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 1호기의 ‘퇴역’은 40년 가까이 핵발전소 중심으로 이어져 온 에너지 정책에 큰 변화를 가져올 상징적 사건이다. 국내 첫 상업용 핵발전소가 처음으로 해체 작업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의 9일 결정에 따라 원자로를 멈추기 위해 17일부터 발전 출력을 줄여가며, 원자로의 가동을 멈춘다. 19일 오후에는 부산 기장군 고리원자력발전본부에서 고리 1호기 퇴역 기념식이 열리지만, ‘진짜 퇴역 작업’은 이때부터 시작한다. 19∼26일 원자로에 있던 사용후핵연료를 꺼내 핵발전소 안에 있는 사용후핵연료저장조(SFP)로 옮기고, 2018년 1월까지 저장조의 냉각계통을 이중으로 만드는 공사도 해야 한다.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때처럼 침수 등으로 냉각기능이 불능 상태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한 작업이다. 원자력안전전문위원회는 원자로에서 빼낸 사용후핵연료의 보관 방식에 대해 “2차 폐기물이 적고, 피동형 설비라 안전성 측면에서 유리한 건식 저장 방식(핵연료를 물 속에 담가 식히지 않고 외부에 쌓아 밀봉하는 방식)을 검토해달라”고 원안위에 밝혔다.
핵발전소 시설을 없애는 ‘폐로’ 작업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도 짜야 한다. 국내에서는 서울 공릉동 옛 한국원자력연구소에 있던 연구용 원자로 ‘트리가 마크3’(발전용량 2㎽)의 폐로 작업이 이뤄진 바 있지만, 상업용 핵발전소의 해체는 처음이다. 1995년 영구정지에 들어간 트리가 마크3는 폐로 작업에 12년이 걸렸다. 한수원은 고리 1호기의 폐로 작업을 담은 ‘예비 해체계획서’를 2018년 7월까지 원안위에 내야 한다. 2022년 6월18일까지는 고리 1호기 주변 주민들의 의견까지 반영한 최종본인 ‘해체계획서’도 준비해야 한다.
이번 고리 1호기의 퇴역 결정을 계기로 앞으로 ‘탈핵 정책’이 힘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미 ‘설계수명이 다한 원전 즉각 폐쇄’와 ‘신규 원전 전면 중단’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기 때문이다.
당장 신고리 5·6호기의 건설 중단 여부에 관심이 높다. 한수원이 밝힌 신고리 5·6호기의 현재 공정률은 27.6%다. 대선 과정에서 문 대통령은 “신고리 5·6호기의 신규건설을 중단하겠다”고 밝혔지만 원자력계와 지역 주민들은 반발하고 있다. 반면 환경운동연합은 “대만 민진당이 ‘탈핵 정책’을 선언하면서 공정률 98%인 롱먼4호기의 공사를 중단한 사례처럼 문 대통령이 건설 중단을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월성 1호기의 계속운전 허가 논란도 남아있다. 앞서 경주시 주민은 “월성 1호기가 2022년 11월20일까지 설계수명을 연장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다”며 원안위와 한수원을 상대로 계속운전 허가 효력 집행정지 신청을 했다. 이달 말 결정이 날 전망인데, 재판부가 집행정지 신청을 인용하면 월성 1호기는 당장 가동을 중단해야 한다.
한편, 청와대는 최근 청와대 사회수석실 기후환경비서관으로 녹색연합 공동대표를 지낸 김혜애 서울에너지드림센터장을, 기후환경비서관실 행정관으로는 독일 탈핵정책 전문가인 염광희 서울에너지공사 에너지연구소 책임연구원을 임명했다. 기후환경비서관실을 중심으로 정부의 탈핵 정책이 짜여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
◎ Weconomy 홈페이지 바로가기: https://www.hani.co.kr/arti/economy/◎ Weconomy 페이스북 바로가기: https://www.facebook.com/econohan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