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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탈북인의 낮은 목소리] 평양 지하철의 추억 / 진나리

등록 2018-11-21 18:16수정 2018-11-22 07:24

진나리
대학원 박사과정

저는 북에서 왔습니다. 북한에 있을 때 저는 지방에 살았습니다. 운이 좋게도 한국에 오기 전까지 저는 평양에 다섯번 가보았습니다. 한번은 학생 때 모범학교 칭호를 받으면서 전교생 가운데 뽑혀서 평양 구경을 갔었고, 그 뒤 네번은 교원(한국의 교수)을 하면서 강습, 경연 등의 공적인 일로 다녀왔습니다. 그때마다 자주 이용한 것이 지하철이었습니다. 지하철은 제가 살던 지역에는 없었습니다. 반면 평양에 가면 지하철을 실컷 탈 수 있었습니다. 요금도 별로 비싸지 않았는데, 역 입구 매표소에서 지폐를 지하철용 동전으로 바꾸어주었습니다.

그때는 지하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도 신기했고 땅속 깊은 곳에 기차가 다닌다는 것도 신기했습니다. 엘리베이터는 생전 처음 타보았는데, 얼마나 오래 내려가는지 대학생 언니, 오빠들 중 일부는 책을 보고 있었습니다. 처음 평양에 갔을 때 저는 일부러 지하철을 타고 끝에서 끝으로 몇번을 왔다 갔다 한 적도 있습니다. 그때만 해도 기본 노선은 엑스(X)자 모양의 두개가 전부였습니다. 지하철역도 한국에 비하면 몇 안 됩니다. 어떤 날은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숨도 쉬기 힘들 만큼 간신히 서 있다가 떠밀리듯 찻간을 빠져나오기도 했습니다.

평양에서도 지하철은 출퇴근 시간, 그리고 행사가 있는 날이면 미어터질 듯 사람들이 한데 몰려서 아수라장이 됩니다. 그래도 지금 아니면 못 타본다는 생각에 일부러 사람 많은 시간에 탔었습니다. 저는 의자에 앉아도 보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어디까지 가냐고 묻기도 했습니다. 같이 간 학생들끼리 서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는 우리를 보고 평양 사람들은 어디서 왔냐고 물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평양 사람들이 보기에 우리의 모습이 참 촌스러웠을 것 같습니다. 그때만 해도 제 일상이 지하철과 뗄 수 없이 연결될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한국에 온 뒤 저는 지하철을 수없이 탔습니다. 서울에서 처음 지하철을 이용할 때 저는 가는 방향이 맞는지, 내려야 할 역이 얼마나 남았는지 신경 쓰느라고 주변을 돌아볼 여유도 없었습니다. 태평하게 눈 감고 가시는 분들이 신기할 정도였습니다. 환승이라도 하는 날이면 더욱 신경이 예민해집니다. 집중해서 역 이름을 들어야 하는데 소리소리 성경 구절을 외치고 상자에 물건 가득 싣고 목청 높여 물건을 판매하는 사람이 지나가기라도 하면 안절부절못했습니다. 어떤 날은 높은 수익률을 얻을 수 있다는 전단지를 붙이는 분과 그 뒤를 쫓아가면서 붙인 전단지를 수거하는 분을 바라보다가 정차 역을 지나치기도 하였습니다.

어느덧 여유가 생겨 지하철을 둘러보면 대부분 승객은 얼굴을 숙인 채 휴대폰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동 중에 수시로 휴대폰을 열어 이메일을 확인하고 휴대폰을 이용해 자료 검색을 하고 논문 등을 읽습니다. 와이파이 빵빵 터지고 서울의 구석구석 안 가는 곳 없는, 냉난방 다 되는 서울의 지하철은 세계 어느 나라에 가보아도 단연 최고입니다. 오늘도 저는 지하철을 타고 출근합니다. 휴대폰을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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