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는 박원순·오거돈 전 시장의 성폭력 사건 때문에 치러지게 됐다. 그런 만큼 젠더 이슈가 선거의 주요 의제가 되리란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거대 양당은 이런 기대를 외면했다. 선거 전략 차원이 아닌 진심 어린 성찰은 찾아보기 힘들고, 성평등 사회에 대한 진지한 고민도 눈에 띄지 않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소수 정당 또는 무소속으로 출마한 ‘페미니스트 후보’들이 거대 양당이 만든 공백을 충실하게 메우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에는 모두 5명의 ‘페미니스트 후보’가 출마했다. 신지혜(기본소득당), 오태양(미래당), 김진아(여성의당), 송명숙(진보당), 신지예(무소속) 후보가 그들이다. 지금까지 그 어떤 선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들 가운데 3명이 30대 초반의 여성이라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남성 위주의 사회를 바꾸고자 하는 젊은 여성 정치인들의 열망이 그만큼 크다는 의미일 것이다.
’페미니스트 후보’답게 이들은 기존 거대 정당의 공약집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선명한 가치를 내세운다. ‘페미니즘 서울, 민주주의의 완성입니다’(신지혜), ‘성소수자 자유도시 서울’(오태양), ‘여자 혼자도 살기 좋은 서울’(김진아) 등이 그 예다. 차별성 있는 공약도 많다. 송명숙 후보는 ‘서울형 직장내 성폭력 피해자 실업수당 지급’을, 신지예 후보는 시장 직속의 젠더폭력전담기구 설치를 약속했다. 공약뿐만 아니라 선거운동 과정에서도 차별성을 보여준다. 신지혜 후보는 ‘공존을 위한 평등한 선거운동’을 표방한다. 구체적인 실천 방안으로, 선거운동원들이 지켜야 하는 ‘평등문화 약속문’을 만들었다. ‘성적 지향 등의 이유로 서로 차별하지 않는다’ ‘나이와 결혼 여부 등을 묻지 않는다’ 등 10가지 항목으로 구성돼 있다. 신지예 후보는 6명의 부시장 후보와 함께 팀을 이뤄 출마했다. 선거운동본부 이름도 ‘팀서울’이다. 시장의 제왕적 권력을 나눠, 협력하는 정치로 시정을 돌보겠다는 취지다. 다만 이들의 목소리가 유권자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선거운동 관련 법규를 개선할 필요는 없는지 꼼꼼히 살펴보기 바란다. 언론도 적극적인 관심과 세심한 배려를 보여야 한다.
우리 사회가 여전히 남성 쪽으로 현저하게 기울어져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따라서 페미니즘을 전면에 내세운 정치인들의 목소리가 분출하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꼭 당선 가능성을 따질 일도 아니다. 이들의 목소리가 모여 남성 중심의 사회에 균열을 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