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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일본

“어떻게 죽을지 내가 결정하고 싶다”

등록 2020-02-23 09:57수정 2020-02-23 09:59

[토요판] 조기원의 100세 시대 일본
⑮죽음의 방식Ⅱ

안락사 단체 가입한 다큐 감독
인지증 어머니 10년간 간병 뒤
“죽음에 대한 여러 가능성 찾아”

“안락사 원한다” 말한 유명 작가
스위스로 날아간 난치병 환자
일본, 죽음에 대한 공개 발언 늘어
2016년 스위스 바젤에서 다큐멘터리 감독 세키구치 유카가 안락사의 일종을 유사 체험하는 모습으로 영화 <날마다 알츠하이머-더 파이널~최후 죽음의 순간>의 한 장면이다. 체험 행사이기 때문에 링거 속에는 약물이 아닌 물이 들어 있었다. 환자 본인이 약물을 주입하기 때문에 ‘조력 자살’(assisted dying)이라고 부르는데, 넓은 의미에서 안락사로 분류된다. ‘날마다 알츠하이머 친구의 모임’ 제공
2016년 스위스 바젤에서 다큐멘터리 감독 세키구치 유카가 안락사의 일종을 유사 체험하는 모습으로 영화 <날마다 알츠하이머-더 파이널~최후 죽음의 순간>의 한 장면이다. 체험 행사이기 때문에 링거 속에는 약물이 아닌 물이 들어 있었다. 환자 본인이 약물을 주입하기 때문에 ‘조력 자살’(assisted dying)이라고 부르는데, 넓은 의미에서 안락사로 분류된다. ‘날마다 알츠하이머 친구의 모임’ 제공

“어떻게 죽을지에 대해서 나 스스로 결정하고 싶다.”

다큐멘터리 감독 세키구치 유카(63)는 자신이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지를 고민하고 있다. 그가 죽음에 대해서 천착하게 된 계기는 알츠하이머성 인지증(일본에서 치매가 모욕적인 표현이라는 이유로 변경한 명칭)을 앓았던 어머니 간병 때문이었다. 그는 20대 때 유학을 떠나 오스트레일리아에서 29년간 지내다가, 어머니 간병을 위해서 지난 2010년 일본으로 돌아왔다. 어머니가 숨지기 전까지 집에서 9년9개월 동안 돌봤다. 이 기간에 어머니를 피사체로 촬영한 <날마다 알츠하이머>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3편 시리즈로 내놓았다. 2018년에는 <날마다 알츠하이머―더 파이널~최후 죽음의 순간>을 공개했다. 시리즈 마지막 편인 이 영화에서 그는 죽음의 방식에 대해서 고민하면서, 의료적 개입을 최소화하는 노인 요양시설의 일종으로 에히메현에 있는 탁로소 ‘안키’와 스위스 안락사 단체인 ‘라이프서클’ 재단 등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담았다.

지난 18일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에서 만난 세키구치 감독은 “인지증을 앓는 사람을 돌보는 일은 내가 그 사람의 생명을 맡는 일이다. 내가 (최후에 어떻게 할지도) 결정해야 한다. 어머니를 간병하는 일 끝에는 어머니의 죽음이 있다는 점도 생각해야만 했다. 엄청난 책임이다. 내 아들에겐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죽음의 방식에 대한 여러 가능성을 찾아 나섰다”고 말했다. 세키구치 감독 본인도 고관절 수술을 받은 뒤, 노화를 절감한 일도 영향을 미쳤다. “10년간 어머니를 돌보면서 나도 나이가 들었다. 사실 간병을 하는 이가 먼저 세상을 떠나는 일도 있다.” 지난해 10월 그의 어머니는 89살로 세상을 떠났다.

2016년 스위스 바젤에서 다큐멘터리 감독 세키구치 유카가 안락사의 일종을 유사 체험하는 모습이다. 약물(실제로는 물)이 들어 있다고 가정하고 링거의 단추를 누르고 있다. ‘날마다 알츠하이머 친구의 모임’ 제공
2016년 스위스 바젤에서 다큐멘터리 감독 세키구치 유카가 안락사의 일종을 유사 체험하는 모습이다. 약물(실제로는 물)이 들어 있다고 가정하고 링거의 단추를 누르고 있다. ‘날마다 알츠하이머 친구의 모임’ 제공

세키구치 감독은 라이프서클 재단의 회원으로 등록했다. 스위스는 외국인에게도 법적으로 안락사를 허용하는 극히 드문 나라다. 라이프서클 재단은 적극적 안락사를 하는 단체는 아니다. 침대와 약물은 준비해주지만, 의사가 직접 약물을 주입하지는 않는다. 환자 본인이 스스로 링거에 연결된 약물을 주입하는 단추를 누르는 방식이다. ‘조력 자살’(assisted dying)이라고 부르는데, 넓은 의미에서 안락사로도 칭한다. 대상이 되려면 △견딜 수 없는 고통이 있을 것 △회복 기미가 없을 것 △치료 방법이 없을 것 △본인의 명확한 의사가 있을 것이라는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무엇보다 환자 본인이 마지막 단추를 눌러야 하는 만큼 매우 단단한 의지가 없는 한 실행하기 어렵다. 그는 약물 대신 물을 넣은 링거를 놓는 체험 행사에 참여했는데, 체험 행사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상당히 떨렸다고 했다. “링거에 달린 단추는 꽤 단단했다. 확실한 의지가 없으면 눌러지지 않았다.”

