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팔원숭이 세 그룹이 우리의 존재를 받아들이고 도망가지 않았다. 하지만 절대로 가만히 있는 법이 없어서 밥을 먹다가도 달려야 할 때가 있다. 김산하 제공
[토요판] 긴팔원숭이박사 김산하의 탐험
<3> 정글 속의 본격 관찰
<3> 정글 속의 본격 관찰
이날은 A-D그룹의 힘겨루기
여느 때처럼 수컷이 앞장서
서로 쫓고 쫓기는 추격전
암컷들은 뒤에서 소릴 지른다
어? A그룹 수컷이 시큰둥하네
결국 암컷한테 한 대 맞는다 원숭이는 도망가지 않았다
그들이 앉은 나무 아래 서서
잡담을 해도 예사로 여기고
태연히 먹고, 자고, 놀았다
세 그룹 다 익숙해졌다
온종일 따라다녀도 되었다 어릴 적부터 나는 당돌한 인생철학이 하나 있었다. 미래에 대한 아무런 계획도 세우지 말자. 왜 먼 미래 때문에 소중한 현재를 낭비하나? 그냥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살피고, 주변 싹 무시하고 그것만 즐기자. 학원에서 몇 년 앞을 예습하던 징글징글한 동년배들에 대한 반감의 표시였을까? 뭐가 됐든 나는 동물이 좋고, 좋은 게 당연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도 당연하다는 생각이었다. 적성검사의 장래 희망을 묻는 칸에는 늘 동물학자라고 서명하듯이 적어내곤 했다. 그리고는 마음 내키는 대로 살았다. 그러던 내가 정신 차려 보니 밀림 속에서 야생동물을 두 눈으로 직접 바라보고 있었다. 말 그대로 나와 우리 팀이 흘린 피와 땀으로 일궈낸 쾌거였다. 긴팔원숭이는 이제 더는 도망가지 않았다. 그들이 앉아 있는 나무 바로 아래에 서서 쳐다보고 잡담을 즐겨도 그저 예사로 여기고 태연히 먹고, 자고, 놀았다. 모두 세 그룹이 우리의 존재에 익숙해져서 온종일 따라다니는 것이 가능했다. 어른과 아이를 포함해서 그룹당 3~4마리 정도의 긴팔원숭이가 있었는데, 이들을 대상으로 한 세부적인 연구계획이 이내 세워졌다. 밥 먹다 말고 쫓아가려니 괴로워라 미래에 대한 무계획을 신조로 한평생 동물을 화두로 살아온 나에게도 진짜 야생동물을 매일 본다는 사실은 이색적인 일이었다. 동시에 견딜 수 없이 낭만적이었다. 오지 탐험가를 선조로 둔 서양 사람들과는 달리, 내가 속한 계보에는 이런 전례가 눈에 띄지 않았다. 어쩌다가 방송촬영팀이나 전문여행가가 남 잘 안 가는 데를 잠시 골라 다녀와서는, 새내기에게 뽐내는 선배처럼 무용담을 늘어놓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편 동물의 가장 은밀한 사생활까지 고해상도로 보여주는 동영상을 접하기는 너무나 쉬운 일이 되어버렸다. 지구 끝까지 침투한 해외 제작진의 눈을 통해 누구나 안방에서 손쉬운 여행을 즐긴다. 우리 중엔 가본 사람도, 겪어본 이도 없지만, 아무나 다 아는 얘기인 거다. 하지만 똑같은 운동경기라 해도 우리나라 선수가 순위권에 들 때 유난히 열광하는 것처럼, ‘우리 중 누군가’가 할 때는 뭔가가 다르다. 때로는 우리라는 이 인위적인 집합이 우리의 눈을 가리고 한계를 짓기도 하지만, 반대로 한 명 때문에 전체가 변하기도 한다. 밀림에 사는 동물을 연구하는 삶이 여태껏 우리 중에 없었다면, 나로 말미암아 이제 생기면 되는 것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됐지만 매일매일이 만만치 않았다. 우선 긴팔원숭이들은 절대로 가만히 있는 법이 없었다. 어찌나 다니길 좋아하는지 쉴 틈이 없었다. 이 나무에서 한 입 베어 먹고선 곧 저 나무로 옮겨가고, 별 뚜렷한 이유도 없이 영역을 횡단하기도 했다. 가장 괴로운 건 밥 먹다 말고 쫓아가야 할 때였다. 녀석들이 쉬는 분위기인지 잘 살펴서 상당히 확신한 다음에만 도시락 뚜껑을 열지만, 그래도 느닷없이 어디론가 출발하는 바람에 입에 밥을 잔뜩 물고서 달려야 할 때가 있다. 