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11월8일 치러진 미국 대선은 미국 사회의 맨얼굴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부동산 재벌인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는 정치 경험이 전무했지만, 고립주의와 보호주의를 내세우며 세계화의 그늘이었던 백인 노동자 계층을 자신의 지지층으로 끌어들였다. 이 과정에서 그는 거침없는 막말과 기득권층을 향한 분노를 적절하게 이용했다. 트럼프는 공화당 경선에서 준비되지 않은 모습을 보였음에도 백인우월주의에 입각한 인종적 배타주의와 보호무역주의라는 두 무기로 공화당 중심세력을 하나둘씩 제쳤다. 멕시코 장벽 설치, 히스패닉 비하, 보호무역 등 공화당 주류와 어긋나는 정책, ‘대통령답지 않은’ 거친 행동과 전술이 오히려 ‘정치적 올바름’에 지친 지지자들을 흥분시켰다.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는 당선되면 미국 역사상 첫 여성 대통령이란 상징성을 갖고 있었지만, 월가와 결탁한 워싱턴 주류와 엘리트들의 야합이라는 이미지가 발목을 잡았다.
지난 8월 시작된 클린턴과 트럼프의 본선은 일방적으로 클린턴에게 유리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10월 연방수사국(FBI)이 클린턴의 ‘이메일 스캔들’ 재수사 방침을 밝히면서 공화당 성향의 부동층 유권자들이 트럼프 쪽으로 결집했다. 또다른 ‘아웃사이더’ 열풍을 일으켰던 버니 샌더스 후보 지지자들은 클린턴 지지층으로 흡수되지 않았고, 이는 미시간과 위스콘신 등 민주당의 마지막 방화벽마저 무너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결국 선거 결과는 예상을 뒤엎고 트럼프의 승리로 끝나 세계를 경악시켰다.
트럼프의 승리는 엘리트 중심의 미국 사회에 대한 기층민들의 경고와 주인 자리를 내주고 있다고 느끼는 백인들의 인종적 위기의식이 결합된 변종의 결과물이다. 더욱이 트럼프의 당선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그동안 쌓은 소수자 인권, 환경, 글로벌 군축 등의 업적을 모두 물거품처럼 사라지게 만들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키우고 있다. 때맞춰 유럽에서도 트럼프의 당선에 힘입어 난민 반대와 보호주의 등을 내세우는 우파 포퓰리즘 정당들이 힘을 얻고 있다.
② 브렉시트와 극우세력 득세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결정은 국제질서의 큰 축인 유럽연합(EU)을 뒤흔든 사건이었다.
영국인들은 6월23일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에서 탈퇴 51.9%, 잔류 48.1%로 탈퇴를 결정했다. 사전 여론조사에선 잔류 결정이 나올 것으로 예상됐으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런던 중심부에서는 잔류를 주장하는 이들을 더 많이 볼 수 있었지만, 영국 내부에 깔려 있던 이민자 증가에 대한 반감이 예상보다 컸다.
이 결과,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사임하고, 영국의 2번째 여성 총리인 테리사 메이가 취임했다.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결정을 계기로 유럽의 극우파들은 더욱 힘을 키우고 있다. 브렉시트를 환영한다고 밝힌 프랑스의 극우정당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 대표는 새해에 열릴 프랑스 대선에서 결선에 오를 듯 보인다. 독일의 극우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은 9월 동북부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주 의회 선거에서 집권 기독민주당을 제치고 2위를 했으며, 내년 총선에서도 상당한 득표를 할 것으로 예상된다.
③ 니스에서 베를린까지, 끝없는 테러
2016년에도 세계 곳곳에서 테러가 끊이지 않았다. 프랑스 대혁명 기념일(바스티유의 날)인 7월14일 프랑스 남부 해변도시 니스에서 이슬람 극단주의의 영향을 받은 남성이 트럭을 몰고 돌진해 86명이 숨졌다. 프랑스는 지난해 130명이 희생된 파리 테러에 이어 올해도 대형 테러라는 참사를 겪었다. 12월19일에는 독일 수도 베를린에서 니스 테러를 흉내낸 듯한 트럭 돌진 테러가 일어나 적어도 12명이 숨졌다. 또 3월과 6월 각각 벨기에 브뤼셀과 터키 이스탄불의 공항에서 역시 이슬람 극단주의의 소행으로 보이는 폭탄 테러가 일어났다. 6월에는 미국 플로리다 올랜도에서도 나이트클럽 총기난사로 49명이 숨졌다.
④ 오바마, 히로시마 방문 - 아베, 진주만 방문
71년 전 총부리를 겨눴던 미국과 일본은 역사적 앙금을 털고 ‘거대한 화해’를 연출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5월27일 미국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피폭지인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을 찾아 헌화했다. 그는 이를 통해 ‘핵 없는 세계’를 위한 자신의 비전을 다시 한번 밝혔다. 연말에는 아베 신조 총리가 움직였다. 그는 12월27일 일본군의 기습 공격이 이뤄졌던 하와이 진주만을 찾아 당시 침몰한 미 전함 애리조나호 위에 조성된 ‘애리조나 기념관’에 헌화한다. 미·일은 중국의 부상을 억제하기 위해 미-일 동맹을 강화하고 있다.
