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에서 온 편지] ② 동예루살렘 매년 100여채 철거
고향 땅인데 우리가 어떻게 이곳을 뜨겠는가. 날이 풀리면 다시 가건물을 짓고 이 땅을 지킬 것이다
사람들이 사는 집을 부수는 비인간적인 일이 동예루살렘에서는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동예루살렘에서만 매년 100여채의 팔레스타인 집이 철거된다.
지난달 22일 동예루살렘 ‘수 바하’ 동네에서는 무하마드의 4층짜리 아파트가 철거됐다. 국제단체 운동가들이 철거를 저지하기 위해 수개월간 집을 지켰지만 역부족이었다. 무자비한 철거였다. 이스라엘 군인 200여명이 군견과 말까지 동원해 집 주위를 완전히 포위하고 사람들의 접근을 막았다. 불도저 2대를 몰고온 철거반원들은 집에 있는 가재도구조차 꺼낼 수 없도록 했다. 철거에 맞서는 가족들에겐 곤봉을 휘둘렀다. 누구도 손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
20여년 전 한국에서 보았던 철거현장을 민주주의 국가를 자처하는 이스라엘 수도 예루살렘에서 목격해야 하는 일은 너무 처참하고 기막혔다.
이스라엘 군사통치 동예루살렘은 ‘팔레스타인 땅’ 예루살렘이 동, 서로 나뉘어 있고 동예루살렘은 이스라엘에 의해 군사통치되고 있는 팔레스타인 땅이라는 사실을 아는 외국인은 많지 않다. 1947년 유엔총회가 채택한 두 국가 분리안 (결의안 181호)에서 예루살렘은 국제보호구역으로 남았다. 그러나 1948년 1차 아랍-이스라엘 전쟁에서 시온이스트 군대는 제일 먼저 서예루살렘을 정복했다. 이어 1949년 12월2일 서예루살렘이 이스라엘 수도임을 불법적으로 선언했다. 유엔 총회는 이에 1949년 12월9일 예루살렘은 영원한 국제영토임을 규정하고(결의안 303호), 1947년 유엔이 채택한 두 국가 분리안(결의안 181호)의 내용을 다시 확인한다. 오늘날까지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는 서예루살렘을 포함해 예루살렘에 대한 이스라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1967년 이스라엘-아랍 전쟁으로 동예루살렘이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가자지구와 함께 이스라엘의 군사점령 지역이 된 이후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에 대한 점령정책은 일관된 것이었다. 그것은 ‘통일된 예루살렘’,(United Jerusalem) ‘대 예루살렘’(Greater Jerusalem)으로 요약된다. 동예루살렘에 사는 팔레스타인의 수를 최대한 줄이고 유대인 수를 늘리며, 동예루살렘을 팔레스타인 서안 지구로부터 분리시켜 이스라엘에 완벽하게 합병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예루살렘에서는 팔레스타인 주민의 수를 줄이기 위한 여러가지 차별 정책이 시행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게 건축허가를 내주지 않는 것이다. 동예루살렘의 약 40%에 이르는 땅을 그린벨트 혹은 공공택지로 묶어 놓고 유대인 정착촌이나 유대인만을 위한 도로 건설에 사용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위해서는 한 세대분의 집도 짓지 않는다. 팔레스타인 인구밀집으로 동예루살렘 ‘빈민가’…고도의 ‘밀어내기’ 작전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인구 자연증가로 인한 주택 부족과 인구 밀집은 동예루살렘의 많은 팔레스타인 지역을 빈민가로 만들고 있다. 이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삶의 조건을 악화시키고 ‘밀어내는 조건’을 증가시킴으로써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스스로 예루살렘을 떠나도록 하려는 고도의 점령정책이다. 동예루살렘의 3분의 1은 무허가 건물이라고 한다. 가족은 늘어나고 집세는 자꾸 올라가니 자기 땅이 있는 사람들은 건축허가를 받지 않고 집을 지을 수밖에 없다. 이는 이스라엘 법에 의해 무허가 주택으로 규정되어 철거의 대상이 된다. 이들은 언제 철거반이 들이 닥칠지 몰라 늘 불안한 생활을 해야 한다. 2월5일 철거가 있은지 2주 후 무하마드와 그의 가족을 만났다. 철거된 집 터에는 부서진 콘크리트와 휘어진 철근들이 치워지지 않고 그대로 놓여 있었다. 그 옆에 천막을 쳐 놓긴 했으나 기온이 떨어져 이 곳에서 지낼 수 없어서 가족은 친척집, 이웃집으로 흩어져 지내고 있었다. 가족 모두가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이 아파트에는 무하마드씨 가족 12명과 동생 가족 9명, 결혼한 딸과 사위 가족 7명 등 6가구 44명이 살았다. 3개월에서 13살까지의 어린이만 30명 이었다. 35년 동안 모은 전 재산을 털어 2001년 이 집을 지었는데 이제 아무 것도 남은 게 없다고 허탈해하는 무하마드, 집안을 얼마나 예쁘게 꾸미고 살았는지 사진을 보여주며 열심히 설명하는 무하마드의 결혼한 딸, 이스라엘 군인들이 또 언제 오느냐며 겁먹은 얼굴로 물어보는 어린 손녀, 손자들을 걱정하는 무하마드의 아내…
그동안 계고장을 여러번 받긴 했지만 벌금을 계속 물어왔기 때문에 설마 이렇게 순식간에 철거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무하마드는 넋두리하듯 이렇게 말했다.
