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 봄, 조선에 희망적인 사건이 있었다. 그해 3월5일에 <조선일보>가, 4월1일에 <동아일보>가 민족지로 탄생한 것이다. 간행 100주년을 맞는 조선·동아는 한국 언론의 거목으로 자리 잡았고, 그 연륜만으로도 축하받을 만하다. 언론 창달을 위해 노력한 두 신문은 경의와 감사의 대상이지만, 자기비판이 필요한 부분도 없지 않다. 조선·동아의 100년이 언론사에 큰 상징성을 갖고 있다면, 그 상징성에 값하는 책임 또한 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조선·동아는 1919년 3·1운동의 민족적 저항의 산물이었다. 일제는 강점 뒤 조선인의 집회·결사·언론의 자유를 박탈하고 총칼로 무단통치를 강행했다. 3·1 독립선언이 “학자들은 강단에서, 정치가는 실제 생활에서 우리 선조들의 대대로 닦아온 위업을 식민지시하고 우리 문화민족을 야만족같이 대우하여 한갓 정복자의 쾌감을 탐할 뿐”이라 한 것은 무단통치의 실상을 점잖게 지적한 것이다. 3·1운동 후 일제는 언론·집회·출판에 대해, 질서와 공안 유지에 무방한 한 민의의 창달을 기하겠다고 했다. 조선·동아는 무단통치를 문화통치로 전환하는 과정의 산물이지만, 사실은 조선 민중의 격렬한 저항과 요구를 수용했다는 의미를 갖는다.
한국의 근대 신문은 1883년 열흘 간격으로 나온 <한성순보>에서 시작해 그 뒤 주간 성격의 <한성주보>로 발전했으나, 그마저 1888년에 폐간되었다. 1896년 <독립신문>이 간행되고 2년 뒤 <매일신문> <제국신문> <황성신문>이 간행되었다. 1904년 러일전쟁 발발 직후 영국인 베델이 창간한 <대한매일신보>는 의병운동을 자세히 소개하는 등 한국 민중을 위한 언론으로 활약했다. 일제 강점과 함께 한국 신문을 모두 폐간시킨 총독부는 1910년 8월, 대한매일신보를 매일신보로 이름을 바꿔 총독부 기관지로 만들었다. 1919년 총독부는 <매일신보>(조선어)와 <경성신문>(일어), <서울프레스>(영어)로써 조선의 여론 조성과 대내외 선전에 주력했는데 이럴 무렵에 조선·동아가 창간되었다(정진석).
1919년 9월에 부임한 총독 사이토 마코토는 이듬해 1월6일 조선·동아, <시사신문>의 간행을 허가했다. 조선일보는 ‘우리 신문명 진보주의를 선전’하기 위해, 동아일보는 ‘민족주의·민주주의·문화주의’를 표방하고 조선 민중의 여망을 의식하면서 창간됐다. 총독부는 조선·동아를 허가한 뒤 더 촘촘히 그물망을 쳤다. 조선·동아의 사사(社史)는 그 뒤 일제하의 필화·압수·투옥·정간·폐간 등 고난의 역정을 빠뜨리지 않았다. 전시체제기에 들어서면 조선·동아도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와 다를 바가 없어, ‘세 신문의 사설과 머리기사가 모두 똑같았고, 제호만 가리면 어느 신문인지 구분하기 힘든’ 내용이어서, 그 편집을 총독부가 맡았다 할 정도였다는 변명도 잊지 않았다. 그런 역경에서도 조선일보는 신간회 조직을 주도했고, 동아일보는 <조선중앙일보>와 함께 일장기 말소 사건을 감행했다. 숱한 탄압과 위협에도 조선 문화의 보존·창달과 조선의 지도적 인물의 집결·배양에도 힘썼다. 역사는 한 시기의 고초만 기억하지 않는다.
