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신안군 증도에서 지난 4~6일 열린 제1회 섬·갯벌 올림픽 축제에서 청소년들이 개펄의 질감을 느끼며 생물을 관찰하는 생태체험 활동을 하고 있다.
증도면 제공
무분별한 체험행사 서식생물에 치명타
3곳 조사해보니 갯지렁이 등 개체수 급감
휴식년제 실시·출입시기 제한 고려해야
3곳 조사해보니 갯지렁이 등 개체수 급감
휴식년제 실시·출입시기 제한 고려해야
개펄을 연구하는 생물학자들에게 ‘크다’란 말은 길이가 1㎜를 넘는다는 뜻이다. 이를 ‘대형 저서동물’로 부른다. 맨눈으로 겨우 보이는 0.2㎜ 길이의 동물이 ‘중형’으로 분류된다. 개펄을 상징하는 조개나 게는 예외적인 초대형 생물인 셈이다. 그만큼 개펄에는 작은 생물이 많다. 이들은 작은 교란에도 큰 타격을 입는다.
개펄체험이 큰 인기다. 늘어난 주 5일제 근무를 겨냥해 서·남해 지자체들이 앞다퉈 개펄체험을 포함한 지역축제를 열고 있고, 시민단체들도 환경교육 프로그램에 개펄체험을 빠뜨리지 않는다. 지난해 개펄체험 행사는 153차례 열렸고 4만6천여명이 참가했다. 그러나 비공식적인 개펄체험 인구를 모두 합치면 연간 약 10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상당수 개펄체험은 갈쿠리(갈고리)나 호미로 생물을 잡거나 펄에서 맘껏 뛰노는 내용으로 채워진다. 이런 활동이 개펄생태계에 끼치는 영향은 예상보다 훨씬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립수산과학원 갯벌연구센터가 지난해 8~12월 전북 부안군 모항, 충남 서천군 선도리, 충남 보령군 남곡동 등 세 곳을 대상으로 개펄체험의 영향을 조사했다. 모항 개펄에서는 지난해 8월6일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개펄올림픽이 열렸다. 이틀 동안 개펄에서 축구·씨름·줄다리기 등이 벌어진 뒤 일반인의 출입을 통제했다. 행사 하루 뒤 대형 저서동물의 14.8%가 사라졌다. 이보다 작은 갯지렁이류는 12.5%만 남는 타격을 입었다. 놀랍게도 외부 교란이 사라졌는데도 대형 저서동물은 계속 줄어들어 한 달 뒤 서식밀도가 51.1%로 떨어졌다.
연구책임자인 갯벌연구센터 고병설 박사는 “예상치 못한 일”이라며 “밟힐 때 상처를 입은 개체들이 서서히 죽어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사람 발자국은 밀물과 함께 지워지지만 생명체들은 깊고 오래가는 상처를 입는다.
개펄 속에 숨구멍을 뚫고 살아가는 작은 생물들은 개펄이 밟혀 다져지면 치명타를 입는다. 이곳에서 갯지렁이류의 밀도는 한 달 뒤 60%, 두 달 뒤 36.4%까지 떨어졌다. 대형 저서동물이 처음의 80% 수준으로 회복되는 데는 석달이 걸렸다. 이동성이 적은 개펄생물들이 복원되려면 바닷물을 타고 옮겨온 유생이 자랄 때까지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선도리 개펄은 연중 일반인에게 개방되는 곳이다. 연구팀은 이곳에서 초등학생들이 실제 체험학습장으로 이용한 영향을 조사했다. 초등학생 35명이 30분 동안 채집한 저서동물은 평균 7.5개체, 32g이었다. 어민들은 어장에서 바지락 등 목표로 하는 생물 외에는 거들떠보지 않지만, 학생들은 보이는 대로 다 잡아냈다. 눈길을 끄는 것은, 학생들이 관찰만 한 구역에서 저서생물 훼손율이 20%였던 데 비해 채집까지 한 곳에서의 훼손율은 그 배 이상인 45%로 나타났다는 점이다.
1년에 한두번 대규모 체험 행사를 치른 뒤 극기훈련 등 연중 행사가 간헐적으로 이어진 남곡동 개펄은 교란을 받지 않은 주변에 비해 서식밀도가 56%로 떨어진 상태를 유지한 채 회복되지 않았다.
고 박사는 “저서생물이 알을 낳거나 물속의 유생이 개펄에 정착하는 시기에 훼손이 이뤄지면 생물 생활사의 연결고리가 끊어지는 치명타를 입는다”며 “구간을 정해 개펄 휴식년제를 시행하고 생물의 생활사에 맞춰 출입 허용시기도 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백용해 한국갯벌생태연구소 소장은 “개펄에 사는 갯지렁이 같은 작은 동물들은 몸을 보호할 별다른 장치가 없어 개펄을 밟는 것 자체가 심각한 위협”이라며 “개펄은 노는 곳이란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개펄에 서식하는 각종 갯지렁이들.
목포환경운동연합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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