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최대의 전통시장인 그랜드 바자에는 넓은 국토에서 생산되는 풍부한 농산물과 카펫 등 전통제품, 그리고 중국산 생활물품 등이 가득하다. 상인이나 손님들에게 아마디네자드 대통령과 그의 정책에 대해 말을 걸자, 이들은 거침 없이 찬반론을 쏟아 놓았다.
고유가 시대 중동의 새바람 ④ 이란-변화의 폭풍
테헤란 거리엔 실업자 넘치고 고급주택가는 흥청망청
빈곤층 “빈부격차와 부패 문제 해결할 것” 열띤 지지
“서방과 쓸데없이 맞서고 구체적 성과 없다”
12월30일 테헤란대학의 금요기도회, 영하의 쌀쌀한 날씨에도 수천명이 양탄자만 깐 채 바닥에 엎드려 기도에 온 힘을 쏟았다.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하메네이 등 4명의 고위 성직자가 주요 사안들을 설교하는 금요기도회는 전국으로 생중계돼 정국의 방향을 제시한다. 이날 설교자인 아야톨라 잔나티는 “미국은 수많은 사람들을 빈곤으로 몰아넣고 무슬림들을 학살하고 있다”고 맹비난하고, 이라크와 팔레스타인에 대한 지지를 여러번 강조했다. 그는 “과거의 정부는 지나갔으며, 인내심과 신앙심을 가지고 새 정부와 대통령을 지지해야 한다”며 설교를 마무리했다.
‘이슬람혁명 2세대’로 꼽히는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이끄는 이란 새 정부 출범 5개월, 테헤란의 거리 민심은 뚜렷하게 엇갈린다.
미로처럼 얽힌 중동 최대의 전통시장, 테헤란 그랜드 바자에서 만난 카펫 가게 주인 마지드(32)는 처음에는 “나같은 보통 사람들은 먹고 살기 바빠 새 정부에 관심 없다”며 냉소적이더니 점점 목소리가 높아졌다. “대통령은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준다고 하는데 서방과 갈등만 빚고 있다. 외국회사가 빠져나가니 일자리가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외국인 손님들도 확 줄었다. 부자들도 새 정부를 불안해 하면서 돈을 두바이로 빼돌리고 있다. 사람들은 일자리가 급한데 그나마 있던 기업과 부자들이 나가버리니 어떻게 도움이 되는가?”
이맘 호메이니 모스크 앞 광장에서 한명에게 새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수십명이 몰려들어 각자 의견을 얘기하느라 바쁘다. 이란 사람들의 높은 정치적 관심과 거침 없는 표현에 놀랐다. 운전 강사라는 하미드 모하마디(38)는 “대통령이 약속한 개혁과 변화, 특히 불평등 해결이 가장 중요하다. 전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많은 보험료를 부담해야 했지만 새 대통령은 법을 고쳐 이를 줄여줬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옆 사람은 그것은 이미 전임 정부 때부터 시작된 것이라며 “달라진 게 없다”고 반박한다.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에 대해, 지식인들이나 부유층들 사이에선 불안과 우려의 목소리가 높지만 빈곤층들은 두터운 지지를 보내고 있다.
테헤란 남부의 저소득층 거주지인 샤히드 마할라티의 여성 바시지민병대 사령관 조흐레 하디(43)는 “아마디네자드는 빈곤층에 관심을 기울이고 도울 것이다. 그는 매우 유능하고 믿을 만하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의 지지로 당선됐으며 경제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 바시지 대원들은 그를 지원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란 사회 곳곳에 퍼져 반미 군사훈련부터 풍속 단속, 저소득층 지원까지 이슬람혁명 이념에 기반한 보수적 활동을 도맡는 바시지민병대는 조직원이 1000만명이 넘는,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의 주요 지지기반이다. 대통령 자신도 바시지 출신이다.
