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역 기초단체장 공천 비리 의혹과 관련해 김덕룡 의원이 1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한나라당 의원총회장에 들어 서고 있다. 한나라당 지도부 박근혜 대표와 이재오 원내총무의 얼굴이 어둡다. 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공천 장사’ 충격 속 한나라 의총, 너무 다른 두 중진의원
“신문에 난 게 다 사실은 사실입니까?”(임인배 의원)
“억장이 무너진다”(김무성 의원)
13일 오전 한나라당 의원총회 현장. 하나 둘씩 모여들기 시작한 의원들의 표정엔 ‘당혹’한 기색이 역력했다. 5선 의원으로 당의 원내대표까지 지낸 ‘간판’ 김덕룡 의원과 서울시당 위원장인 박성범 의원이 서초구청장, 중구청장 공천과 관련해 금품을 받았다는 사실을 ‘충격’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의원들 마음이 이렇게 갈갈이 찢어져서 뭐 하겠나? 참, 이렇게 되면 안그래도 당 지지율이 열린우리당하고 7% 밖에 차이가 안나는데 역전되지 않겠나?”(엄호성 의원)
의원직 사퇴를 거부한 최연희 전 사무총장의 성추행사건의 상처가 5.31 지방선거에 악재로 작용할 것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당 대표를 지낸 중진 의원들의 ‘공천 장사’라는 대형 악재가 알려지자 한나라당 의원들의 불안감은 더욱 커 보였다. 의총장 곳곳에서 웅성웅성하는 분위기가 내내 이어졌다.
박성범 의원 “중상모략 믿고 당이 고발한 것 이해못해…탈당하겠다”
이날 의총장에선 물의를 일으킨 박성범 의원과 김덕룡 의원이 신상발언을 하기 위해 나섰다. 발언에 나선 박 의원은 검찰에 수사를 의뢰키로 한 한나라당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탈당’ 의사를 밝혔다. 그는 “중상모략하는 세력의 말을 믿고 당에서 고발한 사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심히 유감스럽고,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며 “당 소속 의원으로 진실을 규명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기 때문에 오늘 부로 한나라당을 떠나겠다”고 말했다.
그는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러움도 없으며, 의혹이 규명된 뒤 다시 돌아오겠다”며 “공인(본인)의 도덕성을 회복 불가능한 상황으로 훼손시킨 당 지도부는 정치적·법적으로 책임을 반드시 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성낙합 인척이 지난해 12월 1월 2차례 걸쳐 내게 주려 시도했던 21만달러를 전혀 받은 사실이 없으며, 다만 연말 선물로 보대온 양주·반코트와 넥타이는 즉시 돌려주지 못했다”고 인정하면서도 “손도 대지 않고 보관하다 공천 심사를 시작한 시점에서 당 클린센터에 맡겼다”고 해명했다.
김덕룡 의원 “금품수수 의혹 책임지겠다…조만간 거취 결정할 것”
김덕룡 의원도 이어서 신상발언에 나섰다. 김 의원은 “지방선거를 앞둔 중요한 시기에 공천문제와 관련해 잡음을 일으키게 돼 죄송스럽고 부끄럽게 생각한다. 모든 것이 내 불찰이고 부덕의 소치”라며 의원들에게 정중한 사과를 했다.
그는 “변명이 아니라 분명한 것은 금전문제와 공천문제는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았다”며 “서울시 공심위 참석해서도 나는 공천 심사위의 결정을 존중하고 따르겠다고 했으며, (금품을 제공한) 문제의 인물을 공천시키라는 압력을 넣지도 않았다”며 금품수수와 ‘공천비리’ 의혹을 부인했다.
김 의원의 태도는 박 의원과 달랐다. 김 의원은 “경위야 어쨌든 모든 책임은 내게 있으며, 책임을 전가할 생각 전혀 없고 끝까지 모든 책임을 지겠다”며 “짧지 않은 정치생활을 하며 자존심과 명예를 생명같이 생각했는데, 이렇게 하직인사를 하게 돼 정말 참담한 심정”이라고 검찰수사에 성실히 임하겠다는 뜻을 피력했다.
그는 직접적인 ‘탈당’ 의사를 밝히지 않았지만 “당에서 축출하는 것까지도 달게 받겠다”며 “스스로 당적, 의원직 문제를 포함한 정치적인 거취 등은 조속한 시일 내에 정리하려 한다”며 가능성을 열어뒀다.
김덕룡 의원 발언 뒤 한나라당 의원 모두 기립, 일부 의원은 ‘눈물’
박 의원과 김 의원의 신상발언을 듣는 의원들의 표정은 ‘침통’ 그 자체였다. 하지만 두 의원의 신상발언 뒤 의원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박 의원의 발언이 끝난 뒤 김용갑·김태환·권영세 등 몇몇 의원이 일어나 악수를 청한 반면 김 의원의 발언 뒤에는 박근혜 대표와 이재오 원내대표를 포함한 대부분의 의원들이 기립했다. 의원들은 김 의원이 의총장을 떠나는 동안 인사를 하거나 악수를 청했다. 박희태 부의장은 문 앞까지 따라나왔고 김무성 전 총장은 김 의원이 차를 타는 곳까지 배웅하며 격려했다. 안명옥·최구식·이혜훈 의원 등은 인사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허태열 사무총장 “국민과의 약속 지키기 위해 검찰고발…당 결정 이해해달라”
한편, 두 의원의 신상발언이 끝난 뒤 허태열 사무총장이 나와 당의 입장과 사건의 경위를 설명했다. 허 총장은 “그동안 감찰단에서 두 사건 관련해 다각적이고 면밀한 조사 진행해 왔지만, 보도된 대로 양 당사자의 주장과 해명이 엇갈리고 있다”며 “특히 박성범 의원과 관련해서는 이 문제를 제기한 성낙합 전 중구청장이 당과의 부당한 거래를 요구해 와 검찰수사를 의뢰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그는 “당이 검찰수사 의뢰 결정을 한 것은 당 대표가 지방선거와 관련해 누차 개혁과 클린 공천을 약속했고, 과거 차떼기 오명에서 벗어나야 할 나름의 절박성이 있었기 때문에 이 방법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데 최고위원과 중진의 의견이 모아졌다”며 “국민과의 약속을 지킨다는 원칙 하에서 이 문제를 접근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이해해 달라”며 의원들의 양해를 구했다.
<한겨레> 성연철 기자, 온라인뉴스팀 sychee@hani.co.kr
박성범 의원 “중상모략 믿고 당이 고발한 것 이해못해…탈당하겠다”
서울지역 기초단체장 공천 비리 의혹과 관련해 박성범 의원이 1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 탈당 의사를 밝히고 있다.(서울=연합뉴스)
서울지역 기초단체장 공천 비리 의혹과 관련해 김덕룡 의원이 1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 동료 의원들에게 고개숙여 사과하고 있다. 2006.4.13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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