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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탈북인의 낮은 목소리] 정착의 또다른 이름 ‘선택’ / 진나리

등록 2016-08-17 17:59수정 2016-08-17 19:42

진나리
대학원 박사과정

저는 북에서 왔습니다. 익숙한 것보다 낯선 것이 더 많은 남한에서의 정착은 수없이 많은 ‘선택’의 과정을 요구합니다.

‘선택’이라는 용어는 북한에 살 때에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기 남한에서처럼 일상의 한 부분은 아니었습니다. 북한에서는 ‘선택’보다 ‘배치’와 ‘공급’에 더 익숙해 있었습니다. 개인이 무엇을 ‘선택’하여 스스로 해나간다고 하기보다는 국가가 주도하고 그에 화답하는 형식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선택’의 폭은 제한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남한 생활은 대부분이 ‘선택’이고 그에 책임을 지게 됩니다. 그 때문에 이 ‘선택’이 얼마나 낯선 것이고 불편한 것이었는지 모릅니다. 심지어 별것 아닌 간장 한 병 사러 마트에 가서도 한참을 들여다보고 망설이고 고민을 하게 만듭니다. 너무 많아서 ‘선택’받지 못하는 경우도 보았습니다. 할인 문구가 붙은 상품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알아서 고릅니다. 오히려 한참을 고르다가 아무것도 사지 못하기도 합니다. 또 얼마나 피곤한 일인지 모릅니다. 처음에는 여기가 제일 좋고 가격 또한 괜찮다 싶어 얼른 샀는데, 나중에 몇 발자국 못 가 똑같은 제품을 더 낮은 가격에 판매하는 걸 보고 후회도 얼마나 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다시 돌아가 환불받고 하는 번거로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이후에는 그와 같은 실수를 피하기 위해 여기저기 자꾸만 둘러보고 했는데 그 또한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모릅니다. 뭐 하나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렇게 낯설고 불편하고 피곤하기만 하던 ‘선택’은 어느덧 일상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더 쉬워졌다고 하기보다는 공기를 들이켜며 하루 세끼 챙겨 먹듯이 당연한 것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저에게 ‘선택’은 하루이틀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비로소 일상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선택’의 홍수 속에서 부딪히며 감내한 고통은 오롯이 저의 몫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북에서 온 사람만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에서 태어나 성장하는 모든 이들은 그렇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들과 어울려 ‘선택’의 지혜를 터득해갈 때마다 느끼는 보람도 있습니다. ‘선택’이 비록 불편하고 적응의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로 인해 획득할 수 있는 무궁무진한 기회를 잘 알고 있습니다.

‘선택’이 일상이 된 여기 한국과 ‘선택’이 지극히 제한된 북한, 그래서 때로는 나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을 떠올리면서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아직 ‘선택’의 홍수 속에서 살아본 적 없는 수많은 북한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과거의 나를 기억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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