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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일본

‘망언 종결자’ 이시하라 도쿄도지사 4선 성공 이유는?

등록 2011-04-11 16:04수정 2011-04-12 18:01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지사.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지사.
3·11 대지진 충격에 강력한 지도자 출현 열망
일본 우익 중의 우익 정치가 이시히라 신타로(78) 도쿄도지사가 10일 치러진 제17회 통일지방선거에서 손쉽게 4선도전에 성공했다. 지명도가 높은 개그맨 출신의 히가시코쿠바루 히데오(53)를 100만표 가까이 따돌린 낙승이었다.

출마 전까지 그의 4선 가도는 평탄치 않은 것으로 보였다. 3선까지만 하겠다는 약속을 번복한 데다가 재임 기간중 그가 야심적으로 추진했던 신도쿄은행 파탄(3년간 적자액만 1000억엔)과 400억엔 가까운 추가 출자, 도쿄올림픽 유치 실패 등 실정도 잇따랐다. 잇따른 호화 출장과 화가인 아들의 도 사업책임자 선정 등 도정을 사유화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게다가 나이도 78살로 고령이었다. 본인도 도쿄청사 계단을 오르내르기엔 나이가 너무 많다며 자민당의 강력한 출마요청을 끝까지 고사하다 민주당이 후보를 내지 않자 막판에서야 출사표를 낼 정도였다. 그런 그를 구한 것은 3·11 도호쿠 대지진과 쓰나미, 후쿠시마 제1원전사고 등 대재앙 이후 일본을 휩쓸고 있는 자숙모드와 강력한 지도자 출현 욕망이었다.

■ 강력한 지도자 출현 열망의 부산물  

<마이니치신문>은 “3·11의 여파로 일본사회를 휩쓸고 있는 ‘자숙모드’가 선거운동에까지 파급되면서 강력한 지도자의 출현을 기대하는 일본사회의 분위기 속에서 지명도가 높은 현직지사가 유리한 선거가 됐다”고 분석했다. 한달이 다 되가도록 수습의 가닥을 잡지 못하는 후쿠시마 제1원전 사태로 일본 국민들 사이에 불안감이 확산되면서 도민들이 변혁보다는 강한 리더십에 의한 안정을 선택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자민당이 전승을 기록한 이번 12곳의 지사선거에 입후보한 9명의 현직 지사가 모두 당선됐다. 반면 민주당은 후쿠시마 제1원전 수습과정에서 보여준 무능함과 도쿄전력의 은폐 체질 등의 직격탄을 받아 12곳의 도지사선거에서 한명도 당선자를 내지 못했을 뿐아니라 지방의회 출마자 40%가 낙선하는 참패를 당했다.

<아시히신문> 출구조사를 보면 이시하라는 자민과 공동당 지지자의 70%를 차지한 것은 물론 민주당표도 30% 나눠가졌다. 무당파층도 2009년 8월 중의원 선거에서는 민주당에 가장 많이 표를 던졌으나 이번에는 이시하라가 가장 많은 표를 얻었다.

또한 3월11일 그의 출마기자 회견이 시작된 지 20분만에 대지진이 발생해 기자회견은 급거 중지됐다. 선거를 수십번 치러본 백전노장답게 그는 노회했다. 대재앙 이후 달라진 사회분위기를 포착하고 선거전에 이를 철저히 이용했다

선거운동은 거의 하지 않고 방재복장으로 갈아입은 채 재난지역과 대피소를 돌아다니며 때때로 정부에게 재난대책의 주문을 하는 등 강한 지도자를 바라는 유권자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특히 그는 “하나미(벚꽃놀이) 할 때가 아니다”라며 대지진 이후 확산일로에 있던 자숙모드를 이용하기도 했다.


