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음악·공연·전시

야심찬 K팝 프로젝트들, 그러나 말하지 않는 것들

등록 2016-01-29 20:11수정 2016-01-30 10:27

참여형 아이돌 그룹, 성장형 아이돌 그룹은 ‘무한경쟁’이라는 시스템 안에서 작동한다. 아이돌 그룹 멤버들이 어떤 노동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지도 대중과 함께 이야기해야 한다. 엠넷의 <프로듀스 101>의 한 장면. <엠넷> 갈무리
참여형 아이돌 그룹, 성장형 아이돌 그룹은 ‘무한경쟁’이라는 시스템 안에서 작동한다. 아이돌 그룹 멤버들이 어떤 노동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지도 대중과 함께 이야기해야 한다. 엠넷의 <프로듀스 101>의 한 장면. <엠넷> 갈무리
[토요판] 안인용의 ‘좋아요’가 싫어요
1월27일, 에스엠엔터테인먼트(이하 에스엠) 이수만 회장은 에스엠타운코엑스아티움에서 개방성과 확장성을 내세운 새로운 아이돌 그룹 ‘엔시티’(NCT, Neo Culture Technology)를 공개했다. 엔시티는 같은 이름을 쓰지만 서울, 도쿄, 베이징 등 각 도시를 기반으로 별도의 팀을 꾸려 활동하는 새로운 개념의 아이돌 그룹이다. 이 회장은 “새 멤버 영입이 자유롭고 멤버 수에 제한이 없다. 개방성과 확장성을 갖고 진정한 한류 현지화를 이뤄낼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랙티브’를 키워드로 한 새로운 프로젝트도 공개했다. 디지털 음원 공개 채널 ‘스테이션’ 론칭, 이디엠(EDM, 전자음악) 레이블 설립, 모바일앱 서비스 운영, 신인 프로듀싱 앱 ‘루키스 엔터테인먼트’ 론칭, 멀티채널네트워크(MCN) 콘텐츠 및 플랫폼 사업 등이다.

1월22일에는 엠넷의 신규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이 첫 방송을 시작했다. 걸그룹 데뷔를 원하는 101명의 기획사 연습생들을 대상으로 시청자의 투표를 통해 11명의 걸그룹 멤버를 선정하는 프로그램이다. ‘국민 프로듀서’라고 불리는 시청자는 매일 한번씩 누리집(홈페이지)에서 자신이 원하는 멤버 11명에게 투표할 수 있다. 이렇게 선정된 이들은 걸그룹으로 1년 동안 활동하게 된다. 1월8일에는 씨제이 이앤엠(CJ E&M, 이하 씨제이)이 기획사 라이브웍스컴퍼니와 함께 진행하는 새로운 케이팝 프로젝트 ‘소년24’를 발표했다. 24명으로 구성된 남성 아이돌 그룹 소년24는 상설 공연장에서 1년 내내 라이브 공연을 진행하고, 이들 중 두터운 팬덤을 지닌 멤버들은 더 큰 무대에 진출하게 된다. 씨제이는 이 프로젝트에 약 250억원을 투자한다고 밝혔다. 멤버 수에 제한이 없는 엔시티, 투표로만 101명에서 11명을 선발하는 <프로듀스 101>, 그리고 365일 라이브 공연을 펼치는 소년24. 국내 최대의 엔터테인먼트사인 에스엠과 가장 영향력 있는 채널을 갖고 있는 씨제이는 새로운 시대가 시작됐다는 선언이라도 하는 듯 2016년 1월 이들 프로젝트의 시작을 알렸다. 이들은 각자 새로운 프로젝트라는 점을 강조하지만 들여다보면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도시를 거점으로 활동하는 그룹이라는 콘셉트나 투표만으로 순위를 매기는 방식, 전용 극장에서 라이브 공연을 하는 방식 등은 일본의 걸그룹 ‘에이케이비48’(AKB48)이 일본에서 성공을 거둔 공식이다. ‘따라한다’고 비판하기보다 각 기획사와 제작사가 이미 성공한 바 있는 구조와 시스템을 현재 케이팝 시장에 맞는 방식으로 변형하고 더 발전적인 형태로 적용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편이 생산적이다. 새로운 도전임은 분명한 이들 프로젝트에서 지금의 케이팝 시장을 읽는 몇 가지 키워드가 있다. 참여형 아이돌 그룹과 성장형 아이돌 그룹, 그리고 무한경쟁이다.

