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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우리 다 함께 ‘주접댓글’

등록 2021-08-17 15:14수정 2021-08-18 02:36

[MZ커뮤니티 보고서]

이자연|대중문화 탐구인

2020 도쿄올림픽이 막을 내린 지 벌써 열흘을 넘어섰지만 그 여운은 좀처럼 가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대중에게 큰 관심을 받은 국가대표 선수들의 새로운 스케줄이 날마다 기사화되고 사람들은 티브이 앞에서 이들을 기다린다. 특히 여성 국가대표 선수들의 활약 속에서 여초 커뮤니티는 매우 바쁘다. 선수들의 이름을 부르며 시름시름 앓고, 과거 영상을 보며 움짤을 만든다. 그뿐일까. 연예인을 덕질하듯 사진을 보정하고 심지어 여성 선수들 간의 친목을 찾아내 응원한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건 댓글이다. 일명 주접댓글.

‘주접댓글’은 일종의 과장된 선플이다. <문화방송>(MBC) 라디오 ‘표창원의 뉴스하이킥’에 출연한 안산 선수에게 표창원은 “지금 대한민국엔 안산 선수 때문에 비가 내린대요. 심장마비”라는 댓글을 읽어주었고, 김연경 선수는 기사마다 “김연경 도대체 당신 누구야? 나랑 결혼할 사람?”이라는 댓글이 넘쳐난다. 몹시 요란하고 촐싹 맞은 애정 표현을 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잔뜩 올라가 있다. 사실 지금까지 덕질 문화라고 하면 대부분 남성 선수를 향해 있었는데, 여성 선수 비율 48.5%의 역대 최대 성비 균형이 구현되니 여성들은 자신을 이입하고 동일시할 선수를 발굴하고 조명했다. 그렇다면 문득 궁금해진다. 이토록 능글맞은 언어문화는 어디서 시작한 걸까?

먼저 2000년대 초 밀레니얼 세대가 인터넷 소설과 싸이월드를 통해 낯간지러운 대사를 주요 놀이로 채택했다면, 제트 세대는 2010년대 초중반 앱 ‘카카오스토리’와 ‘모씨’에 연예인과의 가상 채팅을 지어내면서 그 문화를 이어받았다. 부끄러운 말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태도가 세대적 공감대를 형성했고 거기에 특정 계기가 더해지면서 ‘주접댓’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 계기란 바로 극심한 악플에 시달리던 여성 유명인들의 연이은 자살이었다. 속수무책으로 떠나가는 이들 앞에서 여성들은 깨달았다. 악플을 악플로 응수하며 댓글창을 더럽히는 것보다, 터무니없어 보일지언정 호들갑스러운 선플 하나가 당사자를 살려낼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여자 배구 4강전이 한창일 때 몇 남초 커뮤니티 유저들은 이런 질문을 많이 남겼다. “여배 선수들이랑 성인 남성이랑 몸싸움하면 누가 이겨요?” “배구 남자 약한 팀 vs 여자 대표팀 싸우면 누가 이길까요?” “성별 여자가 맞는지 의심돼요.” 질문을 가장한 후려치기 앞에서 아무래도 주접댓글은 더 오래 강하게 살아남을 거란 느낌이 든다. 여초 커뮤니티들은 벌써 다음 ‘추억팔이’를 준비하고 있다. 2002 한일월드컵이 받았던 호사만큼 딱 그만큼의 추억팔이를 할 생각이다. 얼마나 또 주접일까? 벌써부터 배가 간질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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