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주 현대차 노사전문위원회 대표(한국노동교육원 교수)
박태주 ‘노사전문위’ 대표에게 듣는 현대차 노사갈등 해법
“현대자동차 노사 모두 이대로는 회사의 미래가 없고 공멸하니 바뀌어야 한다고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노조는 회사보고 먼저 바뀌라고 하고, 회사는 노조보고 먼저 바뀌라고 한다. 자신은 상대방이 먼저 바뀐 다음에 움직이겠다는 것인데, 그런 태도로는 노사불신을 풀 수 없다.”
현대자동차 노사 전문위원회의 박태주 대표(한국노동교육원 교수)는 21일 서울 계동 현대자동차 사무실에서 “노사가 서로 먼저 바뀌려는 노력을 해야 하고, 특히 힘이 상대적으로 더 센 회사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면서 “이것은 노조 요구를 무조건 수용하라는 것이 아니라, 노사 협조가 가능한 경영철학과 기업문화 쇄신을 위해 회사가 주도적으로 나서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박 대표와의 문답 내용이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뉴스위크>가 최신호(26일자)에서 일본차를 쫓아가려던 한국 현대자동차가 오히려 부진의 늪에 빠진 미국 자동차들을 닮아가고 있다고 보도했다. 최근 만난 삼성그룹의 한 최고경영자도 이러다간 현대차가 주저않는 것 아니냐고 걱정하더라.
98년 정리해고 이후
노동자들 고용 불안
단기실리주의 이어져
=현대차는 2000년대 들어 브레이크 없는 질주에 비유될 정도로 승승장구했다. 그러다보니 내부의 문제를 간과했다. 성공이 위기를 부른 격이다. 가장 심각한 것이 노사관계다. 노사 모두 성공에 취해 있었던 셈이다. 현대차가 잘 나갈 때는 심각한 노사관계도 별 문제가 아닌 듯 보였다. 하지만 세계 자동차산업의 경쟁방식이 바뀌면서 노사문제는 현대차가 지속성장을 하는 데 발목을 잡게 됐다. 현대차가 글로벌 일류기업으로 발전하는 데 덫이 되고 있다. 연초 성과급을 둘러싼 현대차 노사갈등 때 일반 국민들은 사실상 노사 양쪽에 엄중한 경고를 했다고 본다.
-파업도 풀고 쟁점이 됐던 상여금도 지급하기로 타협이 됐는데? =일시적 봉합일 뿐이지 해결된 것이 아니다. -노사갈등이 현대차에게 어떻게 위기 요인이 되고 있는가? =현대차 노사관계의 위기는 생산방식의 위기를 거쳐 현대차 전체의 위기로 이어지고, 이것이 다시 노사관계 불안을 낳는 악순환의 구조다. 현대차의 생산방식은 기술과 기술자 중심이다. 이는 노동절약적이고 노동배제적인 생산방식이다. 현장의 노동자들은 제기능을 못한다. 이것이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자랑하는 도요타와의 가장 큰 차이다. 도요타는 유연하고 다기능을 갖춘 숙련노동자들이 생산현장에서 끊임없는 개선을 통해 품질과 생산성을 확보하는 구조다. 지금까지 세계 자동차산업은 규모의 경제를 이루는 것이 경쟁력을 좌우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소비자들이 원하는 자동차를 적기에 유연하게 생산할 수 있는 유연한 생산방식을 갖추느냐가 핵심이다. -현대차는 왜 도요타와 같이 생산방식에서의 경쟁력 확보가 안되는가? =생산방식의 유연성은 현장노동자들의 높은 숙련도와 협조가 바탕이 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일본은 고용보장을 통해 노동자들이 회사에 대해 강한 충성심을 갖도록 한다. 노동자들은 당연히 회사의 장기발전 여부를 중시하게 된다. 반면 현대차 노동자들은 고용불안에 시달린다. 그러다보니까 우리 회사라는 의식이 약하다. 회사의 장기발전에 대한 고민보다는 단기실리주의에 매달리게 된다. -현대차는 노조의 동의가 없으면 정리해고나 명예퇴직이 불가능할 정도로 고용보장을 받고 있다. 또 신기술 도입, 해외공장 증설, 해외에서의 부품조달 등 고용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안에 대해서는 노사합의를 거쳐야 할 정도인데? =그럼에도 노동자들이 심각한 고용불안을 느끼는 것은 아이러니다. 이유는 회사에 대한 불신이다. 경기악화에 따른 판매량 감소와 해외생산기지 확대 등을 빌미로 회사쪽이 언제든 구조조정에 나설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노란봉투 사건’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현대차는 당시 명예퇴직과 정리해고를 통해 9천명을 감원했는데, 당시 해고통지서를 노란봉투에 넣어 전달한 데서 유래한다.) 미래가 불안한 노동자들은 일하고 있을 때 벌자는 단기실리주의와 파업의존주의가 팽배하다. 생산물량 확보에만
회사가 치우쳐 있으면
장기 노무관리 불가능
-현대차 노조는 지난 87년 설립 이후 19차례의 임단협 교섭을 가졌는데 17차례나 파업으로 치달았다. 보수언론이나 재계에서는 현대차 노동자들이 연간 6천만원이 넘는 최고 수준의 급여를 받으면서도 파업을 일삼는다고 비난한다.