또 숲에서 늘 나를 반기는 벌레는 나에겐 별로 반갑지 않았다. 끊임없이 웽웽 소리가 귓전에 맴돌고, 모기는 물론 피를 빨아먹는 쇠파리와 눈에 들어가려고 애쓰는 날파리들도 우리를 괴롭혔다. 그래도 송충이에 비하면 양반이었다. 송충이 털에 피부가 한번 잘못 닿으면 엄청난 가려움에 거의 경기가 날 정도였다. 더위와 습기는 언급할 필요도 없으리라. 아무리 힘들어도 난 좋았다. 내가 태어나서 해봤던 가장 힘든 일이었지만 그토록 오래 꿈꾸던 곳에 이렇게 버젓이 와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 된 거였다. 꿈의 행선지는 원래 살던 생활을 그대로 옮겨다 놓을 수 없는 곳이라야 한다. 집에서 이것저것 끌고 왔다가는 그곳의 아름다움을 해치고 가치를 모독하는 격이 되는 곳이다. 여기에는 몰개성의 도회지에서나 어울릴 법한 옷가지나 머리색이 경관을 망치는 오염물질이 되고 전화와 인터넷의 끈이 싹둑 잘린 시원한 자유가 있다. 어릴 때 책에서 봤던 그대로의 모습이 눈앞에 있다. 이곳이 실제로 그랬다. 마을이 끝나는 곳에서 정말로 숲이 시작되고 숲 안에는 정말로 동물이 산다. 어디부터가 신비로운 밀림인지 말 그대로 선을 그을 수 있을 정도이다. 바탕화면의 네모 감옥에 갇힌 이미지가 얼마나 가짜인지 폭로하듯이 알려주는 그런 실체가 현현한다. 또 꿈의 행선지는 그 꿈이 실현되었을 때 실망을 안겨주지 않는다. 오히려 벌어지고 있는 순간에도 여전히 꿈만 같다. 꿈이면서, 꿈만 같고, 또 생시인 곳이다. ‘루저’ 발언의 영장류적인 전통 지금까지는 긴팔원숭이가 연구에 협조하도록 훈련하는 과정이었다면, 이제부터는 실제 자료를 수집하는 본게임에 들어가는 단계였다. 여기서 자료를 수집한다는 것은 간단히 말하면 긴팔원숭이의 행동을 관찰하고 적는다는 뜻이다. 보이는 대로 다 모으는 것이 아니다. 과학 연구는 미리 정한 어떤 틀에 따라 대상을 최대한 객관적이고 체계적으로 기록함으로써 이루어진다. 가령 밥 먹기, 밥 찾기, 움직이기, 쉬기, 털 고르기, 다른 개체와 싸우기 등의 항목을 정해놓고 일정한 시간 간격으로 이들이 이 중에서 무슨 행동을 하는지 체크하는 것이다. 물론 예외적으로 벌어지는 특이 사건은 닥치는 대로 기록한다. 짝짓기나 포식자의 습격과 같은 ‘비상사태’는 사건 개요를 가능한 한 상세히 기록한다. 그런데 애초에 왜 굳이 영장류를 연구하는가?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동물들 중에 유독 이 작은 무리에 집중할 만한 이유가 대체 무엇인가? 사실 어떤 특정 종의 삶을 콕 집어서 들여다본다는 것 자체가 일반적인 시각으로 봤을 때 이미 ‘요상한’ 일이다. 영장류의 경우는 물론 인간이 그 그룹에 속해 있다는 것이 우리가 관심을 갖는 가장 큰 이유이다. 말하자면 인간 중심의 시각으로 봤을 때 이보다 더 흥미롭고 의미있는 동물은 없다. 인간이라는 생물이 속한 전체적인 ‘맥락’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늘에서 똑 떨어진 것이 아니라, 여러 친척을 둔 ‘대가족’의 일원이다. 그래서 그 집안의 특성과 분위기를 두루 살펴봄으로써 우리가 과연 어떤 점이 특이하고 평범한지 알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얘기는 예를 들면 쉬워진다. 언제인가 방송에 출연한 한 여대생이 키가 작은 남자를 ‘루저’라 부른 것이 사회적 이슈가 된 적이 있다. 이 학생은 이 일로 말미암아 집중포화를 받았지만, 여자들이 키가 큰 남자를 선호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동물의 세계에서 수컷의 덩치가 암컷보다 꼭 크지 않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 아니다. 대체적으로 수컷 한 마리가 여러 마리의 암컷을 거느리는 종인 경우 수컷의 몸집이 암컷보다 크다. 