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시닝에서 달리던 칭짱철도 열차가 티베트 고원지역으로 들어서자 9월인데도 차창 밖엔 눈발이 쏟아졌다. 눈발 속에서 양떼들이 풀을 찾아 이동하고 있다. 라싸/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홍콩 수준 자치 요구에 중국 “수용 불가”
달라이라마 영향력 커 비폭력 노선 견지
달라이라마 영향력 커 비폭력 노선 견지
[칭짱철도타고 티베트를 가다]
④ 독립인가 동화인가 티베트 달력으로 새해 첫날은 지난 2월28일이었다. 올해의 경우 중국 설(1월29일)과 한달 정도 차이가 났다. 새해 첫 명절인 ‘전소법회’ 때 티베트인들은 가장 좋은 옷으로 차려입고 티베트 불교사원을 찾는다. 티베트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치장은 소매와 발목에 수달피를 대고 어깨에서 허리까지는 타잔처럼 표범 가죽을 맞모금으로 걸치는 차림이다. 그러나 올해 전소법회 때는 이렇게 동물 가죽으로 치장한 이들이 현저하게 줄었다. 티베트자치구 인민정부의 관계자도 16일 “올해는 동물 가죽 치장이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고 인정할 정도였다. 왜 이런 갑작스런 변화가 생겼을까?
달라이라마를 위해 밥을 짓더라도=16일 라싸의 고찰 조캉사원(다자오쓰) 앞에서 만난 한 티베트인은 이런 변화가 “달라이라마의 호소”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1959년 이후 인도에 망명중인 달라이라마는 새해를 앞두고 연 집회에서 동물 가죽 옷을 입지 말라고 동포들에게 호소한 바 있다. 달라이라마는 “당신이 가죽옷을 한 벌 입으면 누군가는 동물 한 마리를 죽인다”고 말했다.
의문은 또 생긴다. 언론 통제가 삼엄한 중국 내 티베트인들이 달라이라마의 호소를 어떻게 알았을까? 이 티베트인은 지난해 말 중국 정부로부터 정식 비자를 받고 인도를 방문한 이들 가운데 4000여명이 달라이라마의 집회에 참석했으며, 몰래 국경을 넘은 이들도 4000여명에 이른다고 귀띔했다. 이들이 돌아온 뒤 달라이라마의 메시지를 친지들에게 전했다는 것이다. 망명지의 달라이라마는 여전히 티베트인들에게 정신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셈이다. 그 영향력은 어느 정도나 될까?
16일 라무체사원 앞에서 만난 또 다른 티베트 청년은 12월에 인도 다람살라로 갈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어머니는 살아생전 달라이라마를 직접 한번 보는 게 소원이다. 그러나 너무 늙고 건강도 좋지 않아 인도에 직접 갈 형편이 못 된다. 그래서 내가 갈 생각이다.” 그럴 경우 그는 중국 땅을 다시 밟을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청년의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네가 달라이라마를 만난다면 다시는 나를 보러 오지 않아도 좋다. 그를 위해 밥을 짓거나 빨래를 하거나 청소를 한다면, 너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일거리를 찾은 것이다. 그게 나를 보러 오는 것보다 더 소중하며, 박사 학위를 따는 것보다 더 소중하다.” 이 청년은 어머니의 말이 “티베트인의 일반적 관점”이라고 덧붙였다.
티베트 미래의 전환점=1959년 이후 망명정부를 이끌어온 달라이라마는 중국과 엄청난 유혈투쟁을 대가로 치러야 할 ‘티베트 독립’보다는 ‘고도의 티베트 자치’를 요구하는 중도노선을 걸어왔다. ‘고도의 자치’란 ‘홍콩 수준의 자치’를 뜻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지난 2001년엔 망명 티베트인의 직접선거를 통해 삼동 린포체를 ‘정부 수석부장’(행정부 최고 수장)으로 선출함으로써 정치와 종교를 분리시키는 개혁을 완수했다. 그는 또 어린이들 가운데 ‘환생’을 찾아내는 전통 달라이라마 계승 방식 대신 가톨릭의 교황처럼 선출방식을 도입하는 종교개혁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티베트 망명정부와 중국 당국은 ‘티베트 문제’에 관해 줄곧 평행선을 그어왔다. 16일 라싸에서 만난 쑹빙린 티베트자치구 외사판공실 부주임은 “티베트는 이미 자치를 실시하고 있다”며 “달라이라마의 개인 자격 방중은 환영하지만 망명정부의 수반 자격으론 안 된다”고 못박았다.
1989년 라싸 소요사태 이후 티베트는 ‘안정’을 유지하고 있다. 티베트의 안정에는 중국 정부의 막대한 지원과 더불어 달라이라마의 비폭력·평화 노선도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 <아주주간> 최근호는 71살 고령의 달라이라마 이후엔 티베트 망명정부가 비폭력·평화 노선 대신 무장투쟁을 포함한 더욱 급진적인 수단을 채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한다. 지금은 달라이라마의 권위에 가려 있지만, 젊은 망명 승려들이나 티베트청년회 등 급진 단체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티베트 독립을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라고 주장해 왔기 때문이다. 티베트청년회를 4년간 이끌어온 푼촉 청년회장은 달라이라마의 비폭력 노선에 이견을 숨기지 않으며, “청년회는 티베트를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도 동원할 것이며, 무장투쟁이 독립을 가져온다면 전면 지지할 것”이라고 말해 왔다. 이 때문에 티베트의 미래는 앞으로 몇 해가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끝>
라싸/이상수 특파원 leess@hani.co.kr
④ 독립인가 동화인가 티베트 달력으로 새해 첫날은 지난 2월28일이었다. 올해의 경우 중국 설(1월29일)과 한달 정도 차이가 났다. 새해 첫 명절인 ‘전소법회’ 때 티베트인들은 가장 좋은 옷으로 차려입고 티베트 불교사원을 찾는다. 티베트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치장은 소매와 발목에 수달피를 대고 어깨에서 허리까지는 타잔처럼 표범 가죽을 맞모금으로 걸치는 차림이다. 그러나 올해 전소법회 때는 이렇게 동물 가죽으로 치장한 이들이 현저하게 줄었다. 티베트자치구 인민정부의 관계자도 16일 “올해는 동물 가죽 치장이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고 인정할 정도였다. 왜 이런 갑작스런 변화가 생겼을까?
들녁에서 걸어온 한 남매가 곧게 뻗은 도로가에서 낯선 이방인들을 만나자 걸음을 멈췄다. 남매는 부끄러운 듯 시선을 먼곳으로 돌렸으나, 엷은 미소를 지으면서 오랫동안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라싸/김종수 기자jongsoo@hani.co.kr
| |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