“빈부격차와 부패 해결이 현재 이란의 가장 중요한 과제”라는 거리의 민심에서 왜 지난해 6월 대선에서 아마디네자드가 누구도 예상치 못한 돌풍을 일으켰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군부 등 보수파가 그를 전폭적으로 지지하기도 했지만, ‘석유 수입을 재분배해 빈곤층을 지원하고 부패를 해결하겠다’는 그의 공약에 빈곤층이 뜨겁게 호응한 것도 큰 이유다.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강조하고 있는 사회정의와 불평등 해결은 1979년 이란 이슬람혁명 이후 누적된 심각한 사회문제지만, 지금까지 어떤 전임 대통령도 이를 정면으로 건드리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진보진영의 학자인 나세르 허디언 테헤란대 정치학과 교수도 “빈곤계층을 지원하고 부패와 싸우겠다는 아마디네자드의 공약은 긍적적”이라고 평한다. 그는 “아마디네자드가 민주화에 기여할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지만 부패와 빈곤문제 해결 공약을 지키기 바란다”며 “그는 이제 겨우 내각을 구성했고, 판단을 내리기는 이르다. 그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세계 제2위의 원유 매장량, 비옥한 토지와 풍부한 식량, 7천만의 인구에도 불구하고 이란의 경제는 몸살을 앓는 중이다. 통제경제의 후유증으로 낡은 건물과 차량이 가득한 테헤란 거리에는 수선화 꽃다발을 들고 자동차 차창을 두드리며 꽃을 사달라고 호소하는 실업자 젊은이들을 어디서나 만날 수 있다. 인구의 70% 이상이 30살 미만인 이란에서 청년실업은 최대 고민거리다. 공식 실업률은 11~14%지만 실제 실업률은 훨씬 높다고 알려져 있다. 반면 테헤란 북부 고급주택가에는 수영장과 정원이 딸린 호화주택과 주말이면 고급차를 몰고 데이트에 나서는 젊은이들로 붐빈다. 미국의 경제제재뿐 아니라, 부정부패와 관리들의 무능한 행정이 경제적 혼란의 원인이라고 사람들은 주저없이 말했다.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취임 뒤 지지층을 결집시키기 위해 호화 대통령 관저 대신 검소한 자택을 고집하고, 사무실에서 화려한 카페트를 치우고 전용기를 일반인들에게 내놓는 등 소박한 모습을 강조하고 있다. 최근에는 모든 장관들을 이끌고 지방을 돌며 내각회의를 여는 등 그동안 소외됐던 지역을 배려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현지의 지지층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사람들에게 돌아오는 구체적인 성과는 없다는 실망의 목소리도 나온다.
새 정부는 지난해 9월 돈이 없어 결혼을 하지 못하는 젊은이들에게 결혼비용을 저리로 융자해 준다는 ‘레자 펀드’를 설립하겠다고 발표했다. 경제난과 청년실업 등으로 결혼 비용 마련이 어려워 대부분 32~35살이 되어서야 결혼할 수 있는 상황을 해결하려는 것이다. 운전수로 일하는 하미드(31)는 “결혼식 비용을 빌려준다니 다행이지만, 진짜 중요한 문제는 결혼식 비용이 아니다. 젊은이들이 적당한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것”이라며 이 조치에 의문을 표시했다.
강한 변화의 폭풍 아래서 젊은층들의 정치 냉소도 번져가고 있다. 테헤란대 공과대학생 사이드(19)는 “정치는 위험하고 아무 것도 바꾸지 못한다”고 했고 그의 친구 아라쉬(18)도 “졸업 뒤의 일자리와 일상에만 관심을 둘뿐 정치에는 관심이 없다”고 말한다. 젊은층의 일상은 지도부가 강조하는 ‘혁명 이념’이나 정치 구호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는 듯 했다.
요즘 이란을 달구고 있는 또하나의 이슈는 단연 ‘핵기술’을 둘러싼 서방과의 대치다. ‘이란의 핵 기술 권리는 빼앗길 수 없는 당연한 권리’라는 게 이란의 길거리 민심이다.
문구점을 운영하는 하미드(33)는 “이란은 중요한 국가이며 핵 기술을 가져야 한다. 미국, 유럽 등의 많은 국가들이 다 핵 기술을 가지고 있는 데 왜 이란만 안되는가? 이란은 다른 나라를 침략할 뜻이 없고 핵 에너지만 얻을 것이다. 30~40년 뒤 석유가 바닥나기 시작할 때를 대비해 준비하는 것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런 정서 속에서 이란인들은 지난해 9월 국제원자력기구(IAEA) 이사회에서 한국이 이란에 반대해 표결한 데에 실망과 섭섭함을 느끼고 있었다. 생물학을 전공하는 여대생 토크탐(22)은 “한국을 비난하고 싶지는 않지만, 미국은 이란이 나쁜 목적으로 핵 기술을 얻으려 한다고 이야기를 꾸며내고 있는데 다른 국가들은 이런 선전에 속지 말고 이란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지도부 내에서는 더욱 강경한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마즐리스(의회) 여성의원인 라파트 바야트(48)는 최근 이란과 러시아가 협상중인, 이란 핵연료를 러시아에서 생산해 들여온다는 ‘러시아 제안’에 대해 “이란 정부나 협상단이 ‘러시아 제안’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의회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으며 거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서방 세계는 핵 기술을 독점하려 한다. 아무도 왜 서방 등 강대국들만이 핵무기를 가지고 있는지 말하지 않는다. 국제정치학적으로도 균형이 맞지 않는다. 이란 정부는 지지부진한 유럽이나 러시아와의 협상을 그만두고, 우라늄 농축을 시작해야 한다”고 강경론을 폈다. 보수파 정부의 강경한 핵 협상과 ‘이스라엘을 지도에서 없애버려야 한다’는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의 발언들이 “불필요하고 이란의 국익에 손해만 끼쳤다”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현재로선 ‘핵 권리’를 지켜야겠다는 애국주의와 반미·반이스라엘 정서가 훨씬 힘이 세 보였다. 핵 문제를 둘러싼 서방국가들의 압박 수위가 점점 불어오르고 있는 가운데 애국주의와 빈곤층 지지를 기반으로 산더미 같은 난제들을 정면돌파할지 우회할지, 거대하고 복잡한 퍼즐이 이란 새 정부의 앞에 놓여 있다. 테헤란/글 박민희, 사진 이정아 기자 minggu@hani.co.kr