선거 마지막날 거리유세에서는 공약보다는 ‘국난’을 강조했다. 고농도 방사성물질이 도쿄의 수도에까지 검출됐을 때는 수돗물을 들이키는 장면도 연출했다. 일본언론도 도쿄도지사를 비롯해 선거보도를 하지 않는 ‘이상한 자숙’ 모드에 동참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강력한 지도자’ 이미지가 강한 이시하라 도지사의 낙승을 도왔다. 선거기간중 그의 도지사 재임시절의 실정은 거의 쟁점화되지 않았다.

그러나 3·11 이후 강력한 지도자의 출현을 기대하는 분위기에 대해 일본안에서는 우려하는 분위기도 나온다. 특히 일부 재일동포 지식인은 더욱 그렇다.

“‘이건 천재가 아니라 인재’라며 간 나오토 정권의 무능을 비판하는 소리가 계속 들려올 지경이 됐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자민당 정권이라면 좀더 잘했을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특히 원전 사고는 자민당 장기정권 시절의 쌓이고 쌓인 병폐들이 마침내 최악의 형태로 분출한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 쪽이 됐건 일본 정치에 큰 기대를 품고 있진 않다. 기대가 너무 크면 그 틈을 노리고 파시즘이 대두할지도 모른다. 그럴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재일동포 2세 학자인 서경식 도쿄경제대학교수는 지난달 20일치 한겨레 투고한 글에서 지적한 파시즘대두 우려는 이시하라의 낙승으로 현실화가 됐는지도 모른다. 이시하라는 당선이 확정된 직후 10일 밤 8시40분 도쿄 미나토구 아오야마에 있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자숙과 규제를 강조하며 우파본색을 드러냈다.

“거의 낭비에 가까운 전력소비를 제어하지 않으면 안된다. 파칭코를 하는 사람도 참아주세요. 자동판매기 따위없어도 살아갈 수 있잖아요”

그러나 원전에 대해서는 “이번 사고로 전부 부정하면 어떻게 될까. 냉정한 판단을 내리지 않으면 국가의 경제는 유지될 수 없다”며 원전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새삼 강조했다.

■ 이시하라는 망언 종결자 

이시하라는 한국언론에서도 자주 오르내리는 인물이다. 한국에서도 그는 장애인과 여성, 재일한국인, 외국인 등에 대한 차별 발언과 행동 등을 서슴지 않는 망언시리즈로 유명하다.

1983년 중의원 총선거 때 도쿄도 2선거구에서 출마를 놓고 대립하고 있던 자민당 후보선거 포스터에 이시하라의 제1 비서가 ‘1966년 북한에서 귀화’라는 딱지 3000장을 붙이다 현행범으로 체포되는 이른바 ‘흑딱지 사건’이 발생했다. 이때 일본의 유명한 ‘민족파우익’으로 알려진 노무라 슈스케가 이시라하 자택에 뛰어들어가 ‘일본 민족의 얼굴에 흙칠한 파렴치한 행위’라며 항의하기도 했다.

1999년 도쿄시내 중증장애인 시설을 시찰한 뒤 기자회견에서 “저런 사람은 인격이 있을까. 쇼크를 받았다”고 말해 물의를 빚었다. 지적장애인단체로부터 항의를 받고 그는 “문학자로서 표현”이라고 변명했다.

2000년 4월9일 육상자위대의 기념식장에서 “불법 이민이 많은 삼국인, 외국인이 흉악한 범죄를 되풀이하고 있고, 큰 재해가 일어날 때는 소요조차 예상된다”고 발언했는데 이 가운데 삼국인이라는 말이 큰 문제가 됐다. 삼국인이라는 말은 일본에서 한국인과 중국인을 비하하는 발언으로 쓰이고 있다.

2001년 5월에는 중국인 범죄에 대해 “민족적 DNA를 표시하는 듯한 범죄가 만연함으로써 이윽고 일본사회 전체의 자질이 변해질 우려가 없다고는 할 수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2004년 도쿄도 안에 있는 수도대학 도쿄지원설립총회에서 “프랑스어는 수를 계산할 수 없는 언어이기 때문에 국제어로서는 실격하고 있는 것도 그럴듯하다는 느낌이 든다”고 발언해 물의를 빚었다.