해방 후 조선·동아는 일제 부역 사실을 고백하지도 않은 채 중간(重刊)했고, 유신과 신군부 독재 때에도 같은 과오를 되풀이했다. 이제라도 국민 앞에 사과하는 것이 100년 전통의 명예를 회복하는 지름길이다. 최근 ‘조선·동아 거짓과 배신의 100년 청산 시민행동’이 선정한 ‘최악보도 100선’은 사사와는 시각을 달리한다. 그들은 조선·동아가 저지른 부끄러운 과거들을 나열했다. 57개 언론·시민사회단체는 일제강점기와 해방정국·유신정권 등 민족적·민주적 위기에 두 언론사가 취한 ‘반민족적·반민주적’ 보도 때문에 100년의 역사는 자랑스럽다기보다는 부끄럽다고 혹평한다. 해방 직후 모스크바 삼상 회의를 왜곡 보도하여 민족사의 흐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물론, 언론자유와 민주화를 위해 권력에 저항한 기자들을 대량 해고하여 오늘의 언론 현실을 조성한 책임 또한 묻고 있다.
이제 조선·동아 100주년을 맞아 그 책임을 공유해야 할 한국 언론에 질문해보자. 먼저 언론자유의 문제다. 10여년 전, 북쪽 어느 인사와 사적 대화에서 “그래도 남쪽에는 말할 자유가 있지 않습네까”라는 말을 들었다. 순간 놀랐지만 얼른 되물었다. “우리가 이 말할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는지 아시는지요.” 그렇다. 우리는 이 ‘말할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해방 후 수십년간 투쟁했고 이제 겨우 그런 자유를 누리는 초입에 들었다. 지금 우리는 청와대 코앞에서 연좌농성을 하며 대통령을 향해 온갖 욕설을 해도 물대포와 최루탄 걱정을 안 해도 될 정도가 되었고, 온갖 가짜뉴스와 험담으로 정권을 비방해도 블랙리스트에 오를 일이 없게 되었으며, 연일 누가 더 정권을 잘 때리는지 시합을 하기라도 하듯이 근거가 심히 모자라는 악담과 비방을 퍼붓는 것이 마치 언론의 사명인 듯 활개를 쳐도 그 일로 아무런 불이익도 받지 않는 나라가 되었다(김요한).
한국의 언론자유는 수많은 희생을 통해 여기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자유를 방종의 기회로 삼는 무리들이 이를 선점했고, 심지어 언론 권력을 농단, 성역화해갔다. 종래 정보기관 외에 청와대·법원·검찰 등이 성역이었다가 이제는 검찰과 언론이 성역에 속하는 편이지만, 공수처법 작동 여하에 따라 검찰도 성역에서 제외되면 언론만이 남는다. 그들은 기자들을 내쫓고 권력 앞에 스스로 무릎 꿇었던 전력을 갖고 있어, 말하자면 무임승차한 이들이다. 이게 언론자유의 도달점이라면 부끄럽고 슬픈 일이다.
언론과 진실, 사회적 책임의 문제는 어떤가. 사실을 비틀고 왜곡시키는 기사가 비일비재하다. 취재원 보호라는 연막을 치고 거짓기사까지 보호받으려 한다. 이런 언론일수록 정파성을 노골화한다. 정파적 관점은 자파의 이해관계에 따라 취재를 취사선택한다. 확인되지 않은 보도를 근거로 논설을 쓰고 본래의 사건을 환골탈태시킨다. 기능 분화까지 잘되어 있어서 삼인성호(三人成虎)는 식은 죽 먹기다. 거기에다 민족사의 진로까지 왜곡시켰던 거짓보도와 가짜뉴스는 오늘도 우리 공동체를 의도적으로 분열시키고 있으며 갈등을 끊임없이 재생산하고 있다. 정파성에 근거한 왜곡과 가짜뉴스가 근절되지 않는 것은 그것을 확대 재생산해주는 정치권과 뒷배가 있기 때문이고, 오보와 거짓뉴스를 활용하려는 권력화, 성역화된 보호막이 있기 때문이다.
비판과 경종을 사명으로 하는 언론의 사회적 책임과 관련해 의례적인 말이지만, 공동체가 난국을 맞을 때는 사회 통합적 기능이 우선이다. ‘코로나19’의 난국을 맞아 고통을 겪는 민중을 향해서는 위로와 희망을, 방역 일선에서 수고하는 의료진 및 행정당국에 대해서는 용기와 격려를 아끼지 않아야 할 때다.
이만열 ㅣ 상지학원 이사장·전 국사편찬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