⑤ 노벨문학상에 밥 딜런
10월13일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미국의 가수 밥 딜런(75)이 선정돼 큰 파장과 논란을 불렀다. 스웨덴 한림원은 1960년대 반전운동의 상징인 딜런이 만들고 부른 서정적인 사회참여 노래들이 문학적 성취를 이뤘다고 했다. 옹호론자들은 딜런의 수상은 문학의 영역을 확장하는 것이라고 했다. 반대론자들은 그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기존 문학과 작가의 위축만을 부를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작 딜런 자신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다가 2주일 뒤에야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에 말문이 막혔다”고 소감을 나타냈다. 하지만 수상식에는 약속이 있다는 이유로 참석하지 않았다.
⑥ 시리아 알레포의 비극
2011년 3월 바샤르 아사드 정부를 반대하는 민주화 시위로 촉발된 시리아 내전은 올해로 6년이 지나며 더욱 격화되고 있다. 약 40만명이 숨지고, 481만명이 국외 난민이 됐고, 시리아 국내에서도 630만명이 난민이 됐다. 시리아 내전은 인근 중동 국가뿐만 아니라 유럽에도 난민 사태를 불러와,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와 반이슬람 포퓰리즘 확산의 배경이 되고 있다. 지난해부터 러시아의 지원을 받는 아사드 정부군은 올해 하반기부터 최대 격전지인 알레포에 대한 탈환 공세를 벌여 인도적 재앙 사태를 불렀다. 25만명의 주민이 고립된 알레포에서는 약 3만1천명이 숨졌다. 아사드 정부군은 알레포 탈환으로 인구밀집지역인 지중해 연안과 서부 지역을 장악했으나 내전은 더욱 교착상태로 빠져들었다.
⑦ 피델 카스트로 사망
체 게바라와 함께 쿠바 혁명을 이끌었던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이 11월26일 90살을 일기로 타계했다. 1926년 스페인 이주민의 아들로 태어난 카스트로는 대학 시절 사회주의 혁명에 뛰어들었다. 1955년 멕시코에서 체 게바라를 만나 본격적인 게릴라 투쟁을 벌이다 1959년 1월 쿠바 혁명에 성공해 정권을 잡았다. 이후 사회주의를 표방하며 무상교육, 무상의료를 실시했다. 건강 악화로 은퇴한 2008년까지 반세기 동안 쿠바의 최고 지도자로 재임한 그는 평생 철저한 반미 공산주의 노선을 걸었다. 그러나 지난해 미국과 쿠바가 반세기의 적대 관계를 청산하고 국교를 정상화하는 것을 지켜본 뒤 눈을 감았다.
⑧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의 막말과 마약전쟁
5월9일 실시된 제16대 필리핀 대통령 선거에서 각종 막말과 기행으로 ‘필리핀의 트럼프’라는 별명이 붙은 로드리고 두테르테 후보가 당선됐다. 두테르테 취임 이후 시작된 ‘마약 소탕 작전’에서 3개월간 3천여명의 마약 용의자가 사살됐는데, 이 과정에서 마약과는 관계없는 무고한 민간인들이 자경단을 비롯한 괴한의 총에 숨지면서 초사법적 살인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마약과의 전쟁에서 촉발된 논란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정치외교 판도까지 뒤흔들고 있다. 두테르테는 마약 소탕 작전을 반인권적이라고 비판했던 미국이나 유럽연합 등 우방국들을 비난하면서 친중 행보를 가속화하고 있다. 그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개××”라고 부르기도 했다.
⑨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 탄핵
브라질 사상 첫 여성 대통령이던 지우마 호세프(68·브라질노동자당) 대통령이 8월31일 보수 야당이 주도한 의회 상원의 최종표결에서 탄핵이 확정됐다. 호세프가 연임에 성공한 2014년 대선 당시 국영은행 돈을 차입해 재정적자 폭을 줄인 연방회계법 위반 혐의였다. 젊은 시절 친미 군부독재정권에 맞섰던 게릴라 전사 출신의 호세프는 “기득권 세력의 의회 쿠데타”라며 탄핵 부당성을 주장했지만 벽을 넘지 못했다. 호세프 정부에서 부통령이던 우파 정치인 미셰우 테메르(75·브라질민주운동당)가 대통령직을 승계하면서, 2003년 금속노동자 출신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71) 전 대통령 이래 14년째 이어진 브라질노동자당 정부 시대도 일단 막을 내렸다.
⑩ 터키 군사쿠데타 실패
7월15일 터키 군부 주도로 발생한 쿠데타는 6시간 만에 실패로 끝났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쿠데타 제압 직후 “반역 행위를 저지른 이들은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선포했듯, 에르도안 대통령은 오히려 쿠데타를 빌미삼아 세속주의 성향이 강한 군부와 사법부 등 자신의 반대세력을 정리하면서 대통령 권한을 강화하고 있다. 쿠데타 이후 3주간 쿠데타 연루 이유로 1만8천여명의 군인이 체포됐고, 법조계와 언론계, 지역 정부 등 주요 공직에서도 수만명이 해임됐다. 러시아가 쿠데타 진압을 도우면서 터키와 러시아의 관계가 급속하게 개선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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