멤버수 제한 안두는 새그룹 ‘NCT’
투표로만 11명 뽑는 ‘프로듀스 101’
365일 라이브 공연 펼치는 ‘소년24’

시청자를 ‘국민 프로듀서’ 대접
문자투표 넘어 더 깊이 참여시켜
결국은 돈 더 많이 쓰는 ‘소비자’로

참여형·성장형 아이돌 그룹 방식은
개개인 실적 따라 언제든 멤버교체
‘무한경쟁’ 체제로 밀어넣는 셈
정부의 ‘저성과자 해고’ 지침과 닮아

아이돌 그룹 시장이 생겨난 지 20년이 넘었다. 20년이라는 시간만큼 시장은 커졌고 또 복잡해졌다. 포화 상태인 내수시장을 극복하려고 기획사들은 저마다 국내외에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려고 애쓰고 있다. 대중은 엇비슷한 아이돌 그룹과 반복되는 활동 방식이 아닌 새로운 즐길거리를 원한다. 그 접점에서 생겨난 것이 참여형 아이돌 그룹, 성장형 아이돌 그룹이다. 아이돌 그룹에 대한 대중의 참여는 아이돌 그룹 멤버를 선정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시청자 투표를 통해 심사위원의 점수와 함께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간접적인 방식이 주를 이뤄왔다. 그 방식이 더 직접적으로 바뀌고 있다. <프로듀스 101>에는 심사위원이 없다. 시청자 투표만으로 매번 순위가 정해지고 최종 데뷔 멤버가 결정된다. 대중이 참여하는 시기도 데뷔에서 끝나지 않는다. 새로운 그룹의 구체적인 운영방식이 나오진 않았지만 지금까지 발표를 보면 엔시티나 소년24 모두 데뷔를 하고 난 다음에 대중의 선호에 따라 멤버의 신규 영입 또는 탈퇴, 대중 선호도에 따른 활동 영역 조정 등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자신이 응원하거나 지지하는 멤버가 데뷔하도록 하는, 또 데뷔 이후에도 경쟁에서 밀리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하는 키를 대중의 손에 쥐여주겠다는 얘기다.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대중을 부르는 새로운 용어도 생겨났다. ‘프로듀서’다. 프로듀서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보면서 문자 한통을 보내는 판정단과 다르다. 프로듀서에게는 아이돌 그룹 멤버 전체를 캐스팅하고 콘셉트를 정하는 역할까지 주어진다. <프로듀스 101>은 시청자를 ‘국민 프로듀서’라고 부른다. 이 프로그램의 첫 방송에서 100여명의 연습생들은 카메라를 보고 시청자를 향해 “프로듀서님 잘 부탁드립니다”를 외쳤다. 에스엠이 내놓은 신인 프로듀싱 앱 ‘루키스 엔터테인먼트’에 가입하면 참여자는 ‘인턴 피디(PD)’로 연습생들을 캐스팅하고 트레이닝시킬 수 있다. 점점 피디의 레벨을 높여가는 게임에 가깝지만 앱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면 실제 아이돌 그룹의 앨범에 이름을 올릴 수도 있다. 프로듀서로서 연습생을 트레이닝시키고 데뷔 멤버를 결정하고 콘셉트에 대한 아이디어를 내고 실력을 쌓고 인기를 얻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성장을 확인하고, 데뷔 이후에도 경쟁에서 밀리지 않도록 지원하고 그 지원이 또 다른 성장으로 이어지는 ‘큰 그림’을 다른 대중과, 팬과 함께하겠다는 의지를 엔시티와 소년24 등에서 읽을 수 있다.

