세 도시다. 현재 강자는 자타공인 부산이다. 방문객수를 따져 봐도 부산 16만~20만명으로, 도쿄와 홍콩의 6만~10만명을 압도한다. 영화제의 영향력을 가늠하게 하는 월드프리미어(세계 첫 상영작) 작품수로 겨뤄도 부산이 올해 66편, 홍콩은 16편이었다. 20일부터 열리는 도쿄영화제는 프리미어를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 12회째인 부산에 견줘 31회째인 홍콩, 20회째인 도쿄의 내공을 얕잡아 볼 수는 없는 형편이다. 최강 부산을 겨냥한 경쟁 영화제들의 행보가 최근 빨라지고 있다. 홍콩영화제(아래 왼쪽 사진)는 올해 ‘아시아영화상’을 만들어 흥행 몰이에 나섰다. ‘동쪽의 칸’을 모토로 삼은 도쿄영화제(아래 오른쪽 사진)는 부산보다 1~2주 늦게 열렸는데, 내년부터는 일정을 한달 정도 앞당겨 부산보다 먼저 행사를 벌일 예정이다. 무엇보다 두 영화제는 각각 중국과 일본이란 거대한 시장이란 배경을 무기 삼아 영화를 사고파는 마켓에 활력을 불어넣어 경쟁력을 강화하려고 애쓰고 있다.
아시아영화상 만들어 흥행몰이 나서고
필름마켓·투자포럼 옮겨와 시너지효과 부산영화제(윗 사진)라고 가만히 있을 턱이 없다. 1977년부터 독보적인 지위를 누렸던 홍콩영화제나 막대한 자본을 앞세운 도쿄영화제를 후발주자면서도 따돌린 부산이다. 올해도 아시아 영화인들 사이 네트워크를 다지는 갖가지 프로그램을 내놓고 있다. 부산의 일등 굳히기와 홍콩·도쿄의 추격전, 경쟁은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홍콩의 화려한 변신
올해 3월 홍콩영화제의 레드카펫은 어느 때보다 화려했다. 첫 아시아영화상 시상식이 열려 류더화, 와타나베 겐, 임수정, 정지훈 같은 스타들이 대거 참석했다. 이 행사는 홍콩무역발전국이 전폭적으로 지원한 것으로, 눈길을 잡아 축제 분위기를 띄우는 데 성공했다.
필름마켓 활성화 위해 일정 앞당겨
부산과 영화선점 경쟁 치열해질듯 홍콩의 변화는 이 뿐만이 아니었다. 원래 홍콩영화제와 따로 6월에 열리던 필름마켓을 영화제 기간으로 끌어왔고, 이름도 엔터테인먼트 엑스포라고 바꿔 음악·영화·이벤트 등을 모두 끌어 모았다. 부산의 감독과 투자자를 이어주는 ‘부산프로모션플랜’(PPP)처럼 감독의 프로젝트를 산업계에 소개해 투자 유치를 돕는 ‘홍콩 아시아 필름 파이낸싱 포럼’(HAF)도 영화제 기간으로 옮겨왔다. 프로젝트 선정도 영화제 쪽과 긴밀하게 협조하기 시작했다. 임지윤 부산프로모션플랜 실장은 “에이치에이에프는 명망 있는 중화권 감독을 중심으로 한 프로젝트에서 강세를 보이고, 피피피는 전체 아시아를 포괄하고 신인을 발굴하는 데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영화제가 생기기 전까지 홍콩영화제는 탄탄했다. 그러나 김지석 부산영화제 수석프로그래머의 말처럼 “안정적인 것이 치명적”이었다. 비슷한 지역, 비슷한 성격의 부산영화제가 생겨 피피피 등 산업적인 측면과 연계해 치고 나갈 때 홍콩은 움직이지 않았고 쇠락으로 이어졌다. ‘아시아의 할리우드’였던 홍콩 영화계가 퇴보한 것도 영화제 침체와 맞물렸다. 하지만 지금 홍콩은 거대한 중국 시장을 발판 삼아 아시아 영화를 세계에 알리는 최대 관문의 지위를 탈환하려고 적극적인 모색을 하고 있다.
명당 찾는 도쿄영화제
요즘 부산영화제 관계자들의 관심은 내년 도쿄영화제가 9월 며칠로 옮겨갈지에 쏠려있다. 강적인 베니스와 토론토영화제를 피해야하니 9월 하순밖에 적당한 날짜가 없다. 이 시기는 역시 에이급 영화제인 산세바스찬과 일정이 겹친다. 도쿄가 산세바스찬이라는 강적과의 접전을 마다하지 않고 굳이 일정을 바꾸려하는 까닭은 필름 마켓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10월 말에 시작하면 바로 뒤에 열리는 11월 아메리칸필름마켓에 주도권을 빼앗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도쿄영화제는 2004년부터 영화뿐만 아니라 애니메이션, 게임까지 모든 부문을 다루는 마켓을 두 개 운영했는데 올해는 이를 합쳐 ‘도쿄 콘텐츠 페스티벌’을 시작한다. 2005년부터는 부산의 피피피와 비슷한 ‘도쿄프로젝트 게더링’에도 발동을 걸었다. 임지윤 실장은 “일본의 강점인 애니메이션 등을 중심으로 프로젝트를 꾸려갔는데 지난해부터 국제적 사업을 꾸려나갈 태세를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부산과 도쿄의 좋은 영화 끌어오기 경쟁은 더 치열해질 듯하다. 김지석 수석프로그래머는 “지금은 같이 제안하면 8:2 정도로 (감독들이) 부산을 많이 선택한다”며 “하지만 도쿄영화제는 큰 시장을 갖췄기 때문에 그렇게 마다하기 어려운 유혹일 것”이라고 말했다. 예산 규모만 따지면 영화마켓을 빼고 부산영화제는 57억원, 도쿄영화제는 79억원 정도로 추산된다.
