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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탈북인의 낮은 목소리] ‘어른’이 필요한 순간 / 진나리

등록 2017-04-05 19:10수정 2017-04-05 20:15

진나리
대학원 박사과정

저는 북에서 왔습니다. 주변에서는 우리를 가리켜 고향이 북한인 한국인이라고 합니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안에서 고향만 다를 뿐이라고요. 가끔은 그 고향이 발목 잡을 때도 있지만, 대부분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모든 것에 고향이 끼어들 틈은 잘 없었습니다. 그래서 잊고 살아가는 때가 더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 고향이 한계로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바로 결혼이라는 인륜지대사를 앞두고요.

요즘 저는 북한이 고향인 내가 남한이 고향인 상대를 만나 결혼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순간순간 느끼고 있습니다. 다른 건 다 차치하고라도 가장 중요한 문제가 바로 집안에 ‘어른’이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제 경우는 부모님이 계십니다. 그런데 다른 모든 일에는 그렇게 열정적인 분들이신데, 유독 저의 혼사를 앞에 두고는 힘없는 모습을 보이십니다. 자식이 결혼하게 된다는 것에 기뻐하지 않을 부모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 결혼이 부모님께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마음의 상처를 안길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부모님 역시 한국에 오신 후 줄곧 적응 중에 계시기 때문에 어쩌면 젊은 저희 세대보다 적응 속도가 많이 더딥니다. 그래서 결혼을 앞두고 중요한 문제가 생길 때 부모님과 의논을 할 수 있는 부분이 적을 수밖에 없습니다. 부모님 역시 ‘어른’의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풍습 등 지역적 차이는 우리 사회 어디서나 쉽게 보입니다. 정작 문제는 고향이 북한인 저와 부모님께 이런 중대사에 꼭 필요한 ‘어른’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적응 기간은 정착 기간에 반비례합니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수많은 문제로 마음은 어수선하기만 합니다. 모든 결정을 사실상 혼자 내리고, 그 책임이 나로부터 시작되고, 책임을 부모님과 함께 감당해야 한다는 부담이 새로운 도전을 망설이게 합니다. 고민 끝에 평소에 저에게 관심을 가지고 계신 분들께 하소연 겸 의견을 여쭙기 시작했습니다. 좋은 점도 있지만 때로는 가혹하고, 때로는 더한 좌절을 맛봅니다.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하는 후회, 지금이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라는 안도감, 잊고 지냈던 과거에 대한 기억,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것이 뒤섞인 복잡한 고민이 듭니다.

결국 제가 찾던 ‘어른’은 한국 사회에 사는, 내 주변에 있는 그들이었습니다. 조금 더 일찍 그들과 소통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눌 때만이 내가 원하고 내가 필요로 했던 것을 적극적으로 얻을 수 있었습니다. 저에게 ‘어른’은 소통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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