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3월25일 한진칼 주주총회를 앞두고 한진그룹 총수 일가와 사모펀드 등이 합종연횡하며 경영권 다툼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캐스팅보드 구실을 할 국민연금의 보유 지분율이 애초 알려진 4.11%보다 크게 적은 2.9%가량인 것으로 확인됐다. 또 미래에셋자산운용 등 여러 자산운용사들도 운용 펀드를 통해 한진칼 주식을 적게는 수만주, 많게는 수십만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러한 기관투자자들의 보유 지분 규모는 한진 일가 경영권 다툼의 결과를 가늠하기 더욱 어렵게 하는 요소다. 여기에다 이번 주총부터 도입하기로 한 전자투표제에 따라 주총 참석률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터라 ‘표 계산’은 한층 더 복잡해진다.
국민연금, 지분율 2%대
11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이번 주총 때 의결권 행사가 가능한 지분 기준일인 지난해 12월26일(주주명부폐쇄일) 현재 국민연금의 한진칼 지분율은 2.9%였다. 미래에셋자산운용과 삼성자산운용도 각각 50여만주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그간 증권 분석가들은 연금의 지분율을 4.11%로 간주해서 총수 일가 등의 표 대결을 분석해왔다. 이는 보유 지분율을 공개하는 공시 제도의 한계에 따른 것이었다. 현 공시제도는 보유 지분율이 5% 아래로 내려간 이후에는 보유자의 지분 공시 의무를 지우지 않는다. 실제 국민연금은 지분율이 종전 보고일(지난해 4월9일) 5.36%에서 4.11%로 내려간 사실을 공시한 지난해 4월23일 이후 지분 변화를 공개하지 않았다.
이에 오는 3월 주총 때 의결권 행사가 가능한 지분 기준일인 지난해 12월26일(주주명부폐쇄일) 현재 연금 지분율은 안갯속에 있었다. 다만 연금이 최근 2~3년에 걸쳐 꾸준히 한진칼 지분율을 줄여온 점(11→5%)에서 시장은 연금 지분율이 공시 시점(4.11%)보다는 낮아졌을 것이라는 ‘짐작’만 해왔다. 공시는 아니지만, 가장 최근 국민연금의 한진칼 지분이 드러난 것은 김명연 자유한국당 의원(보건복지위)이 지난해 국정감사 때 국민연금으로부터 제출받아 공개한 ‘6월 말 기준 3.45% 보유’가 마지막이다.
연금의 지분율이 시장 추정치보다 크게 낮은 터라 한진 경영권 다툼에서 캐스팅보드로서의 연금 영향력은 다소 줄어드는 대신, 0~1%대 수준의 지분을 들고 있는 자산운용사 등 기관투자자들과 다수 소액주주의 영향력은 애초 예상보다 높게 평가될 전망이다.
전자투표제 도입도 변수
갈등의 양 당사자인 조원태 회장 쪽과 사모펀드 케이씨지아이(KCGI·일명 강성부 펀드)와 손잡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쪽이 확보한 지분 차이는 크지 않다. 오는 3월25일 한진칼 주총에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지분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조 회장 쪽은 지난달 같은 편에 서기로 선언한 모친(이명희 고문)과 동생(조현민 전무), 계열사 임원 등을 포함해 지분 22.45%를 확보했다. 여기에 시장에선 한진칼 자회사 대한항공과 사업 연계가 있는 델타항공(10%)과 카카오(1%) 지분도 조 회장 쪽 우호지분으로 분류한다. 여기에 맞서는 조현아 전 부사장 쪽은 본인 지분(6.49%)과 케이씨지아이(17.29%), 반도건설(8.20%) 지분 등 모두 지분 31.98%를 확보하고 있다. 양쪽의 지분 차이가 1.47%포인트에 그치는 셈이다.
오는 3월 주총에서 핵심 쟁점이 될 안건은 임기 만료가 되는 조원태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안이다. 한진칼 정관에 따라 이사 선임 가결은 주총 출석주주 과반의 찬성이 필요하다. 지난해 3월 주총 때 출석률(77.18%)이 이번 주총에도 유지된다는 것을 전제로 하면, 조 회장 쪽 가결 지분율(38.59%)에는 6%포인트가량이 부족하다. 연금 등 기관투자자와 소액주주 중 일부의 표를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 셈이다. 조만간 주주제안 절차를 거쳐 조 회장이 아닌 전문경영인 등 제3의 사내·외 이사 선임안을 제출할 가능성이 큰 조 부사장 쪽도 해당 안건을 가결하기 위해선 약 7%포인트의 우호지분을 추가 확보해야 한다.
증권 분석가들은 ‘전자투표제’가 변수가 될 것으로 본다. 주총장에 참석하지 않아도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만큼 주총 출석률을 높아지면서 안건 가결 기준 지분율도 함께 올라갈 여지가 크기 때문이다. 시장에선 양쪽이 확보해야 할 실제 우호지분은 10% 내외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본다.
막판까지 표심 잡기 활발 전망
또 다른 변수는 국내외 주요 의결권 자문기관들의 행보다. 자문기관들은 자체 기준에 따라 기관투자자에게 의결권 행사 방향을 권고한다. 지난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당시 아이에스에스(ISS) 등이 합병 반대에 손을 들면서 자문기관들의 존재감이 크게 부각된 바 있다. 기관투자자들이 이런 자문기관의 권고와 다른 선택을 할 땐 자칫 ‘해명’을 요구받을 수도 있다.
다만 한진의 경우 총수 일가가 갈라져 싸우고 있는 터라 자문기관들의 셈법도 복잡해질 것이란 관측이 많다. 일부에선 현 경영진이 제출할 안건과 조 부사장 쪽이 내놓을 안건 모두에 ‘반대’를 권고하는 상황이 펼쳐질 수 있다고 본다.
결국 갈등 당사자인 양쪽은 기관투자자와 소수 주주의 환심을 사기 위한 주주가치 제고 방안이 주총 전까지 쏟아낼 공산이 높다. 주로 경영권을 쥐고 있는 조 회장 쪽이 주주가치 제고 방안을 내놓으며 승부수를 띄우면, 조 부사장 쪽은 이의 허구성을 짚으며 반박하는 양상이 반복될 전망이다. 실제 조 회장 쪽이 지난 6~7일 이틀 연속 재무구조 및 지배구조 개선방안을 내놨고, 조 부사장 쪽은 “주총을 앞두고 주주들의 표를 얻기 위해 급조한 대책”이라고 맞받았다.
김장원 아이비케이(IBK)투자증권 연구원도 “주주가치 제고는 양측 모두 양보할 수 없는 안건이기에 과하다 싶을 정도로 제고 방안을 마련할 가능성이 큰데, 조 회장 쪽이 선점을 뺏긴 명분을 가져오기 위해 고심할 것이며, 이는 케이씨지아이 쪽도 마찬가지여서 3월 주총 전까지 양쪽 모두 분주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민정 기자
sh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