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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탈북인의 낮은 목소리] 새해 풍경 / 진나리

등록 2017-01-11 18:14수정 2017-01-11 19:42

진나리
대학원 박사과정

저는 북에서 왔습니다. 남한에 와서 맞이하는 새해의 벅참도 이제는 수년 전의 일이 되었습니다.

의례적인 행사를 통해 본 새해맞이 남과 북의 모습은 다릅니다. 하나의 예가 남한은 종각에서 새해의 첫 아침을 알리는 제야의 종을 울린다면, 북한은 새해 학생들의 설맞이 공연을 하면서 주석단과 관객을 향하여 세배를 드립니다.

하지만 남한에 와서도 북한의 새해맞이 모습과 다를 바 없는 것이 있습니다. 저는 해마다 제야의 종을 치는 모습을 직접 보고 싶었지만 마음뿐이지 집에서 뉴스를 통해 봅니다. 북한에서도 새해 설맞이 공연은 평양에서 하는 것이기에 지방에 살았던 저는 당연히 새해 아침 조선중앙방송을 통해 보았습니다. 또 하나 남한에서는 31일부터 메신저를 통해 새해 인사말 전하기 바쁩니다. 설날 당일에도 부지런히 보내고 받고 합니다. 다만 올해는 1월에 음력설이 있어 지금 새해 인사 보내는 것이 맞나 신경이 쓰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새해 아침 굉장히 수동적일 수밖에 없는 저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북한에서 새해를 맞이하여 덕담을 주고받는 풍경은 남한과 다를 바 없습니다. 새해 아침부터 며칠 동안은 그해 들어 처음 만나는 모든 분들께 “새해를 축하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등의 인사와 덕담을 주고받습니다. 여기에 음력설 인사에 대한 걱정은 없었습니다. 새해는 역시 달력의 첫 장을 넘기는 첫날 아침이니까요.

누구나 할 것 없이 반갑게 인사를 주고받는 것, 남한과 북한의 인사는 오랫동안 세대에 세대를 걸쳐 내려오는 우리의 고유한 풍습입니다. 하지만 제가 남한에서 살면서 겪게 되는 설날 인사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나의 휴대폰에 저장된 목록의 범위 내에서 인사가 전달되고 그 범위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입니다. 북한에서는 각 가정에서 출발하여 자기가 사는 동네를 거쳐 각자가 몸담고 있는 구역까지 이동하는 경로의 전 과정이 인사를 주고받는 장이었습니다. 지금의 남한에서 주고받는 메시지의 반경과 북한의 인사를 직접 주고받는 반경을 비교한다면 남한이 몇 배로 더 큽니다. 하지만 그에 따른 만족감은 이에 비례하지 않습니다. 어느 것이 맞고 틀리다의 정답은 없으나 이러한 차이가 바로 사회가 만들어낸 문화임을 새해 인사를 통해 느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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