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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빈농에게 토지를…” 주목받는 ‘인디오 대통령’의 실험

등록 2010-09-26 21:10

농민 아르만도 사발라 페냐가 2008년 분배받은 땅에서 기르는 토마토를 보여주고 있다.
농민 아르만도 사발라 페냐가 2008년 분배받은 땅에서 기르는 토마토를 보여주고 있다.
모랄레스 집권뒤 국유지등 재분배로 ‘가난과 싸움’
기간산업 국유화도…개혁정책 성공여부 미지수
[남미 독립 200년 새로운 리더십을 찾아서]
⑤ 볼리비아판 인클로저운동

볼리비아 최대 도시 산타크루스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파울리토 마을은 사방이 탁 트인 평원지대다. 아르만도 사발라 페냐(67)는 20㏊(20만㎡)의 땅에서 젖소와 토마토를 기르는 농부다. 이 마을에서 태어나 줄곧 농사를 지은 페냐가 자기 이름으로 된 땅을 가진 것은 불과 2년 전이다. 그 전에는 주인이 누구인지 모르는 땅을 개간해 농사를 지었을 뿐이었다.

‘평생 농부’ 페냐가 머리에 서리가 앉은 뒤에나마 땅주인 노릇을 하게 된 것은 볼리비아 정부 개혁의 핵심인 농지분배 덕분이다. 볼리비아 정부는 토지 소유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 빈농과 인디오 원주민에게 땅을 되찾아주자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페냐는 자기 이름으로 땅을 등록하고 철조망을 두른 뒤에야 비로소 땅을 가진 농민이 됐음을 실감했다. 그는 “이제 확실히 내 땅을 갖고 보호를 받게 돼 걱정이 없다”고 말했다.

산타크루스주 도처에서는 갈망하던 땅을 갖게 된 농민들이 철조망을 두르고 있다. 볼리비아판 인클로저(울타리 치기)운동이라고 할 만하다. 영국의 원조 인클로저운동이 산업혁명 전야에 농민들을 토지에서 몰아내는 효과를 봤다면, 볼리비아판은 농민들에게 땅을 선사하는 반대의 역할을 하고 있다. 볼리비아 전체로는 이제까지 1400만㏊가 분배됐고 올해 700만㏊의 분배가 추가로 진행되고 있다.

다른 산업의 발전이 미미한 볼리비아에서 중요성이 더한 농업에 변혁의 물결이 일기 시작한 것은 첫 원주민 출신 대통령인 에보 모랄레스가 집권한 2006년부터다. 코카 재배농 출신인 그는 농지분배를 “원주민 해방”의 유력한 수단으로 제시했다.

농지분배는 산악국가로 불리는 볼리비아에서 지평선이 가물가물할 정도로 평지인 동부 산타크루스주에 집중되고 있다. 경작지가 넓기도 하지만 소유 면적 차이가 비현실적일 정도로 크기 때문이다. 유엔개발계획(UNDP) 조사에서 산타크루스 등 저지대 4개 주에서는 100가구가 한반도 면적보다 큰 2500만㏊를 소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농 200만가구의 소유 면적은 500만㏊에 불과하다. 볼리비아 인구 920만명 중 63%가 빈곤층이고, 농촌에서는 그 비율이 80%인 현실이 이를 반영한다.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운 토지 소유 편중은 1960~70년대에 심화됐다. 독재정권이 친한 인사들에게 땅을 마구 불하한 게 원인이다. 더불어 석유 등 천연자원을 국내외 엘리트들이 헐값에 차지하면서 볼리비아는 남미에서 가이아나 다음가는 빈국인 동시에 “성공적인 신자유주의 실험실”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그러나 스페인 침략 이후 500여년 만에 복원된 ‘원주민 정치’는 농지분배를 실시하고 개인의 토지 취득 규모를 5000㏊로 제한했다. 몇몇 대지주들에 대해서는 토지 몰수도 이뤄졌다. 토지 분배작업에 쓰이는 돈은 정부가 지배적 위치에 서면서 더 뽑아내게 된 석유 수입에서 나오고 있다. 모랄레스 정부는 또 석유와 전력산업을 국유화하면서 볼리비아를 “또다른 분배혁명의 실험실”로 만들어 왔다.


농지분배를 주도하는 농업개혁청의 디에고 마르키나 몰리나 산타크루스주 지역청장은 “산타크루스주에서는 현재까지 1만2000여가구가 토지를 분배받았고, 농민들은 아주 행복해하고 있다”며 “땅을 놀리는 대지주들한테는 작물 재배지는 50%, 목장은 30%의 지대를 받고 소작을 주도록 강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농지분배는 대부분 애초 농지로 이용되던 국유지나 무연고 토지를 대상으로 이뤄져, 실제 재분배 효과는 요란한 정치적 구호가 불러오는 인상만큼 크지는 않다. 30여 원주민 부족이 살고 있는 라파스주 등 서부 산악지대에는 분배할 토지가 충분하지 않을뿐더러 농지의 생산력도 떨어지는 문제가 있다. 스페인 정복자들과 뒤이은 독재권력에 빼앗긴 재산과 권리를 되찾겠다는 볼리비아 정부와 민중의 시도가 ‘승리’를 선언하기까지는 아직 갈길이 멀어 보인다.

산타크루스/글·사진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현정부가 좇는 노선은 개량·발전된 사회주의”


모랄레스 측근 쿠차요 상원의원
모랄레스 측근 쿠차요 상원의원
모랄레스 측근 쿠차요 상원의원

볼리비아 농민총연맹 사무총장 출신으로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의 측근인 이삭 아발로스 쿠차요 상원의원은 “원주민 출신, 빈민 출신의 첫 대통령인 모랄레스 대통령은 필연적으로 변화와 변혁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자신도 23㏊를 분배받았다는 쿠차요 상원의원은 농지분배가 모랄레스 정부의 핵심 치적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농지가 적은 라파스주나 오루로주 등 서부 고원지대에서는 분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게 한계라고 지적했다. 밀림 지역에서는 1000㏊까지 분배받는 농민도 있지만, 토지의 생산력이나 농민들의 경작 능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문제점도 있다고 그는 밝혔다.

쿠차요 상원의원은 “매국노”인 이전 통치자들과 모랄레스 대통령은 확연히 다르다고 주장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은 나라 재산을 팔아넘긴 매국노였다”면서 “그에 반해 모랄레스 대통령은 민영화됐던 기업체들을 다시 국영화하고, 부정부패를 근절하고, 문맹을 퇴치하는 노력을 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볼리비아 정부가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 이끄는 베네수엘라를 맹목적으로 좇을 뿐’이라는 비난에 대해서는 “베네수엘라는 우리한테 차관을 제공하고, 유전 탐사에도 많은 도움을 주는 우방인데 욕할 일이 뭐가 있냐”고 반문했다.

모랄레스 대통령이 이끄는 사회주의운동당 소속인 그는 사회주의 노선을 추구한다는 정적들의 비난과 관련해서는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은 예전 개념의 사회주의가 아니가 개량되고 더 발전된 사회주의”라고 말했다. 라파스/글·사진 이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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