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랑’]영화
서울 홍대앞 거리에 ‘제비다방’이란 곳이 있습니다. 낮에는 ‘롸일락 피자’, ‘토마토 설탕’ 같은 특이한 음식을 파는 카페지만, 밤이 되면 간판을 ‘취한 제비’로 바꿔 답니다. 매일 밤 실력있는 밴드들의 라이브 공연과 술자리가 이어집니다. 천재시인 이상이 일제강점기에 운영했던 다방에서 이름을 따왔는데 ‘놀고, 먹고, 꿈꾸는 곳’이란 콘셉트로 색다른 문화공간을 찾는 이들한테는 이미 잘 알려진 곳이기도 합니다.
‘제비다방’은 매달 마지막주 일요일 ‘제비극장’으로 특별한 변신을 합니다. 평소 접하기 어려운 단편영화들을 무료로 만날 수 있습니다. 부푼 꿈을 안고 복학했지만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 복학생을 다룬 3분짜리 영화 <족구왕>이나, 록 콘테스트에서 13번째 떨어진 밴드 ‘락닭’이 존 레논을 닮은 외국인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락닭> 같은 영화들입니다. 대형 극장처럼 시설이 잘 갖춰지지 않았지만, 단편영화제 같은 곳을 제외하면 일반 관객들과 만날 기회조차 없는 저예산·독립영화 제작·연출자들한테는 오아시스 같은 공간입니다. 지난달에는 최시형 감독의 장편 독립영화 <경복>을 상영했습니다. 영화 배급을 맡은 상상마당 케이티앤지(KT&G)가 독립영화 관객을 위한 ‘유쾌한 선물’이란 취지로 무료 상영을 제안해 이뤄졌습니다.
‘제비다방’ 오상훈 사장은 “문화 다양성 측면에서 대중들과 접촉할 기회가 박탈된 영화들과 이런 영화를 사랑하는 관객들이 만날 기회를 동네 극장이 먼저 만들기 시작해보자는 취지”라고 말합니다.
서울 옥인동에는 비영리영화관 ‘옥인 상영관’이란 곳도 있습니다. 동창 남자 다섯이 부암동에 모여 술 마시다 “술 마시는 것 말고 재밌는 거 없을까” 의기투합해 만든 곳입니다. 주말마다 <화창한 날>(김인근 감독), <빈센트>(류창우 감독) 같은 단편영화를 틉니다. 이렇게 규모가 아주 작지만, 지역 주민들과 밀착한 영화관들을 ‘마이크로 동네 극장’이라고 부릅니다. 동네 어귀에서 맥주 한잔과 영화 한편을 만날 수 있는 극장, 근사해 보입니다.
홍석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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