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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영수의 사기그릇] 죽음의 무게

등록 2010-05-17 18:20수정 2010-05-27 17:22

위대한 역사학자 사마천은 ‘중과부적’(衆寡不敵)으로 흉노에 항복한 젊은 장수 이릉을 변호하다 황제의 심기를 건드려 옥에 갇힌다. 이듬해 상황이 악화되어 사마천은 역적을 변호했다는 죄목으로 사형을 선고받는다. 아버지의 간곡한 유언과 필생의 사업으로 집필하고 있던 <사기>(史記)를 미처 완성하지 못한 상태에서 당한 어처구니없는 불행이었다. 사형을 면할 수 있는 돈도 없고, 누구 하나 나서 자신을 도와주지 않는 상황에서 사마천은 사형을 면할 수 있는 두번째 방법인 성기를 잘라내는 궁형을 자청한다. 그의 나이 마흔아홉이었다. 그리고 그는 죽음보다 치욕스러운 궁형으로 인한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슬픔을 이겨내고 끝내 위대한 역사서 <사기>를 남긴다.

<사기>를 완성한 다음 사마천은 친구 임안이 보낸 편지에 늦게나마 답장을 보내 궁형 당시를 회상하며 “사람은 누구나 한 번은 죽는다. 하지만 어떤 죽음은 태산보다 무겁고, 어떤 죽음은 새털보다 가볍다. 죽음을 사용하는 방향이 다르기 때문이다”라는 말로 자신이 궁형을 자청하면서까지 구차한 삶을 선택한 것은 궁극적으로 태산보다 무거운 죽음을 위한 고뇌에 찬 결정이었음을 암시한다.

사마천이 말한 죽음의 무게에 대해 생각해본다. 며칠 있으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1주기다. 그가 죽음을 이용한 방향이 옳았는지, 그의 죽음이 얼마만큼의 무게를 가지는지에 대한 평가를 내리기에는 아직 이르다. 다만 태산보다 무거운 죽음은 그만두고라도 자신의 죽음에 대해 책임질 수 있는 삶을 견지하는 일이야말로 자신과 이 사회에 누를 끼치지 않는 최소한의 도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은 해본다. 유난히 죽음이 많았던 몇 달이었다.

김영수 중국 전문 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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