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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탈북인의 낮은 목소리] 같지만 다른 모습 / 진나리

등록 2017-05-31 18:23수정 2017-05-31 21:09

진나리
대학원 박사과정

저는 북에서 왔습니다. 남과 북에서는 매년 크고 작은 행사들이 열립니다. 북한에서는 체제 선전과 주민 결집, 정책 과시용으로 1년에 적게는 몇 번에서 많게는 수십 번의 크고 작은 행사를 치릅니다. 남한에서는 정부 주도 외에도 각 단체, 소속별 행사들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남한에 온 후로 저는 북한과는 다른 성격의 여러 행사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북한에서는 순수 참여자의 모습이었다면, 남한에서의 현재는 기획에서 실행의 전 과정에 대한 관리자의 위치에 설 때도 있습니다.

굳이 비교하자면 남북한은 보여지는 것, 즉 메시지 전달에 많은 투자를 합니다. 물론 질적인 면에서 북한이 남한에 한참을 뒤떨어져 있음은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런데도 행사의 기획부터 준비 과정과 실행에 있어서 치밀하고 신속하며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습니다. 이렇게 되기까지 북한 주민들은 몇 달 전부터 몇 시간 전에 이르기까지 행사 준비에 동원됩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준비하였기에 행사 당일에는 문자 그대로 최선을 다하게 됩니다. 그러고는 한 번의 실수 없이 최선을 다한 것에 만족합니다.

한국에서도 주최 쪽마다 차이는 존재하더라도 몇 달 전부터 계획을 세우고, 관련 준비물을 챙기고 수도 없이 확인합니다. 감탄하게 되는 점은 해마다 반복되는 행사이지만 매회 기획력과 참신한 아이디어들로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큰 비용과 노력, 참신한 시나리오가 준비된 것에 비하여 정작 행사 당일의 모습을 살펴보면 아쉬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고가의 장비들과 준비물의 질적 우세, 투자된 비용의 면에서는 북한과 비교가 안 되지만 결코 매끄러운 진행은 아니었습니다. 어찌 되었건 끝을 향해 가고 마무리가 되어 가는 것이 신기할 뿐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그다음에 일어납니다. 행사가 끝난 후 담당 영역을 정리하는 것을 보면 많은 준비와 진행 과정에서는 볼 수 없었던 신속함이 그때에야 나타납니다. 행사 때면 의례적으로 받게 되는 판촉물, 손도 안 댄 물건들, 한 번 쓰고 버려지는 물건들, 각종 홍보 전단들…. 그 많은 흔적이 눈 깜박할 사이에 치워집니다. 물 쓰듯 돈을 써 버린 흔적들이 씻겨 내려갑니다. 그러곤 돌아앉아서 비용 정산에 바쁩니다. 당일 행사에서 보인 모든 것이 실적으로 남습니다.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듭니다. 북한의 치밀함과 동원력, 남한의 우수한 기획력과 질적 우세가 조화롭게 작용한다면 그 작품은 세상 어디에 내놓아도 ‘엄지가 척’이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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