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익산시 어양동에서 슈퍼를 운영하는 이근남씨는 “홈플러스 슈퍼가 들어오니 가게 시설을 원상 복귀시키고 비워달라는 통보를 받아 파산 위기에 몰렸다”고 말했다.
수천만원 시설비 날리고 물건 땡처리해야
자금력 무기로 중소상인 생계터전 위협
자금력 무기로 중소상인 생계터전 위협
밀려드는 기업형 슈퍼, 벼랑끝 몰린 상인들
이근남(53·전북 익산시 어양동)씨는 분노로 눈자위를 번득이다가도, 곧 한없는 무기력으로 빠져든다. 그는 파산을 눈앞에 둔 슈퍼 주인이다. 정육·생선 코너 등이 따로 입점한 이씨네 슈퍼는 330㎡(100평) 크기로 남 보기엔 번듯하다. 하지만 이씨는 두주 전부터 파산 상담을 받고 있다. 넉달 전 건물주인 원광중앙신협한테서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슈퍼를 들일 테니 6월 말까지 가게를 비우란 통보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씨는 “보증금 3000만원에 월세 550만원으로 장사를 했는데, 홈플러스 쪽이 억대 보증금과 두 배 가까운 월세를 제시했다고 하더라”며 “나로선 대응할 도리가 없다”고 말했다. 신협 쪽은 “홈플러스에 임대를 주기로 잠정 약정을 맺은 상태”라며 “홈플러스가 들어오면 건물을 팔기 좋다는 이점도 있다”고 말한다.
이씨의 슈퍼 운영은 순식간에 망가졌다. 파산을 예감한 야채·청과 입점 상인은 하루아침에 물건을 빼서 나가버렸다. 물건을 대주던 거래처는 이제 현금이 아니면 이씨를 상대해주지 않는다. 손님들은 찾는 물건이 없자, 차례차례 발길을 끊고 있다.
이씨는 2002년 6월부터 꼬박 7년 동안 아침 7시부터 밤 11시까지 장사를 했다고 했다. 하루 다섯 시간 이상 잠을 자본 적이 없다. 5년 전부터는 조기유학을 보낸 아들과 아내에게 생활비 대부분을 부치고 손바닥만한 원룸에서 ‘기러기 아빠’로 살았다. “내 자식만큼은 지긋지긋한 장사를 시키고 싶지 않다”는 간절한 소망 때문이었다.
그는 지금의 슈퍼를 인수하면서 인생을 걸었다. 슈퍼를 개보수하느라 4500만원을 투자했다. 물건도 장부가로 1억2000만원은 된다. 하지만 호시절은 잠깐이었다. 대도시를 중심으로 번진 대형마트는 익산에도 우후죽순 들어섰다. 매출은 하루 700만원에서 300만원으로 떨어져 빚을 불렸다. 자포자기한 지금은 하루 매출이 170만원 수준이다.
얼마 전까지 시설비와 권리금을 줄 테니 슈퍼를 팔란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가게를 넘기면 2억 남짓한 빚은 털어도 빈손으로 실업자가 될 터였다. 그래서 아들 교육을 마칠 때까지만 버티자 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설상가상이다. 가게를 인수자한테 넘기는 대신 홈플러스에 사실상 뺏기게 생겼다. 수천만원을 들인 시설은 뜯어내 고물 처리를 해야 하고 물건 상당수는 ‘땡처리’를 해야 한다. 빈손 쥔 실업자가 아니라 파산한 신용불량자가 될 판이다.