아시아영화펀드로 시나리오 개발지원
배우 네트워크 구축·필름 수집 본격화 도쿄국제영화제는 화려하게 출발했지만 초기부터 정체성을 못세우고 흔들렸다. 쇼치쿠, 도에이, 도호 등 일본 3대 주요 영화사 직원들이 영화제 사무국을 꾸릴 정도로 입김이 셌다. 주요 영화사 홍보에 도움되는 작품들만 뽑는가 하면 할리우드 대작영화를 틀고 스타 모셔오기에만 관심을 쏟아 점차 시들어갔다. 하지만 2003년부터 집행위원장을 바꾸고 본격적인 변화의 움직임을 보여오고 있다.
일등 굳히는 부산
올해 부산영화제 상영작은 그 어느 때보다 많은 275편이다. 부산의 목표는 예나 지금이나 ‘아시아 영화의 허브’다. 올해도 이를 위한 새로운 프로젝트들을 선보였다. 시나리오 개발비부터 지원해주는 아시아영화펀드를 만들었다. 배우들의 성장을 북돋우려고 아시아 연기자 네트워크도 발족했다. 필름과 자료를 수집 보관하는 아시아 필름 아카이브도 올해 영화 80편을 수집한 것을 시작으로 살을 찌워갈 계획이다. 올해 10년째를 맞는 피피피는 초기에 지아장커 등 중국 제6세대 감독들을 발굴하며 뿌리를 내려갔다. 200편을 선정해 모두 88편을 완성하는 성과를 냈다. 영화 인재를 키우는 아시아 필름 아케데미도 운영중이다. 모두 부산을 아시아 영화의 구심점으로서 부산을 지탱하는 든든한 버팀목들이다. 김동호 집행위원장은 “홍콩무역발전국이나 일본 정부에서는 부산영화제를 앞지르기 위해 대폭 지원을 해주고 있어 부산영화제도 한시도 방심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면서도 “처음부터 아시아의 신인감독을 발굴하고 아시아의 영상 산업을 지원한다는 일관된 목표를 꾸준히 발전시켜왔기 때문에 현재 확고한 기반을 구축했고, 장기적으로 아시아 영화산업을 주도하는 영화제로 나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글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홍콩국제영화제 홈페이지. 〈씨네21〉 등 제공
필름마켓·투자포럼 옮겨와 시너지효과 부산영화제(윗 사진)라고 가만히 있을 턱이 없다. 1977년부터 독보적인 지위를 누렸던 홍콩영화제나 막대한 자본을 앞세운 도쿄영화제를 후발주자면서도 따돌린 부산이다. 올해도 아시아 영화인들 사이 네트워크를 다지는 갖가지 프로그램을 내놓고 있다. 부산의 일등 굳히기와 홍콩·도쿄의 추격전, 경쟁은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홍콩의 화려한 변신
올해 3월 홍콩영화제의 레드카펫은 어느 때보다 화려했다. 첫 아시아영화상 시상식이 열려 류더화, 와타나베 겐, 임수정, 정지훈 같은 스타들이 대거 참석했다. 이 행사는 홍콩무역발전국이 전폭적으로 지원한 것으로, 눈길을 잡아 축제 분위기를 띄우는 데 성공했다.
부산과 영화선점 경쟁 치열해질듯 홍콩의 변화는 이 뿐만이 아니었다. 원래 홍콩영화제와 따로 6월에 열리던 필름마켓을 영화제 기간으로 끌어왔고, 이름도 엔터테인먼트 엑스포라고 바꿔 음악·영화·이벤트 등을 모두 끌어 모았다. 부산의 감독과 투자자를 이어주는 ‘부산프로모션플랜’(PPP)처럼 감독의 프로젝트를 산업계에 소개해 투자 유치를 돕는 ‘홍콩 아시아 필름 파이낸싱 포럼’(HAF)도 영화제 기간으로 옮겨왔다. 프로젝트 선정도 영화제 쪽과 긴밀하게 협조하기 시작했다. 임지윤 부산프로모션플랜 실장은 “에이치에이에프는 명망 있는 중화권 감독을 중심으로 한 프로젝트에서 강세를 보이고, 피피피는 전체 아시아를 포괄하고 신인을 발굴하는 데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배우 네트워크 구축·필름 수집 본격화 도쿄국제영화제는 화려하게 출발했지만 초기부터 정체성을 못세우고 흔들렸다. 쇼치쿠, 도에이, 도호 등 일본 3대 주요 영화사 직원들이 영화제 사무국을 꾸릴 정도로 입김이 셌다. 주요 영화사 홍보에 도움되는 작품들만 뽑는가 하면 할리우드 대작영화를 틀고 스타 모셔오기에만 관심을 쏟아 점차 시들어갔다. 하지만 2003년부터 집행위원장을 바꾸고 본격적인 변화의 움직임을 보여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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