세키구치 감독은 라이프서클 회원이기는 하지만 이 단체를 통해서 마지막을 맞겠다고 결심하지는 않았다. “회원 등록을 했다는 것은 선택지를 늘렸다는 의미다. 선택을 할 수 있으니 안심이 되는 느낌이다. 선택하지 않을 자유도 있다”고 말했다. 의사가 직접 약물을 주입하는 “적극적 안락사는 싫다”고 그는 말했다. “젊은 의사가 벌벌 떨어가면서 한다고 들었다. 내 생명을 아무리 의료 관계자라고 해도 전부 맡기고 싶지는 않다”고 덧붙였다.

안락사를 포함한 죽음의 방식에 대한 공개적인 발언은 일본에서 최근 늘고 있다. 1980년대 시청률 50%대를 넘었던 드라마 <오싱>을 쓴 작가 하시다 스가코(95)는 2016년 월간지 <문예춘추>에 ‘나는 안락사로 가고 싶다’는 제목의 글을 기고했다. 하시다는 “의식이 확실해도 몸을 움직일 수 없으면 살고 싶지 않다. 즐거움이 없어지면 역시 살고 싶지 않다”며 “타인에게 폐를 끼치기 전에 죽겠다고 생각하면, 안락사 외에는 없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안락사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니 가능하면 법을 만들어서 인정해주었으면 한다고 생각한다”고 썼다. 기고문에 대한 반응은 뜨거웠다. 하시다는 이듬해인 2017년에 <안락사로 죽게 해주세요>(한국 번역 제목 ‘나답게 살다 나답게 죽고 싶다’)라는 책을 펴냈다. 이 책에서 하시다는 “내가 일본의 분위기를 바꾼다든가 내가 옳다고 주장하며 안락사 법률을 만드는 일을 주도한다든가 그런 큰 것은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나는 이렇게 죽고 싶다’고 말하는 것뿐이다”라고 월간지에 글을 기고한 이유를 설명했다.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이 보통의 문화가 되고, 그렇게 자신의 죽음의 방식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안락사가 선택지의 하나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면 좋겠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안락사가 허용되는 스위스에 가서 직접 이를 실행한 이들도 있다. 젊은 시절 한국어 통역사로 활약했던 고지마 미나는 48살 때 ‘다계통위축증’ 진단을 받았다. 신경 계통 질환으로 신체 기능이 점점 약해져 나중에는 사지를 제대로 움직일 수 없게 되는 난치병이다. 언젠가는 누워만 있는 상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 고지마는 2018년 안락사가 허용되는 스위스로 갔다. 자살 시도를 했으나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서 실패한 뒤였다. 독신이었던 고지마를 언니 두 명이 돌보고 있었는데, 언니들을 설득해서 라이프서클 재단에 가입했다. 그리고 직접 자신이 ‘링거의 단추’를 눌렀다. 단추를 누른 뒤 의식이 남아 있는 잠시 동안 언니들에게 “고맙다”고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 사망 당시 51살이었던 고지마가 안락사를 선택하고 실행하는 과정은 ‘그녀는 안락사를 선택했다’라는 제목으로 <엔에이치케이>(NHK) 프로그램 ‘엔에이치케이 스페셜’에 지난해 방송되어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다만, 일본에서 안락사에 대해서는 개인의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안락사의 범위가 불분명한 등 법적으로 인정하기에는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는 의견 역시 강하다.

18일 일본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에서 세키구치 유카 감독이 자신의 영화와 죽음의 다양한 선택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요코하마/조기원 특파원
18일 일본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에서 세키구치 유카 감독이 자신의 영화와 죽음의 다양한 선택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요코하마/조기원 특파원

세키구치 감독은 어머니는 원하던 죽음의 방식을 맞이했다고 생각한다. 그의 어머니는 인지증 때문에 기억력은 감퇴했지만 자신의 기분과 생각은 확실하게 표현할 수 있었다. 세키구치 감독은 “어머니는 병원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지 않았다. 돌아가신 날 주치의가 집에서 병원에 가겠느냐고 물어보자, 확실히 손을 내저었다”고 말했다. 세키구치 감독과 가족 그리고 주치의가 도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세키구치 감독은 어떻게 죽을지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아들에게도 이야기한다고 했다. 본인의 의지가 있더라도 정보와 주변의 도움, 제도의 뒷받침이 없으면 자신이 원하는 죽음의 방식을 선택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세키구치 감독은 자신이 세상을 떠나는 순간도 영화에 담을 작정이라고 말했다. 카메라맨에게도 이미 부탁했다. “<날마다 알츠하이머―더 파이널~최후 죽음의 순간>에 대해서 사람들이 놀랐다는 반응이 많았다. 죽음에 대해서 터놓고 이야기하는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단 하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는 이야기”라고 그는 말했다. “터놓고 이야기하면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더는 무섭지 않게 된다. 모르니까 그리고 금기시하니까 무서운 것이다. 죽음에서 보는 삶은 정말 중요하다. 역으로 날마다 충실한 삶이 후회 없는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게 한다고 생각한다.”

요코하마/조기원 특파원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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