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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탈북인의 낮은 목소리] 보약 / 진나리

등록 2018-10-24 18:13수정 2018-10-24 19:07

진나리
대학원 박사과정

저는 북에서 왔습니다. 남한에 온 후 저는 두 번째 보약을 먹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는 수년 전, 어머니 모셔온 직후였고 두 번째는 오늘부터입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날씬한 체형이었습니다. 그런데 항상 부모님은 제가 너무 말랐다고 걱정했습니다. 그 걱정은 남한에 와서도 이어졌습니다. “북한에서야 늘 먹는 게 부족해서 그랬다 쳐도, 이렇게 남한에 와서도 말라 있으니 시집이나 갈 수 있겠나”라고요. 하지만 남한에 온 후 저는 체형 때문에 스트레스 받은 적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친구들이며 주변 사람들은 날씬해서 좋겠다고 했습니다. 옷 사러 가면 가끔 제 몸에 맞는 옷은 마네킹이 입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그걸 이해 못 하셨습니다. 그러다 주변 지인을 통해 보약을 먹으면 살이 좀 붙는다는 말을 듣게 되었고 어머니는 그날로 보약을 주문하셨습니다. 염소탕을요. 그날 이후 어머니는 염소탕이 올 날만을 기다리셨고 며칠 후, 집으로 택배가 왔습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일이 생겼습니다. 일 끝나고 집에 왔는데 어머니가 잔뜩 화난 인상으로 저를 맞이하는 것이었습니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박스에 한가득 담겨 있는 봉지들을 가리키면서 속았다고 자본주의가 무섭다더니 지인이고 뭐고 다 사기꾼이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대충 개수를 파악하니 100개가 넘었습니다. 어머니는 고기며 뼈는 다 어디 가고 어디 맹물 같은 이런 것만 왔다고 우리가 북에서 와서 우습게 본 것 같다고 이게 보약이냐고 정말 노발대발하셨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이건 염소탕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무슨 한약 냄새가 나는 것 같긴 한데 염소는 어디 갔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급히 지인을 불러 이게 맞느냐고 물었고 맛을 본 지인은 염소탕이 진하게 잘 나왔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나 어머니나 이해는 안 갔지만 그 지인이 맞는다고 하니 먹기로 했습니다. 어머니는 두 달 내내 보약은 무슨 보약, 고기는 다 어디 가고 저런 맹물이 왔다고 그 돈이면 집에서 염소 한 마리 사서 고아 먹을걸 하면서 두고두고 후회를 하셨습니다. 2~3년 후 저는 몸무게를 재면서 염소탕을 먹었더니 살이 좀 붙은 것 같다고 했고 어머니는 대뜸 염소탕은 무슨 염소탕이냐고 하셨습니다. 그 이후로 제 입에서 염소탕 소리는 쏙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보약을 두 번째로 먹을 일이 생겼습니다. 산후 보약입니다. 늦은 나이에 출산을 한지라 관리에 이만저만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었는데, 신랑이 산후 보약 지으러 가자고 했습니다. 저는 보약에 안 좋은 기억이 있는지라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뭘 모르는 엄마와 내가 시킨 것이었으니 왠지 신랑이랑 같이 가면 속지 않고 좋은 것으로 할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손잡고 간 한의원, 녹용 들어가고 회복에 좋은 것이라며 두 가지를 제시했고 우리는 그중 하나를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택배로 보약이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수년 전과 같은 손바닥 크기의 비닐 팩에 든 것이었습니다. 또 속았나? 아닐 거야. 그런데 이건 어머니에게 비밀로 해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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