생물학 용어로 ‘희귀자원’인 암컷을 최대한 많이 확보하려면 다른 수컷과의 경쟁에서 이겨야 하고, 센 힘은 보통 큰 덩치에서 나온다. 암수가 한 마리씩만 짝지어 사는 일부일처제에서는 이런 일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 즉, 몸집의 크기는 번식체계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그 좋은 예가 바로 내가 연구하는 긴팔원숭이이다. 예외는 있지만 대부분 일부일처제로 사는 이들은 암수의 몸집이 비슷하다. 같은 유인원이지만 긴팔원숭이와 우리 사이에는 이런 큰 차이점이 있는 것이다. 사실 인간은 엄격히 일부일처제를 따르는 동물이 아니다. 약한 일부다처제에 가깝다. 오늘날 우리는 남자와 여자 각각 한 명씩 만나 부부가 되지만, 원시인간은 남자 한 명이 한 명 이상의 여자와 짝을 지어 사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침팬지, 고릴라, 오랑우탄은 이런 점에서 우리와 유사하다. 작은 키를 패배자로 단정한 것은 좋지 않지만, 자신보다 큰 남성을 선호하는 여성의 취향은 따지고 보면 영장류학적 ‘전통’에 따른 것이다. 다만 그녀도 누군가의 두세 번째 부인이 되는 걸 원하진 않겠지만 말이다. 긴팔원숭이를 보며 문뜩 그 여대생의 말이 생각난 것이다. 암수의 몸 크기라도 좀 확연하게 다르면 구별하기 쉬울 텐데, 혀를 차고 있던 참이다. 온종일 밀림에서 보내다 보면 이런저런 잡생각을 찬찬히 곱씹게 된다. 특히 이 녀석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가 나에겐 명상의 시간이다. 15분마다 행동을 기록하는 노트에도 휴식, 휴식, 휴식이 적힌다. 정말 어떤 때는 팔자 좋게 이리저리 뒹구는 모습이 부럽기 짝이 없다. 그것도 저렇게 경치 좋은 높은 곳에서! 가끔은 우리랑 흡사하게 다리를 꼬고 앉아서는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우리를 내려다보기도 한다. 이럴 때는 조금 미운 마음이 드는 것이 나의 솔직한 심정이다. 하지만 오늘은 예기치 않게 긴팔원숭이 부부의 사생활 한켠을 본 것이 생각의 단초를 제공하였다. 지친 몸으로 맞이하는 대지의 환희 내가 연구하는 세 그룹 각각의 영역이 서로 겹치는 지역이 하나 있다. 강을 끼고 있는 A그룹, 논 쪽을 등지고 있는 B그룹, 그리고 가파른 산등성이를 차지한 D그룹 모두의 영역 경계가 맞닿은 곳이다(C그룹은 지형이 너무 어려워서 중도에 연구를 포기했다). 대부분 이 세 그룹 중 둘 간에 싸움이 벌어지지만, 가끔은 세 쌍 모두가 뛰어드는 삼파전도 벌어진다. 이날은 A그룹과 D그룹 사이의 힘겨루기. 여느 때처럼 수컷들이 앞장서 서로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벌이고, 암컷들은 뒤에서 소리를 지르는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것이 긴팔원숭이가 싸우는 방식이다. 남자들이 벌이는 경기를 관전하며 소리로 응원하는 우리네 치어리더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오늘따라 A그룹의 수컷이 싸움에 별 흥미가 없어 보인다. 거의 예의상 한두번 쫓아가는 무성의한 시늉을 보이더니 뒤에 있는 과일나무에 가서 밥을 먹고 있는 게 아닌가? 우리에게 아직 훈련이 덜 되었을 때에도 서로 다투는 데 정신이 팔려 도망도 안 가던 긴팔원숭이로서는 상당히 이례적인 현상이다. 암컷은 여전히 큰 소리를 지르며 자신의 의무를 다하고 있었다. 하지만 참는 데도 한계가 있는 모양이다. 남자 구실 못하는 영감을 더는 못 참겠는지, 암컷은 고함을 멈추더니 냅다 수컷에게 달려와 머리를 거칠게 후려쳤다! 기세로 봐서는 몇 대 더 때릴 것 같았지만 수컷이 얼른 몸을 피하는 바람에 더 이상의 피해는 일어나지 않았다. 