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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커뮤가 ‘조용한 학살’을 막는 법

등록 2021-07-20 14:19수정 2021-07-21 02:05

[MZ커뮤니티 보고서]

이자연|대중문화 탐구인

<한겨레> 젠더 미디어 ‘슬랩’에서 제작한 ‘조용한 학살이 다시 시작됐다’는 코로나19 이후 20대 여성들의 자살률이 증가한 현상을 다루었다. 2020년 상반기 20대 여성 자살시도자가 32.1%로 전 세대와 성별을 통틀어 가장 높고, 자살사망자는 전년 대비 43% 증가했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의 가장 주된 요인으로는 세계적 재난 앞에 상대적으로 쉬운 여성 실직이 꼽혔다. 처음 영상이 온라인 여초 커뮤니티로 퍼져나갈 때 실제 여성들의 반응이란 놀랍게도 제목처럼 조용했다. 길길이 날뛰며 화내는 사람이 거의 없고, ‘이래서 내가 죽고 싶었구나’ 하며 자신의 자살 충동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듯 침잠했다.

그로부터 8개월이 지났다. 해당 영상은 20만 뷰를 기록하며 많은 사람들이 사회적 학살의 존재를 알게 했다. 그럼 뭐가 좀 변했을까? 아직도 모든 게 여전해 보이지만 온라인 커뮤니티 속 여자들에게는 변화가 일어났다. 자살을 암시하는 글이 올라오면 위로를 전하는 걸 넘어, 이제는 그들의 아이디까지 검색하며 사후관리를 한다. 아직도 활동하고 있는지, 요즘은 어떤 글을 쓰는지, 그러니까 잘 살아 있는지 20대 여성들은 확인하고 싶어 했다. ‘다음 카페’의 경우, 에스엔에스(SNS) 팔로와 같은 ‘즐겨찾기’ 기능이 있는데 어떤 이들은 자살충동을 고백한 이들을 모아 즐찾했다. 근황을 들여다보기 위해서다.

한 여성 커뮤니티에 유머성 글이 게시된 적이 있다. 누군가 죽음을 생각하는 글을 썼는데 최근 걱정이 되어 아이디를 검색해 보니 자위기구를 추천받고 있더라는 내용이었다. 많은 이들이 박장대소했다. 이 유난히 밝은 웃음의 근원은 어디에 있을까? 고통스러워 죽음밖에 모르던 또래 여성이 다시 안온한 일상으로 돌아갔다는 것. 그 소소한 안심. 사회가 이들을 소생시키는 기능을 하지 않으니 여성들은 각개전투로 하지만 하나의 공동체인 것처럼 서로를 돌봤다. 이따금 상여금을 받았다는 여성들이 실직자와 취준생, 공시준비생 등을 찾아 기프티콘을 무료 나눔하는 모습도 보였다. 드물게는 현금을 건네기도 했다. 이건 단순히 온정주의가 아니다. 이들은 국가가 해야 할 일을 대신 하고 있었다. 조금씩 시들어가는 여성들에게 자신의 몫에서 경제적 지원을 나누어주었고, 아주 작은 기쁨으로도 삶이 연장될 수 있다는 걸 경험하게 했다.

지난 3월,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서 발표한 ‘코로나19 1년 여성노동자 일자리 변동 현황 조사 결과’를 보면 여전히 참담하다. 여성 응답자 5명 중 1명이 코로나19 이후 직장을 잃은 경험이 있고, 그중 20대 여성은 4명 중 1명이 타격을 받았다. 여성들은 서로 일면식도 없는 이들을 살리느라 깨금발 들고 버티는데, 여전히 제도적 기반은 불안하게 흔들린다. 이 지진을 못 이기고 저 깨금발마저 무너진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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