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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나랏빚 강박증에…소득불평등 줄일 돈 있는데 ‘구두쇠 재정’

등록 2018-06-19 05:01수정 2018-06-19 14:25

소득주도성장, 재정이 열쇠다
① 불평등 심화에 재정역할론 확산
※누르면 확대됩니다.
올해 1분기(1~3월)에 소득 하위 20% 가구의 소득이 급감한 것을 계기로, 그 원인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한해 전보다 큰 폭(16.4%)으로 올린 최저임금이 저소득 가구의 일자리와 소득에 부정적 영향을 준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일면서다. 그러나 좀 더 긴 시계열로 보면, 한국 사회의 소득 불평등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구조적으로 고착화됐다. 이후 정부가 재분배 정책을 펴왔지만 시장소득의 불평등을 상쇄하기엔 역부족인데, 그 배경엔 정부 재정 정책이 여전히 ‘건전성 신화’에 발목이 잡힌 채 적극적 구실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재정 건전성 강박에 돈 안 풀어
GDP 대비 재정지출 비중 32%
OECD 평균 40% 크게 밑돌아
재정 ‘찔끔’ 투입, 불평등 개선 미흡

■ 재정의 ‘불평등 완화’ 기여도 OECD 최하위권

소득 불평등을 개선하는 방식은 크게 두가지다. 우선 시장소득(노동·임금·사업·재산 소득/1차 분배)에서 불평등을 만드는 요소를 제거하는 일이다. 재벌개혁과 독과점 해소, 원-하청 간 공정거래,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 등이 여기에 속한다. 최저임금을 올려 임금 불평등을 완화하는 정책도 마찬가지다. 모두 공정한 시장 환경을 만들기 위한 과제다. 두번째는 1차 분배 시장에서 나타난 불평등을 조세와 예산으로 완화하는 단계다. 2차 분배 혹은 재분배 영역이라고 한다. 그동안 시장에 중심을 두는 쪽에선 1차 분배 영역에, 시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국가 개입을 강조하는 쪽은 2차 분배에 더 큰 관심을 기울여왔다. 어느 쪽이나 포기할 수 없는 정책 과제이나 우선순위를 따져볼 필요는 있다. 현 정부가 소득주도성장의 핵심 정책 수단으로 내건 최저임금 인상과 재벌개혁 등도 1차 분배 시장에 더 초점을 맞춘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1차 분배 시장과 2차 분배 시장을 나눠 회원국별 불평등 수준을 지표로 매년 보여준다. 각각 세전소득(시장소득)과 처분가능소득 기준으로 불평등 수준을 지니계수로 따진 것이다. 2016년 말 기준 한국은 오이시디 회원국 중 관련 통계가 존재하는 34개국 가운데 세전소득 기준으로는 가장 불평등 수준이 낮은 나라(34위)에 속하지만, 처분가능소득 기준으로는 불평등 순위(20위)가 크게 치솟는다. 재정 정책이 불평등 완화에 기여하는 수준으로 보면, 우리나라의 현실은 좀 더 심각하다. 한국은 세전소득과 처분가능소득을 각각 기준으로 한 지니계수 변화 폭(재정 기여도)이 0.046포인트로, 34개국 가운데 31위에 그친다. 핀란드·노르웨이·독일 등 서구 복지국가들은 세전소득 기준에선 한국보다 더 불평등한 나라이지만 강력한 재정 정책으로 우리보다 평등한 나라로 변모한다.

재정 여력 ‘넉넉한 편’
국가채무 45%…OECD 평균 113%
IMF조차 “70%가 적정 수준” 권고
20% 그친 조세부담률 올릴 여지도

■ 재정 여건 충분한데 지출은 소극적

이는 나랏돈(재정)이 부족해서라기보다는 정부가 지출에 소극적이어서 나타난 문제로 봐야 한다. 우리나라의 재정 규모는 다른 나라에 견줘 한참 적은 수준이다. 경제 규모를 반영하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지출(기금을 포함한 일반정부 예산) 비중을 보면, 2016년 기준 한국은 오이시디 34개 회원국 가운데 32위(32.35%)에 그친다. 오이시디 회원국 평균(40.55%)을 크게 밑도는 수준이다. 한국보다 재정 규모가 적은 나라는 아일랜드(33위·27.05%)와 멕시코(34위·24.54%)뿐이다. 정부가 복지 예산을 해마다 늘리고 있어 총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일정 수준으로 올라온 편이지만, 경제 규모 대비 지출 비중이 오이시디 회원국 중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는 이유다. 결과적으로 ‘작은 재정’이 소득 불평등을 완화하는 데 한계를 크게 드러내고 있다.