=20년간 파업은 전대미문의 일이다. 하지만 파업 책임을 노조에만 뒤집어 씌우는 것도 옳지 않다. 회사쪽은 그동안 무엇을 했는가? 또 현대차 노동자들에게 급여가 많다고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다. 노동자들이 임금을 많이 주는 게 무엇이 잘못인가? 많은 급여를 받는 것은 회사가 그만큼 지급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현대차는 지난 2000년 이래 매년 1조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달성해 왔다. 실제로 현대차 매출 중에서 임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 1999년 이후 10% 선으로 안정돼 있다. 중요한 것은 많은 급여를 받는 만큼 생산성 향상을 이루었느냐이다. 생산성 향상을 위해 노조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게 문제인 것이다. 현대차의 베이징공장에 비해 아산공장의 생산성이 떨어지고, 기아차의 슬로바키아공장보다 화성공장의 생산성이 떨어지는 것은 정말 심각하다.
-현대차가 노사관계에서 전략적 경영이 부족하다고 하는데?
=회사의 최대 관심은 자동차 생산물량의 확보다. 파업이 벌어지면 조기에 끝내도록 하는 데 주력한다. 그러다보니 단기적 대응에 급급해 왔다. 노무관리자들이 자주 교체되다보니 일관되고 장기적인 노무관리가 불가능하다. 전문가도 없다.
-현대차 노조가 올초 미지급 상여금 문제로 파업에 들어가자, 회사쪽은 이번에는 꼭 법과 원칙을 지키겠다고 다짐했었다. 현대차 노사가 타협을 하자 이를 두고 또다시 회사가 노조에 굴복했다는 비난이 있었는데?
=이번 성과급 분쟁이 책임은 약속을 위반한 회사쪽에 있다. 회사는 원래 생산량 목표에 관계없이 성과급 지급을 약속했다. 현대차의 성과급은 사실상 고정급처럼 운용돼 왔다. 외부에 인금인상률을 낮게 보이도록 하기 위해 편법적으로 운영돼 온 것이다. 그런데 회사가 노조와 사전협의 없이 성과급을 주지 않아 문제가 생긴 것이다. 회사가 먼저 약속을 어기고 법과 원칙을 내세우는 것은 옳지 못하다.
글/곽정수 대기업전문기자 jskwak@hani.co.kr
사진/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노동자들 고용 불안
단기실리주의 이어져
박태주 현대차 노사전문위원회 대표(한국노동교육원 교수)
-파업도 풀고 쟁점이 됐던 상여금도 지급하기로 타협이 됐는데? =일시적 봉합일 뿐이지 해결된 것이 아니다. -노사갈등이 현대차에게 어떻게 위기 요인이 되고 있는가? =현대차 노사관계의 위기는 생산방식의 위기를 거쳐 현대차 전체의 위기로 이어지고, 이것이 다시 노사관계 불안을 낳는 악순환의 구조다. 현대차의 생산방식은 기술과 기술자 중심이다. 이는 노동절약적이고 노동배제적인 생산방식이다. 현장의 노동자들은 제기능을 못한다. 이것이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자랑하는 도요타와의 가장 큰 차이다. 도요타는 유연하고 다기능을 갖춘 숙련노동자들이 생산현장에서 끊임없는 개선을 통해 품질과 생산성을 확보하는 구조다. 지금까지 세계 자동차산업은 규모의 경제를 이루는 것이 경쟁력을 좌우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소비자들이 원하는 자동차를 적기에 유연하게 생산할 수 있는 유연한 생산방식을 갖추느냐가 핵심이다. -현대차는 왜 도요타와 같이 생산방식에서의 경쟁력 확보가 안되는가? =생산방식의 유연성은 현장노동자들의 높은 숙련도와 협조가 바탕이 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일본은 고용보장을 통해 노동자들이 회사에 대해 강한 충성심을 갖도록 한다. 노동자들은 당연히 회사의 장기발전 여부를 중시하게 된다. 반면 현대차 노동자들은 고용불안에 시달린다. 그러다보니까 우리 회사라는 의식이 약하다. 회사의 장기발전에 대한 고민보다는 단기실리주의에 매달리게 된다. -현대차는 노조의 동의가 없으면 정리해고나 명예퇴직이 불가능할 정도로 고용보장을 받고 있다. 또 신기술 도입, 해외공장 증설, 해외에서의 부품조달 등 고용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안에 대해서는 노사합의를 거쳐야 할 정도인데? =그럼에도 노동자들이 심각한 고용불안을 느끼는 것은 아이러니다. 이유는 회사에 대한 불신이다. 경기악화에 따른 판매량 감소와 해외생산기지 확대 등을 빌미로 회사쪽이 언제든 구조조정에 나설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노란봉투 사건’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현대차는 당시 명예퇴직과 정리해고를 통해 9천명을 감원했는데, 당시 해고통지서를 노란봉투에 넣어 전달한 데서 유래한다.) 미래가 불안한 노동자들은 일하고 있을 때 벌자는 단기실리주의와 파업의존주의가 팽배하다. 생산물량 확보에만
회사가 치우쳐 있으면
장기 노무관리 불가능
박태주 현대차 노사전문위원회 대표(한국노동교육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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