민주당과 공명당 등이 추진하고 있는 외국인지방참정권에 대해서도 “위험한 실험” “발상 그 자체가 이상하다” “절대반대” “일본에 영주하는 분이라면 일본 국적을 취득하면 된다”등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정규직업 없이 알바 등으로 생활하는 프리터나 취업의사가 없는 니트족에 대해서도 “니트 따위는 모양좋은 듯이 들리지만 무기력, 무능력한 인간”이라고 그들을 낳은 사회적 문제점에 언급없이 개인의 문제를 돌리는 인식을 보였다. 또한 일정한 주거없이 인터넷카페에서 거주하는 이른바 ‘네트카페난민’이 크게 늘면서 사회적 문제로 등장한 시점인 2008년 10월3일 정례기자회견에서 “산야(일용직 노동자들를 위한 값싼 숙소가 밀집된 도쿄의 한 지역)에 가면 하룻밤 200엔, 300엔으로 잘 수 있는 숙박이 엄청 많음에도 패션같은 형태로 하루밤 1500엔을 내면서 ‘나는 힘들어’ 따위 말하는 것은 이상하다”면서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또한 2008년 말 금융위기 사태로 파견직 근로자가 대량 실직해 오갈 데 없게 되자 반빈곤 운동단체에서 2009년말에서 1월초 도쿄 히비야 공원에서 대형텐트를 치고 식사를 제공하는 등의 구조활동을 펼친 ‘연말연시 맞이 파견촌’의 거주자에게 강당을 내준 후생노동성의 대응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 23살에 아쿠다가와 수상, 동생 유지로는 국민배우  

그는 일본의 명문 국립대인 히토츠바시대학 법학부 재학중인 1956년 문단 데뷔작인 소설 <태양의 계절>이 제34회 아쿠다가와상을 수상했다. 이 작품이 영화화됐을 때 이시하라 유지로가 주인공을 맡아 영화계에 데뷔했다. 이시하라 유지로는 영화배우 겸 가수로 일본의 국민배우 가수와 같은 존재이다. 그가 12년간 도정을 이끌 수 있었던 데는 유지로의 덕도 크다는 분석도 있다.

베트남 전쟁 취재 경험으로 정치가를 지망해 1968년 참의원선거 전국구에 출마해 첫 당선 된 뒤 1972년 중의원으로 바꿔 출마해 당선된 뒤 이후 8번 연속 당선됐다. 환경청장관, 운수상 등 각료직도 두번이나 역임했다.

1989년 자민당 총재선거에 입후보했으나 패배했다. 1995년 의원 생활 25년 축하연에서 돌연 사의를 표명한 뒤 중의원을 사직했다. 1999년 도쿄도지사에 출마해 연속 3번 당선됐다.

한국 등에서는 망언 정치인, 극우 정치인으로 악명높지만 그는 뻔뻔스러울 정도로 기자들에게 무안을 주거나 할말 못할말 가리지 않고 하는 스타일로 오히려 일본 국민 사이에서 크게 인기가 있는 정치인으로 꼽힌다. 기자가 도쿄특파원 시절인 2008년 도지사 선거를 앞두고 그의 패배 가능성이 높다는 쪽으로 분석기사를 쓰는 오판을 한 것도 이시하라의 대중적 인기를 감안하지 않았다는 뼈아픈 기억이 있다. 일본사람들은 앞에 대놓고 싫은 소리를 잘 안하는 게 보통인데 그의 거침없는 말투에 보통 일본인들이 속시원한 느낌을 갖는다는 분석도 있다.

화려한 그의 가계도 일본사람에게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의 장남 이시하라 데루노부(54)는 야당인 자민당의 넘버2인 간사장을 맡고 있다. 3남인 이시하라 히로타카(47)도 자민당 중의원을 지내다 2009년 8월 중의원선거에서 낙선했다. 차남인 이시하라 요시즈미(49)는 거의 매일 텔레비전에 나오는 기상케스터 겸 탤런트이다.

김도형 선임기자/트위터 @aip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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