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투톱’ 지도력 부재·정치자금 뒤엉켜 좌초

민주당 첫 총리 8개월만에 ‘낙마’
‘후텐마’ 우왕좌왕하다 사민당 연정이탈 자초
‘돈 문제’ 털어내려 오자와 간사장도 동반퇴진
지지율 20%…7월 참의원 선거 과반 ‘빨간불’
* 투톱 : 하토야마·오자와

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총리는 1일 오전까지만 해도 총리직을 계속 맡을 뜻을 강하게 내비쳤다. 사민당이 연립정부에서 이탈한 뒤 지지율이 급락면서 당내에서도 사퇴론이 거세게 일던 상황이었다. 오후가 되자 그의 말은 조금 조심스러워졌다. 그는 “분골쇄신 일하고 있으나 국민의 이해를 얻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6시 오자와 이치로 간사장, 고시이시 아즈마 민주당 참의원 의원회장과 3자 회동에서 사퇴를 재촉받은 그는 결국 2일 오전 총리직 사퇴를 선언했다. ‘새로운 정치’를 실현하지 못한 아쉬움에선지 그의 눈엔 눈물이 글썽거렸다.

자민당의 장기집권 체제를 무너뜨리고 집권한 민주당 출신의 첫 총리가 불과 8개월여 만에 물러나게 된 것은 무엇보다 하토야마 자신의 지도력 문제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특히 미군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를 놓고 8개월 내내 끝없이 우왕좌왕했다. 돌고 돌아 원안에 가까운 결론을 내면서 사민당의 연립 이탈을 초래했다. 이로 인해 내각 지지율은 10%대로 떨어졌고, 총리 퇴진 여론은 최고 60%를 넘었다. 결국 7월 참의원 선거 참패를 우려한 민주당이 하토야마를 끌어내리기에 이르렀다. 여론은 내각을 지지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로 ‘하토야마 총리의 결단력 부족’을 꼽곤 했다.

하토야마 총리의 조기퇴진에는 본인과 오자와 민주당 간사장의 정치자금 문제도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출범 초 70%를 넘던 내각 지지율 하락은 ‘돈 문제’로 시작됐다. 하토야마 총리와 오자와 이치로 간사장이 동반퇴진한 것은 두 사람이 각각 얽힌 정치자금 문제를 민주당에서 떨어내려는 고육책으로 읽힌다.

하토야마-오자와 ‘투톱 체제’의 조기붕괴로 민주당은 선거를 한달여 앞두고 매우 긴박한 상황에 빠져들었다. 이번에 당내 최대 실력자인 오자와 간사장이 사퇴했지만, 그의 당내 영향력은 여전히 유지될 것이란 관측이 많다. 오자와로선 선거를 앞두고 하토야마 총리와의 동반퇴진 카드를 승부수로 던져놓은 뒤 후일을 기약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하토야마의 사퇴가 너무 늦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7월11일로 예정된 참의원 선거까지는 이제 겨우 한달여밖에 남지 않았다. 연립에서 이탈한 사민당에서는 독자 출마 후보가 나오기 시작했다. 하토야마는 이날 총리직 사퇴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다음 총선에는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에 대한 동정 여론은 민주당 지지율을 상승 반전시키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민주당 지지율은 20%까지 추락해 있어, 연립여당이 참의원 과반 의석을 확보하기에 매우 버거운 형편이다.

물론 참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이 패해도 민주당 주도의 연립정부가 바뀌지는 않는다. 민주당은 중의원 480석 가운데 307석을 보유하고 있어, 중의원을 해산할 이유가 없다. 자민당은 참의원에 총리 문책안, 중의원에 내각 불신임안을 잇달아 내 공세를 가할 계획이었으나 선수를 빼앗겼다. 뒤늦게 ‘중의원 해산’을 요구하고 나섰지만, 여론의 관심은 이미 ‘차기 총리’ 쪽으로 쏠리고 있다.

도쿄/정남구 특파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