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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탈북인의 낮은 목소리] ‘혼자’에서 ‘같이’로 / 진나리

등록 2018-04-11 18:22수정 2018-04-11 19:44

진나리
대학원 박사과정

저는 북에서 왔습니다. 올 때 갖고 온 것이라고는 중국에서부터 입고 온 옷과 가방이 전부였습니다. 그 옷과 가방도 탈북 후 한국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중국의 시장에서 산 것이었습니다. 정작 북한에서 가져온 ‘내 것’이라곤 머리카락밖에 없었습니다. 한국에 정착하고 수년 흘러 어느덧 ‘내 것’이 쌓여가고 있습니다. ‘내 것’은 가구며 옷이며 가전제품이며 주방용품 등 셀 수 없이 많아졌습니다. 그것은 한국에서의 나의 정착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정착 초기에는 넘쳐흐르는 풍요에 취해 새롭고 신기한 모든 것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구매하였습니다. 이렇게 즉흥적으로 구매한 것은 한두 해 지나면 새로 사거나 안 쓰는 물건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후 나는 새로운 것으로 자주 교체하는 것보다는 한번 사면 오래갈 수 있는 실용적인 것을 우선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몇 년을 사용하다 보니 ‘내 것’에 대한 애착은 더욱 강해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결혼을 앞둔 시점에서 생각지도 못한 신경전을 벌이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내가 걸어온 길과 앞으로 걸어갈 길, 그리고 과거의 ‘혼자’에서 현재의 ‘같이’가 갖는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되는 계기이기도 합니다.

결혼 상대는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성장한 늠름한 젊은이입니다. 함께 공부하면서, 미래에 대해 꿈을 키우고 서로를 응원하면서 그렇게 서로가 잘 어울릴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차이를 발견하였습니다. 우선은 전자제품입니다. 구매한 후로 지금까지 살면서 쓰는 데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던 물건들입니다. 또 하나는 가구입니다. 두 사람이 합쳐서 하나의 공간을 형성해야 하니 기존에 집에 있던 가구들을 움직여야 하였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다시 생각해도 그 제품들은 여러 번의 걸음과 생각 끝에 신중하게 산 것일 뿐만 아니라 제 눈에는 지금도 전혀 하자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랬기에 일부를 과감히 치우자는 그의 말에 그렇게 서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대답도 안 하고 눈물 글썽이고 있었습니다. 결혼으로 ‘내 것’을 포기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자꾸만 드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망설이는 나에게 그는 차분하게 이야기하였고, 정말 버리기 어려우면 다시 쓰자고 한발 물러서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신랑의 양보로 나는 ‘내 것’ 하나라도 지켰다는 안도감으로 그날 집 정리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새 가전제품이 들어온 날, 나를 많이 배려한 신랑이 세심하게 고른 멋진 외관과 성능을 자랑하는 제품을 마주하고는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때야 새 둥지에서 새롭게 시작하고픈 마음이 들면서 나를 이해해준 신랑에 대한 고마움에 마음 한구석이 뭉클해졌습니다. 나도 이에 보답하고픈 생각이 들었고 그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귀 기울이고 싶었습니다. 기존에 ‘내 것’만 생각하면서 고집을 부렸던 일이 떠올랐고, ‘같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렇게 오늘도 나는 서툴게 ‘혼자’에서 ‘같이’로 다가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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