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한 국외생산·납품가 후려치기’ 품질 떨어뜨려
‘닮은 꼴’ 현대·기아차 원가절감 전략 재검토 할 때
‘닮은 꼴’ 현대·기아차 원가절감 전략 재검토 할 때
“2012년까지 모든 부품의 납품가격을 30% 내려라.”
지난해 연말 도요타가 발표한 비용절감 계획의 핵심 내용은 2012년부터 생산되는 신차에 들어가는 부품 가격을 30% 내리는 것이다. 지금 100원에 납품하는 부품을 3년 뒤에는 70원에 납품하라는 이야기다. 국내 한 부품업계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라며 “이 정도에 납품가격을 맞추려면 품질 기준을 일정 수준 낮출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사실 도요타의 이런 납품단가 인하 압력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일본 제조업체의 자존심인 도요타가 최근 맞닦뜨린 ‘품질 위기’가 어디서 비롯됐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세계 자동차 판매 1위에다 잔고장 없기로 유명한 ‘품질의 도요타’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가속페달 결함 문제로 미국에서 대규모 리콜에 들어간 데 이어 곧 미 의회 청문회 자리에까지 서야할 처지에 놓였다. 리콜 범위도 중국, 유럽 등 세계 곳곳으로 확산하면서 도요타가 지난해 세계에 판매한 698만대를 웃도는 760만대가 리콜 대상에 올랐다. 급기야 아키오 사장은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 참석 중이던 지난 29일 <엔에이치케이>(NHK)를 통해 “고객들을 불안하게 만든 데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현재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른바 ‘도요타 쇼크’는 도요타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도요타가 1980년대 이후 일본 차 돌풍을 일으키고 고급 차 브랜드인 렉서스도 성공적으로 자리매김한 이후 전 세계 자동차 업체는 ‘도요타 배우기’에 몰두했다. 도요타의 ‘카이젠’(개선·공정개량작업)과 ‘지트’(JIT·적시생산시스템)는 자동차업계의 ‘교본’처럼 받아들여졌다. 여기에 도요타는 과감한 국외 팽창정책을 썼다. 90년대 이후 지금까지 도요타는 일본 국내에서 공장을 하나도 짓지 않으면서 세계 31곳에 생산기지를 새로 세웠다.
하지만 최근의 리콜 사태는 비용 절감을 위해 부품단가를 인하하고, 국외 생산 확대를 꾀해온 도요타의 전략이 되레 ‘품질 저하’라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 있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전임 와타나베 가쓰아키 사장이 2005년 도요타의 지휘봉을 맡고 나서 가장 강력하게 추진한 것이 바로 비용 절감이었다. 구매 부문에서 잔뼈가 굵은 와타나베 사장은 마른 수건도 더 짜내는 방식으로 부품단가 인하를 독려했다. 좀 더 싼 부품을 찾다보니 협력업체들도 전 세계로 다변화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 문제가 된 부품은 캐나다의 시티에스(CTS)가 중국공장에서 만든 부품이다. 도요타의 대규모 리콜 사태가 급격한 팽창과 공급선 다변화로 말미암은 품질관리의 허술함과 도요타식 납품단가 후려치기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문제는 이번 리콜 사태가 단지 도요타만의 문제로 끝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 사이 혼다가 미국·유럽 등지에서 판매하는 피트나 재즈 등의 소형차에 들어가는 창문스위치 문제로 65만대 리콜을 발표했고, 푸조도 도요타와 합작생산하는 차량의 리콜을 발표했다. 포드도 시티에스의 부품을 쓰는 차량에 대한 중국 내 생산 중단을 발표했다. 이는 이미 도요타 방식이 ‘글로벌 표준’이 돼버린 세계 자동차업계의 문제점을 잘 드러내는 사례다. 지난해 도요타가 창립 이래 첫 적자를 기록했을 때도 이는 일시적인 불황과 엔고 현상 때문으로 여겼지만 이제는 도요타 방식 자체가 회의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현대·기아차도 ‘도요타 위기’를 반면교사로 삼아 글로벌 전략을 다시 한 번 재점검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도요타가 주춤하는 사이 마케팅 측면에서 반사 이익을 볼 수 있겠지만, 국외 생산확대나 부품단가 인하 정책 등 성장방식이 놀랍도록 도요타와 닮아있어 언제든지 비슷한 상황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기아차는 현재 11곳의 글로벌 생산공장을 가동 중이고 2곳을 새로 건립하고 있으며 부품공급선 또한 다변화하고 있다. 현영석 한남대 교수(경영학)는 “난공불락처럼 보였던 도요타도 덩치가 커지면 약점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며 “현대차도 비용절감과 플랫폼(차대) 공유가 언제든지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서 기본으로 다시 돌아가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형섭 기자 sub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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