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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탈북인의 낮은 목소리] 좋은 술 / 진나리

등록 2019-01-16 18:17수정 2019-01-16 19:29

진나리
대학원 박사과정

저는 북에서 왔습니다. 북한에서 술은 매우 비쌉니다. 집에서 만든 술 한병은 북한 돈 500원이었습니다. 쌀 1㎏이 800~900원 할 때입니다. 술은 아버지를 비롯한 남성들이 주로 마시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술을 마실 때 엄마의 기분은 늘 안 좋았습니다. 엄마 입장에서는 그 비싼 술 살 돈이면 쌀이나 부식물을 더 살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설이나 추석처럼 술을 많이 필요로 할 때면 엄마는 집에서 술을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비싼 술을 아버지는 늘 친구들과 마셨습니다. 그때마다 아버지 친구들은 어머니에게도 술을 권하곤 했습니다. 어머니는 술을 못 마신다고 손사래를 쳤습니다. 그런 어머니도 술을 찾으실 때가 있었는데 고기 먹는 날입니다. 엄마는 술을 조금이라도 마셔야 소화가 잘된다고 하시며 부엌에서 아버지나 친구들이 마시고 난 병에 조금 고여 있는 술을 마셨습니다. 이렇게 북한에서 술은 귀했고 엄마가 마시기에는 너무 비싸고 아까운 것이었습니다.

남한에 왔는데 술은 너무 흔한 것입니다. 어느 상에나 술이 빠지지 않고 등장합니다. 여기서는 술이 비싸고 귀해서 못 마시거나 쌀 1㎏ 가격을 떠올릴 일은 없습니다. 그래서 너무 많이, 그리고 자주 마셔서 탈입니다. 해가 바뀔 때면 더합니다. 여기저기서 친구들, 선배들, 직장 동료들, 그리고 가족들과의 잦은 술자리가 생깁니다. 저는 처음에 남한에 와서 술 마실 줄을 몰랐고 마시려고도 안 했습니다. 마셔본 적도 없고 당연히 여성은 못 마시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대학원 들어가고 술을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3교시라 해서 원우들끼리 수업 뒤 갖는 술자리가 꽤 많았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술을 못한다고 했고 자리가 끝나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저는 1차, 2차, 3차 자리를 이동하며 술을 마시는 문화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무슨 여성들이 술을 그렇게 마시는지, 남성들과 똑같이 건배하고 마시고 하는데 저래도 되는가 싶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동기들이 의기투합하여 저에게 술을 가르치기 시작했고 대학원 과정을 마칠 때쯤 저는 여러 회식자리에 부담 없이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술을 마시면서 좋은 점은 안 마실 때보다 사람과 사귀고 정보를 교환하는 일이 더 많아지고 수월하다는 것입니다. 기분 좋게 서로를 응원하고 함께 즐거워하는 날이면 이 좋은 걸 왜 이제야 배웠나 싶습니다. 나쁜 점은 술을 늦게 배웠어도 내가 즐기는 양이 있는데, 회식을 하다 보면 늘 양보다 많이 마신다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날에는 늦게까지 술 마시다 막차가 끊겨 택시를 탈 때도 있었습니다. 또 새벽 두시가 넘어 택시도 안 다녀 다음날 첫차를 탈 때까지 술집에서 시간을 보낸 적도 있었습니다. 점차 회식자리가 부담스럽게 다가올 무렵 저는 남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후 저는 회식도 좋지만 주말 저녁 남편과 기분 좋게 한두잔 나누는 시간이 더 좋아졌습니다. 이제는 무리하게 마실 일도 집에 늦게 갈까 걱정도 없습니다. 소소한 이야기에 즐거워하며 자기 양만큼 적당히 마시는 술이 좋은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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