이미 조세 부담이 너무 많거나 국가 신용도가 흔들리는 탓에 재정을 확대할 수 없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증세 등을 통해 복지를 늘리려다 나라 경제가 어려움에 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에 주어진 객관적 여건은 그렇지 않다. 우선 조세부담률(국세와 지방세를 더한 총조세를 GDP로 나눈 비율)은 지난해 말 현재 20% 수준이다. 오이시디 평균치(약 25%·2016년 기준)에 크게 미달하는 터라 한국 기업과 국민들의 조세부담이 크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이시디 평균치까지 부담률을 끌어올릴 때 기대할 수 있는 추가적인 세수 규모를 단순 계산하면 87조원에 이른다. 건강보험료나 고용보험료 등 사회보장기여금을 뺀 조세만 따져도 한국은 상당 수준의 재정 여력을 갖고 있다.

여기다 매우 낮은 국가채무 수준과 그에 따른 우수한 국가 신용도는 추가적인 재정 여력을 만들어낸다. 한국의 ‘국내총생산 대비 채무 비율’(일반정부 기준)은 40% 중반(45.4%·2016년)대로, 오이시디 평균 113.1%에 견줘 크게 낮다. 소규모 개방 경제란 특성이나 잠재적 통일 비용, 빠른 고령화 현상을 고려해 다른 나라보다 여력을 보유한다고 하더라도 한국의 채무 수준은 매우 낮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2월 펴낸 한국경제보고서에서 한국의 적극적 재정 정책을 권고하며 적정 채무 비율 수준을 70%로 제시하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 1년 넘게 ‘소극적’
예산 증가 규모, 공약보다 축소
‘본예산 적게-추경 투입’ 되풀이
“증세 등 공격적 재정정책 펴야”

■ 문재인 정부 말로만 ‘확대 재정’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주요 선진국이 저성장 극복과 소득불평등 완화를 위해 쓴 처방은 적극적 ‘돈 풀기’였다. 이런 가운데 주요 20개국(G20) 회의나 국제기구들은 하나같이 한국 정부가 풍부한 재정 여력을 제때 쓰지 않는 데 의구심을 드러냈다. 한국 정부의 답변은 매번 이랬다. 증세는 조세 저항에 부딪힐 수 있으며, 재정은 한국 경제의 최후의 보루이기에 채무를 늘릴 수 없다는 것이었다. 국제통화기금은 한국을 콕 짚지는 않았으나 이런 인식을 ‘채무 강박증’이라고 표현했다. 국제통화기금과 오이시디는 거의 매년 한국의 재정 구실이 매우 미약하며 국가채무는 낮은 데 반해 가계 부채는 지나치게 많다는 경고음을 울려왔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이런 재정 기조와 인식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지난해 4~5월 대선에서 당시 문재인 후보는 예산 규모를 임기 내 매년 7%씩 늘려간다며 과거 정부와 다른 재정 운용을 할 뜻을 밝혔으나, 정작 정권 출범 뒤엔 예산 증가 규모를 5.8%(2017~2021년 국가재정운용계획)로 끌어내렸다. 또 임기 5년 동안 3번의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한 박근혜 정부 때와 마찬가지로 문재인 정부도 올 상반기에 추경을 편성했다. 본예산을 적게 편성했다가 경기가 침체되면 뒤늦게 추경을 편성하는 건, 이전 정부에서도 반복된 예산 운영 방식이었다.

전문가들은 문재인 정부가 과거 정부보다는 공격적 재정 정책을 펴기에 다른 정권보다는 유리한 여건에 있다고 본다. 국정 지지도가 높은 터라 조세 저항에 맞설 여력이 있는데다, 소득 불평등이나 빈곤 해소를 위한 복지 확대에 긍정적인 여론도 과거보다 퍼져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주요국 채무비율이 급등한 터라 채무 확대에 따라 금융시장 불안이 나타날 공산이 낮다는 것도 현 정부엔 기회다.

조영철 고려대 초빙교수(경제학)는 “현 정부는 적극적 재정을 편다고 주장하나 대부분 초과세수(예산을 짤 때 예상한 세수보다 더 들어오는 세수)에만 의존하고 있다”며 “국정지지율이 매우 높은 현 정부가 (조세 저항이 두려워) 증세에 적극 나서지 못한다면 도대체 어느 정부가 증세를 할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조 교수는 “한국 경제는 (성장을 이끄는 3요소 중) 수출과 투자 의존도가 너무 높은 반면 소비는 너무 미약하다”며 “소득 재분배는 물론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라도 상당한 수준의 재정 확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경락 기자 sp9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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