태연히 입에 무화과를 쑤셔 넣다가 얻어맞은 수컷은 여간 스타일을 구긴 게 아니었다. 음, 저 종에서 남자의 위상은 저런 건가. 오늘 내 생각의 사슬은 여기서 출발했던 모양이다. 긴 하루를 녹색 세상 속에 갇혀 보내다가 집으로 돌아올 때면 늘 기다려지는 광경이 하나 있다. 밀림이 끝나고 인간 세상이 시작되는 경계에 다다르면 바로 그제야 탁 트인 시원한 공간이 펼쳐진다. 잠시 숲 속에 머무는 사람은 이 느낌을 알지 못한다. 적어도 몇 개월, 아니 몇 년 동안 우거진 수풀을 직장으로 삼아 출퇴근하다 보면 무성한 자연이 편안해지는 만큼, 시야가 바로 앞에서 끝나지 않고 저 멀리까지 미치는 말 그대로 공(空)간을 갈구하게 된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고생으로 지친 몸을 터벅터벅 끌고 나와 맞이하는 이 대지의 환희는 사막에서 만난 오아시스처럼 감격스럽다. 아이들이 뛰놀고 여인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뒷동산의 동그란 봉우리에 걸린 저녁노을이 부드럽게 녹아 흐르고 있다. 오늘 하루 수고했다. 열심히 일한 팀원들에게 인사를 건넨다. 그리고 나도 수고했다. 혼잣말로, 한국말로, 속삭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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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때처럼 수컷이 앞장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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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컷들은 뒤에서 소릴 지른다
어? A그룹 수컷이 시큰둥하네
결국 암컷한테 한 대 맞는다 원숭이는 도망가지 않았다
그들이 앉은 나무 아래 서서
잡담을 해도 예사로 여기고
태연히 먹고, 자고, 놀았다
세 그룹 다 익숙해졌다
온종일 따라다녀도 되었다 어릴 적부터 나는 당돌한 인생철학이 하나 있었다. 미래에 대한 아무런 계획도 세우지 말자. 왜 먼 미래 때문에 소중한 현재를 낭비하나? 그냥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살피고, 주변 싹 무시하고 그것만 즐기자. 학원에서 몇 년 앞을 예습하던 징글징글한 동년배들에 대한 반감의 표시였을까? 뭐가 됐든 나는 동물이 좋고, 좋은 게 당연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도 당연하다는 생각이었다. 적성검사의 장래 희망을 묻는 칸에는 늘 동물학자라고 서명하듯이 적어내곤 했다. 그리고는 마음 내키는 대로 살았다. 그러던 내가 정신 차려 보니 밀림 속에서 야생동물을 두 눈으로 직접 바라보고 있었다. 말 그대로 나와 우리 팀이 흘린 피와 땀으로 일궈낸 쾌거였다. 긴팔원숭이는 이제 더는 도망가지 않았다. 그들이 앉아 있는 나무 바로 아래에 서서 쳐다보고 잡담을 즐겨도 그저 예사로 여기고 태연히 먹고, 자고, 놀았다. 모두 세 그룹이 우리의 존재에 익숙해져서 온종일 따라다니는 것이 가능했다. 어른과 아이를 포함해서 그룹당 3~4마리 정도의 긴팔원숭이가 있었는데, 이들을 대상으로 한 세부적인 연구계획이 이내 세워졌다. 밥 먹다 말고 쫓아가려니 괴로워라 미래에 대한 무계획을 신조로 한평생 동물을 화두로 살아온 나에게도 진짜 야생동물을 매일 본다는 사실은 이색적인 일이었다. 동시에 견딜 수 없이 낭만적이었다. 오지 탐험가를 선조로 둔 서양 사람들과는 달리, 내가 속한 계보에는 이런 전례가 눈에 띄지 않았다. 