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검색중’…당신을 ‘공유’하시겠습니까
[프라이버시의 종말]
인터넷 무한검색의 유혹
개인정보서 국가기밀까지
실시간 노출 피할수 없어
당신이 언제 어디서 뭘 했나
망각 없는 디지털 시대로
인터넷 무한검색의 유혹
개인정보서 국가기밀까지
실시간 노출 피할수 없어
당신이 언제 어디서 뭘 했나
망각 없는 디지털 시대로
인터넷 시대의 미디어 환경을 연구하는 한 국립대 교수는 최근 페이스북에서 탈퇴했다. 페이스북이 그간 지인이나 제자들과의 관계 맺기나 새로운 미디어 현상 연구에 유용했지만, 자신의 개인정보가 노출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점차 커졌기 때문이다. 서울 시내 한 사립대의 정치학 교수는 트위터에 가입하지 않았다. 그는 신문과 방송 등 각종 매체를 통해 자주 의견을 밝히고 트위터가 불러온 새로운 정보유통 현상도 높이 평가하지만, 정작 자신은 사용하지 않는다. 트위터에 남긴 한 줄의 글이 불러올지도 모를 파괴력을 익히 알기 때문이다.
‘모든 게 검색되는’ 디지털 문명의 편리함이 ‘프라이버시의 종말’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
인기 그룹 투피엠(2PM)의 멤버인 박재범은 10대 연습생 시절 “한국이 싫다”고 남긴 인터넷 글이 뒤늦게 알려져 인기 정상의 시점에서 온갖 비난 속에 그룹을 탈퇴하고 한국을 떠나야 했다. 제자와 불미스런 일을 저지른 교사나, 환경미화원을 무시한 대학생 등 ‘일반인’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사건’이 인터넷에 알려지면, 순식간에 개인정보가 노출돼 예상치 못한 피해로 이어진다. ‘신상털기’, ‘마녀사냥’이라고 불리는 순서가 기다리고 있는 탓이다. 평소엔 별 의미 없는 단편적인 정보들일지라도, 익명의 대중이 참여하는 프로파일링을 거치면 개인에 관한 종합적이고 심층적인 정보 파일로 탈바꿈한다. 본인도 좀체 기억하지 못하는 오래전 언행이나 다른 사람들의 평가와 기억 등이 어우러진 파일이 순식간에 만들어져서 공유되는 일이 드물지 않게 일어나고 있다.
디지털 환경에서 프라이버시 노출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검색어만 입력하면 누구나 인류가 오랫동안 집적해온 지식에 바로 접근할 수 있는 세상에서, 검색엔진은 개인들의 프라이버시 영역을 ‘성역’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지난해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는 경쟁적으로 실시간 검색과 소셜네트워크 서비스 검색을 내놓았다. 트위터나 페이스북과 같은 사회관계망 기반 서비스의 콘텐츠가 검색에 포함됨에 따라, 사용자가 자신의 지인들에게 “종로3가 ○○커피숍에서 카푸치노 먹는 중”이라고 전달한 내용도 몇 초 뒤면 전세계 인터넷 사용자에게 공유된다.
디지털 세상에서 흔적이 남는 건 게시판, 댓글, 블로그, 카페, 트위터 등 사용자가 공개를 염두에 두고 작성한 콘텐츠만이 아니다. 검색어, 즐겨찾기, 인터넷 방문기록, 로그인 장소와 시각 등 인터넷을 통해 사용한 모든 흔적이 디지털로 남기 마련이다. 게다가 디지털 정보의 특성은 시간이 지나도 변형되지 않으며, 언제 어디서나 무한이용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컴퓨터나 스마트폰만이 아니라, 텔레비전, 냉장고, 승용차 등 더 많은 기기들이 인터넷에 연결되는 세상이 기다리고 있다. 인터넷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것은 디지털 데이터로 축적되어 검색되거나 유출될 수 있다. 줄리언 어산지가 위키리크스를 통해 미국의 기밀정보를 폭로할 수 있는 배경은 정보가 디지털로 축적돼 있었다는 점이다.
기술은 검색 대상을 갈수록 넓혀가고 있다. 구글은 지난해 초 고글스라는 이미지 검색을 선보였다. 이름 모를 들꽃을 사진 찍어 올리면 그에 대한 검색 결과를 보여주는 서비스다. 이미 디지털카메라에서 보편화한 얼굴 인식기능을 곳곳에서 행인의 일상을 기록하는 폐쇄회로 카메라 영상과 결합시켜 검색 결과에 포함하면 가공할 서비스가 태어난다. 스마트폰이 보편화하면서 사용자들은 이동 중에도 끊임없이 인터넷에 접속하고, 구글 래티튜드나 포스퀘어 등 자신의 위치를 공개하는 서비스를 꺼리지 않는다. 실시간 위치정보와 평소의 이동 궤적이 인터넷에 노출되는 것을 꺼리지 않는 이유는 개인정보 공개를 통해 기대하는 가치 때문이다. 자신의 현재 위치나 관심사를 지인들과 공유하면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고, 업체들은 가까이 있는 잠재고객에게 쿠폰과 같은 혜택을 제공한다. 사용자만 6억명에 육박하는 세계 최대 인맥사이트 페이스북의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는 “사생활의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한 바 있다. 구글 최고경영자 에릭 슈밋은 “당신이 길을 걸을 때 구글은 당신이 어디 있는지, 무엇에 관심을 가지는지, 친구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다”며 “알리고 싶지 않은 것이 있다면, 처음부터 (웹에) 알리지 말아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디지털 문명은 수천년 전 문자의 발명 이래 기본적으로 변화가 없던 인류의 기억과 망각에 관한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꿔놓고 있다. <삭제(Delete): 디지털 시대 망각의 가치>를 펴낸 빅터 마이어쇤버거는 “유사 이래 인류는 망각이 기본이고 기억하는 것이 예외였으나 디지털 기술과 전지구적 네트워크의 등장은 망각이 예외가 되고 기억하는 것을 기본으로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시간이 흘러도 정보가 사라지지 않는 디지털 시대에 개인들의 사생활이 인터넷 검색에 노출되기 시작하면서 프라이버시에 대한 포괄적이고 근본적인 검토와 논의 필요성이 높아져 가고 있다. 구본권 기자 starry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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