“600년 이상 조상들이 살아온 고향 땅인데 우리가 어떻게 이곳을 뜨겠는가. 날이 풀리면 다시 가건물을 짓고 이 땅을 지킬 것이다.”
라말라/이승정 전 서울와이엠시에이(YMCA) 청소년사업부장 seungjunglee@hotmail.com
이스라엘 군사통치 동예루살렘은 ‘팔레스타인 땅’ 예루살렘이 동, 서로 나뉘어 있고 동예루살렘은 이스라엘에 의해 군사통치되고 있는 팔레스타인 땅이라는 사실을 아는 외국인은 많지 않다. 1947년 유엔총회가 채택한 두 국가 분리안 (결의안 181호)에서 예루살렘은 국제보호구역으로 남았다. 그러나 1948년 1차 아랍-이스라엘 전쟁에서 시온이스트 군대는 제일 먼저 서예루살렘을 정복했다. 이어 1949년 12월2일 서예루살렘이 이스라엘 수도임을 불법적으로 선언했다. 유엔 총회는 이에 1949년 12월9일 예루살렘은 영원한 국제영토임을 규정하고(결의안 303호), 1947년 유엔이 채택한 두 국가 분리안(결의안 181호)의 내용을 다시 확인한다. 오늘날까지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는 서예루살렘을 포함해 예루살렘에 대한 이스라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1967년 이스라엘-아랍 전쟁으로 동예루살렘이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가자지구와 함께 이스라엘의 군사점령 지역이 된 이후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에 대한 점령정책은 일관된 것이었다. 그것은 ‘통일된 예루살렘’,(United Jerusalem) ‘대 예루살렘’(Greater Jerusalem)으로 요약된다. 동예루살렘에 사는 팔레스타인의 수를 최대한 줄이고 유대인 수를 늘리며, 동예루살렘을 팔레스타인 서안 지구로부터 분리시켜 이스라엘에 완벽하게 합병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예루살렘에서는 팔레스타인 주민의 수를 줄이기 위한 여러가지 차별 정책이 시행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게 건축허가를 내주지 않는 것이다. 동예루살렘의 약 40%에 이르는 땅을 그린벨트 혹은 공공택지로 묶어 놓고 유대인 정착촌이나 유대인만을 위한 도로 건설에 사용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위해서는 한 세대분의 집도 짓지 않는다. 팔레스타인 인구밀집으로 동예루살렘 ‘빈민가’…고도의 ‘밀어내기’ 작전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인구 자연증가로 인한 주택 부족과 인구 밀집은 동예루살렘의 많은 팔레스타인 지역을 빈민가로 만들고 있다. 이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삶의 조건을 악화시키고 ‘밀어내는 조건’을 증가시킴으로써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스스로 예루살렘을 떠나도록 하려는 고도의 점령정책이다. 동예루살렘의 3분의 1은 무허가 건물이라고 한다. 가족은 늘어나고 집세는 자꾸 올라가니 자기 땅이 있는 사람들은 건축허가를 받지 않고 집을 지을 수밖에 없다. 이는 이스라엘 법에 의해 무허가 주택으로 규정되어 철거의 대상이 된다. 이들은 언제 철거반이 들이 닥칠지 몰라 늘 불안한 생활을 해야 한다. 2월5일 철거가 있은지 2주 후 무하마드와 그의 가족을 만났다. 철거된 집 터에는 부서진 콘크리트와 휘어진 철근들이 치워지지 않고 그대로 놓여 있었다. 그 옆에 천막을 쳐 놓긴 했으나 기온이 떨어져 이 곳에서 지낼 수 없어서 가족은 친척집, 이웃집으로 흩어져 지내고 있었다. 가족 모두가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이 아파트에는 무하마드씨 가족 12명과 동생 가족 9명, 결혼한 딸과 사위 가족 7명 등 6가구 44명이 살았다. 3개월에서 13살까지의 어린이만 30명 이었다. 35년 동안 모은 전 재산을 털어 2001년 이 집을 지었는데 이제 아무 것도 남은 게 없다고 허탈해하는 무하마드, 집안을 얼마나 예쁘게 꾸미고 살았는지 사진을 보여주며 열심히 설명하는 무하마드의 결혼한 딸, 이스라엘 군인들이 또 언제 오느냐며 겁먹은 얼굴로 물어보는 어린 손녀, 손자들을 걱정하는 무하마드의 아내…
이승정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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