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최고경영자(CEO) 스티브 잡스 회장이 27일(현지시각) 미국 샌프란시스코 예르바부에나센터에서 열린 새제품 발표회에서 첫 태블릿 피시인 ‘아이패드’를 직접 공개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AP 연합뉴스
신제품 발표 전엔 ‘비밀’ 철저…세계 언론 관심 증폭
“홍보비 없이 최대 효과”…대표 직접 발표 신뢰감 더해
“홍보비 없이 최대 효과”…대표 직접 발표 신뢰감 더해
“이게 아이패드입니다(It’s the iPad).” 애플의 최고경영자(CEO)인 스티브 잡스는 27일(미국시각) 오전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전시장 예르바부에나센터에서 애플의 신제품을 손에 들고 전세계인의 궁금증에 비로소 답을 내놨다. 그동안 애플은 이날 ‘최신 제품’(latest creation) 발표회를 연다는 것 외에는 공식적으로 밝힌 게 없었다. 애플의 철칙은 신제품에 대해 공식발표 행사 이전에 아무런 정보를 내놓지 않는다는 것이다. 언론의 집요한 확인 요청도 모두 무시한다. 세계 정보기술계와 언론, 얼리어답터들의 관심은 애플의 신제품이 무엇일지에 집중돼 있었다. 몇몇 신문은 스티브 잡스가 ‘내 생애 최고의 작품’이라고 언급했다며, 잡스가 오랜 동안 관심을 기울여온 ‘태블릿 피시’(PC)가 분명하다고 보도했다. “과연 잡스는 무엇을 들고 나타날 것인가. 예고된 대로 태블릿 피시일 것인가. 크기는 7인치일까, 10인치일까. 이름은 아이슬레이트인가, 아이패드인가. 운영체제는 맥일까, 아이폰 운영체제일까. 이동통신사 버라이즌과 손을 잡을 것인가. 대형서점 반스앤노블과 손잡은 이북일까, 신문과 잡지를 정기구독하는 모델일까. 값은 1000달러를 넘을 것인가, 500달러 수준일까.” 침묵은 추측을 낳고, 추측은 꼬리를 문 루머로 이어졌다. 호기심은 발표를 앞두고 증폭됐다.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가디언> 등 언론들도 실체가 밝혀지지 않은 ‘애플의 신제품’을 앞다퉈 보도했다. 국내 출시가 불투명한 상태에서 국내 언론들도 애플의 신제품에 대해 경쟁적으로 보도했다. 애플은 아무 것도 알리지 않았지만 ‘신제품’ 정보는 각종 매체와 인터넷에 넘쳐났고, 소비자들은 광고를 퍼부은 어떠한 제품보다 많은 정보를 접한 채 실제 제품을 만나게 된 것이다. 애플코리아에서 홍보와 마케팅을 맡고 있는 박정훈 부장은 “애플은 제품이 나오면 비로소 완성된 제품으로 말한다는, 마케팅의 교과서를 따를 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치밀하게 계산된 마케팅 전략이라고 말한다. 이동훈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애플의 비밀주의’에 대해 “홍보비 없이 최대의 효과를 누리는 마케팅 방법”이라며 “강력한 브랜드 파워가 없으면 불가능하고, 소비자가 뛰어난 제품이라는 신념을 갖고 열성적 지지와 관심을 보낼 때 가능하다”고 말했다. 베일 속에 가려진 채 소문과 관심을 증폭시켜온 애플의 주요 신제품들은 잡스에 의해 발표회장에서 공개돼 왔다. 잡스는 2005년 청바지 동전주머니 속에서 아이팟을 꺼내 그 작은 크기로 청중을 놀라게 하고, 2008년엔 얇은 서류봉투 속에서 얇디얇은 맥북에어를 꺼내 갈채를 받았다. 지난해 6월 샌프란시스코 모스콘센터에서 열린 아이폰3Gs 발표회 때도 제품의 기술적 특성을 잘 드러낸 프레젠테이션에 환호와 박수가 쏟아지면서도 마치 종교적 제의나 대중가수의 콘서트를 떠올리게 했다. 오너가 직접 나서 명확한 언어로 간결하게 제품의 특성을 시연을 통해 보여주는 이런 제품 발표회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나 구글의 세르게이 브린, 래리 페이지 등 기술을 바탕으로 창업한 오너가 있는 세계적 정보기술 기업에서 흔하게 보는 풍경이다. 애플의 비밀주의는 숱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애플은 공식 발표 이전에 정보를 누설한 직원이나 제휴업체는 ‘응징’하는 걸로 알려져 있다. 애플은 철저하게 정보를 통제하지만, 애플의 신제품 정보와 루머를 전문으로 다루는 맥루머닷컴(macrumors.com)이나 애플인사이더(appleinsider.com) 같은 사이트가 생겨나 어떤 업체보다 많은 정보가 입소문을 통해 전달된다. 비밀주의를 유지하면서 회사 대표가 직접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하는 것은 제품에 대해 고객들의 높은 관심을 끌어낸다. 이 연구원은 “오너가 개발에 깊이 관여한 제품을 직접 설명한다면 소비자에게 큰 신뢰를 주게 된다”고 말했다. 오너가 깊이 개입한 제품이 비밀에 가려 있으면 소비자 궁금증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애플의 ‘비밀주의’는 홍보효과 극대화를 노린 마케팅 수단이라는 점보다 무엇이 그 대상이 될 수 있는지를 알려준다. 미국의 마케팅 전문가들은 “이런 마케팅은 애플도 2~3년에 한번 정도밖에 못한다”며, 혁신적인 제품만이 그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애플은 아이맥, 아이팟, 아이폰이 나올 때마다 시장의 예상을 깨고 게임의 규칙을 바꾸고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어낸 ‘학습효과’가 있어, 성공이 성공을 키우는 모습이다. ‘창의적 제품’과 소비자의 ‘혁신에 대한 열광’이 모두가 부러워하는 마케팅의 뿌리다. 구본권 기자 starry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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