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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트위터의 단어들

등록 2021-12-14 18:01수정 2021-12-15 02:31

[MZ커뮤니티 보고서] 이자연 | 대중문화 탐구인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유행하는 밈들은 대부분 커뮤니티 사용자에 의해 자발적으로 만들어지지만, 그렇다고 오직 ‘고인 물’ 안에서만 문화가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동서양 간 물류 교역뿐만 아니라 문화 교류까지 이어졌던 실크로드처럼, 온라인상의 다양한 요소가 합쳐지면서 새로운 현상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네트워크로 이어진 문화적 상호교차성이다.

인터넷 세상의 언어 생태를 이야기해보자. 어떤 말은 태어나 몇번 사용되지도 못한 채 사라지고, 어떤 말은 오래전 잊혔다가 다시 쓸모가 생겨 생명을 얻는다. 그리고 어떤 말은 의외의 쓰임으로 이전과 다른 역할을 수행한다. 대중의 언어 문화에 따라 어휘의 생사가 정해지는 셈이다. 에스엔에스(SNS)가 마이크인 시대엔 어떨까? 쉽게 퍼져나가는 속성 덕에 커뮤니티로 흘러 들어가면서 은연중 언어 패턴을 바꾸기도 한다. 그 중심엔 트위터가 있다.

한 게시글에 140자까지 허용하는 트위터는 사용자가 정교하고 명확한 언어를 찾도록 유도했다. 하고 싶은 말을 한번에, 최대한 효율적으로 담기 위해서다. 긴 타래로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갈 순 있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짧은 글이 여러개 반복되는 것보다 짧고 간결한 글을 선호했다. 자연스럽게 사용자는 자신의 감정과 가장 가까운 말을 찾았고, 그렇게 트위터만의 문체가 형성됐다. 빙빙 돌리지 않고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는 문체. 그리고 이 언어 패턴은 커뮤니티에도 반영되었다.

‘유해하다', ‘유의미하다', ‘환멸스럽다'. 어려운 말은 아니지만, 몇해 전까지만 해도 젊은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이런 말을 쓸 일은 많지 않았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2030 연령대의 여성들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자기 감정을 표출할 때 이 단어들을 빈번히 사용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어제 본 드라마나 친구와의 일화, 사회면의 사건·사고 등 생활 속 사소한 일에도 이들 단어를 끌어온다. 이 변화의 시작은 트위터였다. 해당 단어를 활용한 글이 일파만파 퍼지면서 사람들은 자신이 찾고 있던 이름을 찾은 것처럼 언어를 가져갔다. 그에 따라 정확하게 말하고 싶은 욕구도 함께 커졌다.

이러한 현상이 단순히 어휘 활용에만 의미가 있는 건 아니다. 언어는 관점을 준다. 실제 이 말을 생활에 적용하기 시작한 2030 여성들은 무엇이 유해하거나 유의미한지, 또 무엇이 나를 환멸스럽게 하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교묘한 차별도 어려움 없이 감지해 가장 직접적인 단어로 설명하고, 농담을 빙자한 폭력에도 함의를 찾아 비판했다. 그렇다면 에스엔에스는 정말 인생의 낭비일까? 디지털을 빼고 생각하기 어려운 세상에서 새로운 답을 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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