빈곤층 “빈부격차와 부패 문제 해결할 것” 열띤 지지
“서방과 쓸데없이 맞서고 구체적 성과 없다”
중동의 새 바람
“빈부격차와 부패 해결이 현재 이란의 가장 중요한 과제”라는 거리의 민심에서 왜 지난해 6월 대선에서 아마디네자드가 누구도 예상치 못한 돌풍을 일으켰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군부 등 보수파가 그를 전폭적으로 지지하기도 했지만, ‘석유 수입을 재분배해 빈곤층을 지원하고 부패를 해결하겠다’는 그의 공약에 빈곤층이 뜨겁게 호응한 것도 큰 이유다.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강조하고 있는 사회정의와 불평등 해결은 1979년 이란 이슬람혁명 이후 누적된 심각한 사회문제지만, 지금까지 어떤 전임 대통령도 이를 정면으로 건드리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진보진영의 학자인 나세르 허디언 테헤란대 정치학과 교수도 “빈곤계층을 지원하고 부패와 싸우겠다는 아마디네자드의 공약은 긍적적”이라고 평한다. 그는 “아마디네자드가 민주화에 기여할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지만 부패와 빈곤문제 해결 공약을 지키기 바란다”며 “그는 이제 겨우 내각을 구성했고, 판단을 내리기는 이르다. 그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세계 제2위의 원유 매장량, 비옥한 토지와 풍부한 식량, 7천만의 인구에도 불구하고 이란의 경제는 몸살을 앓는 중이다. 통제경제의 후유증으로 낡은 건물과 차량이 가득한 테헤란 거리에는 수선화 꽃다발을 들고 자동차 차창을 두드리며 꽃을 사달라고 호소하는 실업자 젊은이들을 어디서나 만날 수 있다. 인구의 70% 이상이 30살 미만인 이란에서 청년실업은 최대 고민거리다. 공식 실업률은 11~14%지만 실제 실업률은 훨씬 높다고 알려져 있다. 반면 테헤란 북부 고급주택가에는 수영장과 정원이 딸린 호화주택과 주말이면 고급차를 몰고 데이트에 나서는 젊은이들로 붐빈다. 미국의 경제제재뿐 아니라, 부정부패와 관리들의 무능한 행정이 경제적 혼란의 원인이라고 사람들은 주저없이 말했다.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취임 뒤 지지층을 결집시키기 위해 호화 대통령 관저 대신 검소한 자택을 고집하고, 사무실에서 화려한 카페트를 치우고 전용기를 일반인들에게 내놓는 등 소박한 모습을 강조하고 있다. 최근에는 모든 장관들을 이끌고 지방을 돌며 내각회의를 여는 등 그동안 소외됐던 지역을 배려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현지의 지지층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사람들에게 돌아오는 구체적인 성과는 없다는 실망의 목소리도 나온다.
테헤란은 고도가 높고 분지인 데다 낡은 차량과 제대로 정유되지 않은 석유 등 때문에 대기 오염이 심각하다. 최근에는 대기오염 때문에 1천여명이 병원 치료를 받기도 했다. 테헤란 북쪽 앨브로즈 산맥에 쌓인 흰 눈이 오염물질에 가려 뿌옇게 보인다. 테헤란/이정아 기자leej@hani.co.kr
이란 젊은이들의 약혼식 풍경. 시내 식당에서 신부(앞쪽 테이블 뒤에 선 이)가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동안 하객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 남녀가 다른 테이블에 앉는다. 테헤란/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지도부 내에서는 더욱 강경한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마즐리스(의회) 여성의원인 라파트 바야트(48)는 최근 이란과 러시아가 협상중인, 이란 핵연료를 러시아에서 생산해 들여온다는 ‘러시아 제안’에 대해 “이란 정부나 협상단이 ‘러시아 제안’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의회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으며 거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서방 세계는 핵 기술을 독점하려 한다. 아무도 왜 서방 등 강대국들만이 핵무기를 가지고 있는지 말하지 않는다. 국제정치학적으로도 균형이 맞지 않는다. 이란 정부는 지지부진한 유럽이나 러시아와의 협상을 그만두고, 우라늄 농축을 시작해야 한다”고 강경론을 폈다. 보수파 정부의 강경한 핵 협상과 ‘이스라엘을 지도에서 없애버려야 한다’는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의 발언들이 “불필요하고 이란의 국익에 손해만 끼쳤다”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현재로선 ‘핵 권리’를 지켜야겠다는 애국주의와 반미·반이스라엘 정서가 훨씬 힘이 세 보였다. 핵 문제를 둘러싼 서방국가들의 압박 수위가 점점 불어오르고 있는 가운데 애국주의와 빈곤층 지지를 기반으로 산더미 같은 난제들을 정면돌파할지 우회할지, 거대하고 복잡한 퍼즐이 이란 새 정부의 앞에 놓여 있다. 테헤란/글 박민희, 사진 이정아 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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