인천시 옥련동 아파트 단지 앞에서 33㎡(10평)짜리 구멍가게를 하는 최미선(47)씨 부부도 대기업 슈퍼 때문에 빚만 지고 폐업을 할 위기에 처했다. 최씨 부부는 3년 전 대출을 3000만원 받고 권리금 7000만원을 들여 슈퍼를 인수했다. 보증금 3000만원에 월세 160만원으로 시작한 가게는 세 식구가 근근이 먹고살 정도는 됐다. 하지만 길 건너에 홈플러스 슈퍼 공사가 덜컥 시작됐다. 타격은 컸다. 인근 슈퍼 8곳 가운데 5곳이 부동산에 가게를 내놓았다. 그러나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홈플러스 슈퍼 맞은편 구멍가게를 권리금 7000만원을 주고 들어올 사람은 없다. 최씨는 “가진 돈 수천만원에 대출 3000만원을 보태 창업했는데, 이젠 빚만 남게 생겼다”며 “그나마 모은 재산도 까먹었으니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들 같은 파산과 폐업에 대한 불안은 중소상인과 영세 자영업자들한테 광범위하다. 대기업들이 슈퍼 점포 수를 연간 두 배나 늘리는 등 출점 경쟁을 벌이면서, 부동산 용역업체를 동원해 중소상인들의 생계 터전을 들쑤시고 다니는 탓이다. 건물주에게 월세를 대폭 올려 불러 기존 상인의 재계약을 가로막고, ‘대기업 슈퍼가 주변에 들어서면 어차피 망한다’며 가게를 팔라는 위협도 한다. 일반 슈퍼에 물건을 대주는 도매상인 박대우(49)씨는 “150군데 슈퍼 거래처가 5년 사이 60~70군데로 줄어서 우리도 타격이 크다”며 “거래처 슈퍼 한 곳도 대기업이 건물 주인을 접촉한다는 얘기를 듣고 밤잠을 설치는 모양”이라고 전했다. 김경배 한국수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 회장은 “최근 대기업이 경쟁적으로 넘보는 330~1000㎡(약 100~300평) 매장을 가진 중소마트 운영자들의 불안이 극심하다”며 “대기업이 이런 식으로 중소마트를 망하게 하면 여기에 입점한 영세상인, 물건을 준 도매업자까지 줄줄이 피해를 본다”고 말했다. 중소상인 살리기 전국네트워크 강지형 사무국장은 “이명박 대통령은 골목상권 파괴 문제를 ‘법으로는 안 되는 사안’이라고 했지만 현재 횡포를 보면 ‘법이 아니면 안 되는 상황’”이라며 “대기업 슈퍼를 합리적으로 규제할 법적 방도를 찾지 않으면, 줄 잇는 파산·폐업으로 사회적 비용이 엄청나게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익산·인천/글·사진 정세라 기자 seraj@hani.co.kr
이들 같은 파산과 폐업에 대한 불안은 중소상인과 영세 자영업자들한테 광범위하다. 대기업들이 슈퍼 점포 수를 연간 두 배나 늘리는 등 출점 경쟁을 벌이면서, 부동산 용역업체를 동원해 중소상인들의 생계 터전을 들쑤시고 다니는 탓이다. 건물주에게 월세를 대폭 올려 불러 기존 상인의 재계약을 가로막고, ‘대기업 슈퍼가 주변에 들어서면 어차피 망한다’며 가게를 팔라는 위협도 한다. 일반 슈퍼에 물건을 대주는 도매상인 박대우(49)씨는 “150군데 슈퍼 거래처가 5년 사이 60~70군데로 줄어서 우리도 타격이 크다”며 “거래처 슈퍼 한 곳도 대기업이 건물 주인을 접촉한다는 얘기를 듣고 밤잠을 설치는 모양”이라고 전했다. 김경배 한국수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 회장은 “최근 대기업이 경쟁적으로 넘보는 330~1000㎡(약 100~300평) 매장을 가진 중소마트 운영자들의 불안이 극심하다”며 “대기업이 이런 식으로 중소마트를 망하게 하면 여기에 입점한 영세상인, 물건을 준 도매업자까지 줄줄이 피해를 본다”고 말했다. 중소상인 살리기 전국네트워크 강지형 사무국장은 “이명박 대통령은 골목상권 파괴 문제를 ‘법으로는 안 되는 사안’이라고 했지만 현재 횡포를 보면 ‘법이 아니면 안 되는 상황’”이라며 “대기업 슈퍼를 합리적으로 규제할 법적 방도를 찾지 않으면, 줄 잇는 파산·폐업으로 사회적 비용이 엄청나게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익산·인천/글·사진 정세라 기자 sera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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