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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중동·아프리카

놀이하듯 총탄 최루탄 퍼부어

등록 2007-02-02 18:27수정 2007-02-03 01:10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라말라 근처 빌린 마을에 설치된 이스라엘의 분리장벽. 장벽 너머 언덕 위로 유대인 정착촌이 보인다. 모두 700킬로미터에 이르는 분리장벽은 유대인 정착촌과 팔레스타인 주민 지역을 분리하기 위해 이스라엘이 건설한 것이다. 군사점령 지역 안에서 정착촌을 짓고 분리장벽을 세우는 것은 모두 국제법 위반이다.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라말라 근처 빌린 마을에 설치된 이스라엘의 분리장벽. 장벽 너머 언덕 위로 유대인 정착촌이 보인다. 모두 700킬로미터에 이르는 분리장벽은 유대인 정착촌과 팔레스타인 주민 지역을 분리하기 위해 이스라엘이 건설한 것이다. 군사점령 지역 안에서 정착촌을 짓고 분리장벽을 세우는 것은 모두 국제법 위반이다.
[팔레스타인에서 온 편지] ① 국제법 위반 ‘유대인 장벽’ 맞선 시위대 향해 총탄
빌르린으로 가는 길은 아름다웠다.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라말라에서 버스로 30분 거리에 있는 이 작은 시골 마을로 가는 길에는 팔레스타인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전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굽이치는 산등성이, 거칠고 메말라 보이는 높고 낮은 산, 바위들 틈에서 자라는 이름 모를 초목들, 그리고 수많은 올리브 나무 밭.

우뚝 솟은 정착촌 주택들 자연 거스른 교만의 상징

지난달 19일. 일찍부터 서두른 탓인지 빌르린에 도착하니 이른 시간이었다. 이곳에서는 매주 금요일 이스라엘의 분리장벽 건설에 반대하는 시위가 열린다. 동네 입구에 서 있으니 시위대가 구호를 외치며 가까이 오는 소리가 들렸다. 시위대는 70~80명 정도로 팔레스타인 사람과 외국인들이 거의 반반이었다. 신문기자, 방송기자들도 많았다. 이들에 끼어 분리장벽에 이르니 이스라엘 군인들이 장갑차 등을 동원해 바리케이드를 치고 있었다. 방탄조끼와 얼굴 마스크, 장총으로 무장했다.

장벽은 이중으로 돼 있었다. 정착촌 쪽에 철조망을 치고 길을 건너 다시 철조망 장벽이 있었다. 산 정상에 우뚝 솟은 유대인 정착촌의 세련된 연립주택들이 얼마나 느닷없고 생뚱맞은지 자연을 거스르는 교만의 상징으로, 이보다 더 구체적인 사례가 있을까 싶었다.

팔레스타인
팔레스타인
팔레스타인 국기를 든 선발 시위대가 가시 철조망을 뜯어내고 이스라엘 군인들이 이들을 저지하며 몸싸움이 시작되었다. 매주 하는 정기적인 시위여서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가 보다 싶어 조금 한갓진 마음이었다. 시위보다는 팔레스타인 산야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사람들이 흩어지면서 달리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판단이 안 되고 당황스러웠다. 사람들이 내게 “빨리 달아나라”고 하는데 어디로 뛰어야 할지 몰랐다. 사람들이 달리는 쪽으로 나도 함께 뛰었다. 온통 땅을 갈아엎은 밭이고, 올리브 나무들인데 어디에 몸을 숨겨야 할지 몰랐다. 여기 저기서 총성과 사람들의 아우성이 들리고, 앞 뒤에서 최루탄이 터졌다. 빠지고 헛딛고 넘어지면서 몇 번이고 일어나 다시 달렸다. 나중에는 몸을 일으켜 세울 수 없을 정도로 힘이 빠지고, 머리가 아팠다.

아이 4명 고무탄에 쓰러져…이 얼마나 미친 짓인가

내가 넘어져 일어나지 못한 것을 본 시위대 한 사람이 달려와서 나를 부축해 응급요원이 있는 곳까지 데려다 주었다. 머리가 터질 것처럼 아팠다.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토할 것 같았다. 공포였다. 총소리 …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당한 공포의 순간이 충격을 준 모양이었다.

여기저기에서 총을 쏘아대는 이스라엘 군인들의 움직임이 보였다. 그들은 놀이를 하고 있는 듯 보였다. 히히덕 거리며 시위대를 향해, 아니 팔레스타인의 아름다운 산야에 총탄과 최루탄을 쏟아붓고 있었다. 아! 무슨 미친 짓인가. 어쩌자는 것인가. … 눈물이 넘쳤다.

이승정씨
이승정씨
이렇게 시위대는 흩어지고 시위는 종료되었다. 난 구급차를 타고 라말라 시내로 들어왔다. 그날 시위대 근처에 있던 네 명의 어린이들이 폭동 진압용 고무탄에 맞았고, 한 명은 이스라엘 군인의 곤봉에 머리를 맞아 병원으로 옮겨졌다. 라말라/글·사진 이승정 전 서울와이엠시에이(YMCA) 청소년사업부장 seungjunglee@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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