그렇다면 정말 대중이, 팬이 프로듀서의 역할을 할 수 있게 되는 걸까? 아직까지는 회의적이다. 기획사나 제작사가 팬에게 ‘프로듀서’라는 명함까지 파주면서 더 길고 깊은 참여를 유도하는 것은 대중의 적극적인 참여가 안정적인 수익 창출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적극적인 참여를 할 수 있는 공간이 넓어지고, 아이돌 그룹에 대한 접근 거리가 줄어들고, 작게라도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면 팬들의 충성심은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충성심은 다양한 콘텐츠 판매로 이어진다. 소년24 프로젝트의 중심에는 1년 내내 정기적으로 진행되는 라이브 공연이 있다. 공연에 출연하는 이들을 더 자주 보기 위해, 또 자신이 응원하는 멤버를 더 큰 무대로 진출시키기 위해 고정 팬층이 꾸준히 티켓을 구입하는 정기적인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루키스 엔터테인먼트’ 앱의 경우 더 많은 이들을 캐스팅하고 프로듀싱 하려면 ‘쿠키’를 충전해야 한다. 쿠키는 물론 현금으로 충전한다. 프로듀서는 적극적으로 참여해 더 많은 돈을 쓰는 것이 기대되는 소비자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참여형 아이돌 그룹, 또 성장형 아이돌 그룹은 ‘무한경쟁’이라는 시스템 안에서만 작동한다. 무한경쟁이라는 환경과 구조가 제대로 짜여야만 대중의 적극적인 참여와 아이돌 그룹의 성장은 기대 효과를 낼 수 있다. 이수만 회장의 프레젠테이션 이후 언론은 에스엠이 쌓아온 문화기술의 결정체가 될 ‘신개념 그룹’이라는 점을 제목으로 뽑았지만, 기사의 댓글과 에스엔에스(SNS),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아이돌 그룹도 이제 비정규직’이라는 내용이 오르내렸다. 한류와 케이팝의 경쟁력이라는 명분 아래 아이돌 그룹 멤버 개개인을 실적에 따라 교체하거나 자리를 없앨 수 있다는 것이 노동개혁 양대 지침 중 저성과자도 해고할 수 있게 한 일반해고 지침과 겹쳐 보였다. ‘멤버 교체는 없다’를 원칙으로 하되 변수가 발생할 때 대응하는 것과 멤버 교체 자체를 원칙이나 방식으로 공표하는 것은 다르다. 이런 방식이 하나의 트렌드가 되면 활동 중인 아이돌 그룹 멤버들과 앞으로 데뷔할 아이돌 그룹 멤버들 모두 고용 불안에 내몰리게 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노동개혁을 통한 청년 실업 해소를 주장하듯 이를 통해 더 많은 연습생들의 ‘꿈’을 이룰 수 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말장난일 뿐이다.

안인용 티브이 칼럼니스트
안인용 티브이 칼럼니스트
새로운 시장 개척도 좋고 적극적인 대중의 발굴도 좋지만 그와 함께 진행되어야 할 것은 지속가능한 생태계를 구축하려는 노력이다. 아이돌 그룹 멤버들은 대부분 10대에 기획사와 계약을 하고 활동을 한다. 자신이 어떤 노동 환경과 조건에서 일하고 있는지 정확히 판단할 수 없는 이들을 무한경쟁 시스템 안으로 밀어넣는 것이 옳은지, 그렇게 해야 한다면 어떤 부작용이 예상되며 보완책은 무엇이 있는지 대중과 함께 이야기해야 한다. 아이돌 그룹의 적극적인 소비자를 프로듀서라고 부르겠다면 이런 소통은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그게 정말 ‘인터랙티브’가 아닐까.

안인용 티브이 칼럼니스트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