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이슈논쟁ㅣ고위공직자 인사검증] 보편적 기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중요하다 / 서복경

등록 2019-09-02 18:22수정 2019-09-02 19:07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국회 인사청문제도는 법이 정한 특정 직위 공직자를 임명하기 위한 절차 중 하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사회적 기능이 있다. 당대 한국 사회가 어떤 사회적 규범을 가질 것인지에 대한 합의를 갱신해가는 것이다. 그 합의를 공직(후보)자에게 투영하여 시민들과 공직 사회의 거리를 좁히고 공직 사회에 새로운 기율을 만들어가게 된다. 그래서 국회의 고위공직자 검증을 통해 합의된 기준은 법이 정한 몇몇 공직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입법, 사법, 행정부 공직자들에게 폭넓은 기준으로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한국 사회는 늘 변화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태어나고 죽으며 새롭게 참정권을 얻고 새로운 정치적 의견이 조직된다. 시장도 변하고 공론장도 변하고 사람들의 생각도 변한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항상 ‘지금 이 순간’ 다수의 의견을 반영하는 새로운 사회적 합의와 규범을 갱신해가는 과정을 필요로 한다.

성문화된 법규로 유지되는 사회적 합의의 갱신 절차는 경직적이다. 엄격한 법적 절차를 완료해야만 바뀔 수 있다. 일련의 법적 절차가 끝날 때까지 기존 법규가 적용되어야 하므로 위법과 합법의 경계가 분명하다. 반면 ‘지금 이 순간 공직(후보)자가 충족해야 하는 기준’ 같은 문제는 훨씬 복잡한 사회적 고려가 필요하다. 법규 위반 여부는 당연히 기준이 되어야 하지만, 법으로 규정되지 않은 당대 중요한 사회적 가치와 같은 비공식 규범도 중요하게 고려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당대 공직(후보)자 자격 기준을 세우는 일은, 항상 일정한 딜레마 속에서 구체적인 판단을 필요로 한다. 우선 제도 변화로 인한 공식 규범의 시간차 문제가 있다. 민주화 이후 지난 30여년 우리 사회의 법규는 끊임없이 변화해왔다. 5년 혹은 10년 전에는 불법이 아니었던 것이 이제는 불법이 되고, 그 반대 현상도 발생한다. 위장전입, 다운계약서는 불법이 아니었다가 어느 시점부턴가 불법이 되었다. 지금 공직후보자가 된 사람에게 이런 전사(前史)가 있다면, 우린 어떤 기준에서 판단해야 할까?

그 행위가 위법이 된 시점 이후 발생한 행위에 대해서만 문제로 삼는다면 결론은 간단하다. 정해진 시점을 기준으로 위법 여부만 가리면 된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사회적 인식이 바뀌고 이를 반영해 법이 바뀔 때까지는 시간차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당대 불법이었든 아니었든 현재 기준을 적용해 모조리 결격 사유로 판단해야 할까? 그러면 향후 공직후보 가능자들의 범위가 대폭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들은 진공 상태가 아니라 수십년 한국 사회의 법과 제도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두번째 딜레마는 법규 수준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의 가치와 인식의 변화에 상응하는 비공식 규범 차원에서 발생한다. 과거 다주택자인 공직(후보)자는 탈세 등의 불법이 없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지금도 다주택 보유 자체가 불법은 아니다. 그러나 주택은 투자가 아니라 주거 목적이어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이 확산되면서, 공직(후보)자의 다주택 보유는 그 자체로 문제로 인식되거나 최소한 자제되어야 한다는 기준이 세워지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도 구체적인 기준은 지속적인 논의를 필요로 한다. 예컨대 주택을 몇채나 보유해야 문제가 될까? 또 언제부터 구입한 주거 목적 이외의 주택 보유를 문제 삼아야 할까?

정답은 없다. 그때그때 사회적 논의를 통해 기준을 갱신해가는 수밖에. 하지만 기준을 세우는 데 원칙은 필요하다. 우선 보편적이어야 한다. 공직(후보)자 홍길동에게 적용하고자 하는 기준은 김길동에게도 적용될 수 있어야 한다. 또 연속적이어야 한다. 어제 적용했던 기준 위에서 오늘의 기준이 논의되어야 새로운 합의가 가능해진다. 그리고 구체적이어야 한다. 오늘 우리는 어제의 기준을 바꿀 수 있지만, 그 이유에 대해서는 합의가 필요하다. 그래야 앞으로 유사 사례가 발생했을 때 적용 여부를 논할 수 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사례에서도 마찬가지다. 지금 이 순간 한국 사회에 중요한 것은 그가 장관이 되거나 안 되는 결론보다 그 ‘이유’일 수 있다. 그 이유는 지금 한국 사회가 어떤 규범을 갖고자 하는지, 앞으로 공직 사회에 어떤 기준을 요구할 것인지를 가늠해주는 지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지금까지 부모, 형제자매, 배우자의 자산 형성 및 운용 과정에 대한 판단은 공직(후보)자 검증 기준이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지지를 받았다. 그런데 최근에는 후보자가 끼지 않은 아버지나 어머니, 동생의 사업상 거래가 연일 보도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사례를 계기로 기준이 바뀌어야 하는 것일까? 어떻게? 공직(후보)자의 자녀교육 문제는 어디까지 기준으로 삼아야 할까? 미성년 자녀의 교육과정까지인가, 성년이 된 자녀의 교육과정도 책임 범위여야 하나?

이 모든 문제에 대해 당장 사회적 합의가 만들어지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찬성을 하든 반대를 하든 앞으로도 적용될 수 있는 기준을 명확히 해야만 사회적 논의가 진전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공직후보자 검증 과정은 사회적 합의를 갱신함으로써 공직 사회를 사회 변화에 좀 더 민감하게 만드는 긍정적 기능이 아니라, 합의가 부재한 사회갈등의 확대 재생산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

[이슈논쟁] 고위공직자 인사 검증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이번주에 열릴 것으로 전망됐으나, 결국 여야 간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서 불발됐다. 결국 조 후보자가 2일 기자회견을 자청해 입장을 밝히는 초유의 상황으로까지 이어졌다. 이는 그만큼 조 후보자의 법무부 장관 자질을 두고 다양한 측면에서 의혹이 불거졌으며, 이를 둘러싼 논란이 정치권 안팎에서 뜨거웠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다만 이번 논란은 비단 조 후보자에 대한 검증 과정에서만 나타난 현상은 아니다. 과거에도 숱한 논란이 벌어져왔으며, 앞으로도 반복될 소지가 크다. 이 때문에 인사청문제도 개선 방안을 포함해 향후 고위공직자 인사 검증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논의가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향후 고위공직자 인사 검증 방안을 주제로,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와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이 각각 견해를 밝혀왔다. 조 교수는 철저한 사전 검증과 그에 대한 정보 공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 데 비해, 서 연구원은 사회적 합의에 의해 보편적이고 연속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검증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