어쩌다가 방송촬영팀이나 전문여행가가 남 잘 안 가는 데를 잠시 골라 다녀와서는, 새내기에게 뽐내는 선배처럼 무용담을 늘어놓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편 동물의 가장 은밀한 사생활까지 고해상도로 보여주는 동영상을 접하기는 너무나 쉬운 일이 되어버렸다. 지구 끝까지 침투한 해외 제작진의 눈을 통해 누구나 안방에서 손쉬운 여행을 즐긴다. 우리 중엔 가본 사람도, 겪어본 이도 없지만, 아무나 다 아는 얘기인 거다. 하지만 똑같은 운동경기라 해도 우리나라 선수가 순위권에 들 때 유난히 열광하는 것처럼, ‘우리 중 누군가’가 할 때는 뭔가가 다르다. 때로는 우리라는 이 인위적인 집합이 우리의 눈을 가리고 한계를 짓기도 하지만, 반대로 한 명 때문에 전체가 변하기도 한다. 밀림에 사는 동물을 연구하는 삶이 여태껏 우리 중에 없었다면, 나로 말미암아 이제 생기면 되는 것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됐지만 매일매일이 만만치 않았다. 우선 긴팔원숭이들은 절대로 가만히 있는 법이 없었다. 어찌나 다니길 좋아하는지 쉴 틈이 없었다. 이 나무에서 한 입 베어 먹고선 곧 저 나무로 옮겨가고, 별 뚜렷한 이유도 없이 영역을 횡단하기도 했다. 가장 괴로운 건 밥 먹다 말고 쫓아가야 할 때였다. 녀석들이 쉬는 분위기인지 잘 살펴서 상당히 확신한 다음에만 도시락 뚜껑을 열지만, 그래도 느닷없이 어디론가 출발하는 바람에 입에 밥을 잔뜩 물고서 달려야 할 때가 있다. 또 숲에서 늘 나를 반기는 벌레는 나에겐 별로 반갑지 않았다. 끊임없이 웽웽 소리가 귓전에 맴돌고, 모기는 물론 피를 빨아먹는 쇠파리와 눈에 들어가려고 애쓰는 날파리들도 우리를 괴롭혔다. 그래도 송충이에 비하면 양반이었다. 송충이 털에 피부가 한번 잘못 닿으면 엄청난 가려움에 거의 경기가 날 정도였다. 더위와 습기는 언급할 필요도 없으리라. 아무리 힘들어도 난 좋았다. 내가 태어나서 해봤던 가장 힘든 일이었지만 그토록 오래 꿈꾸던 곳에 이렇게 버젓이 와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 된 거였다. 꿈의 행선지는 원래 살던 생활을 그대로 옮겨다 놓을 수 없는 곳이라야 한다. 집에서 이것저것 끌고 왔다가는 그곳의 아름다움을 해치고 가치를 모독하는 격이 되는 곳이다. 여기에는 몰개성의 도회지에서나 어울릴 법한 옷가지나 머리색이 경관을 망치는 오염물질이 되고 전화와 인터넷의 끈이 싹둑 잘린 시원한 자유가 있다. 어릴 때 책에서 봤던 그대로의 모습이 눈앞에 있다. 이곳이 실제로 그랬다. 마을이 끝나는 곳에서 정말로 숲이 시작되고 숲 안에는 정말로 동물이 산다. 어디부터가 신비로운 밀림인지 말 그대로 선을 그을 수 있을 정도이다. 바탕화면의 네모 감옥에 갇힌 이미지가 얼마나 가짜인지 폭로하듯이 알려주는 그런 실체가 현현한다. 또 꿈의 행선지는 그 꿈이 실현되었을 때 실망을 안겨주지 않는다. 오히려 벌어지고 있는 순간에도 여전히 꿈만 같다. 꿈이면서, 꿈만 같고, 또 생시인 곳이다. ‘루저’ 발언의 영장류적인 전통 지금까지는 긴팔원숭이가 연구에 협조하도록 훈련하는 과정이었다면, 이제부터는 실제 자료를 수집하는 본게임에 들어가는 단계였다. 여기서 자료를 수집한다는 것은 간단히 말하면 긴팔원숭이의 행동을 관찰하고 적는다는 뜻이다. 보이는 대로 다 모으는 것이 아니다. 과학 연구는 미리 정한 어떤 틀에 따라 대상을 최대한 객관적이고 체계적으로 기록함으로써 이루어진다. 가령 밥 먹기, 밥 찾기, 움직이기, 쉬기, 털 고르기, 다른 개체와 싸우기 등의 항목을 정해놓고 일정한 시간 간격으로 이들이 이 중에서 무슨 행동을 하는지 체크하는 것이다. 물론 예외적으로 벌어지는 특이 사건은 닥치는 대로 기록한다. 짝짓기나 포식자의 습격과 같은 ‘비상사태’는 사건 개요를 가능한 한 상세히 기록한다. 그런데 애초에 왜 굳이 영장류를 연구하는가?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동물들 중에 유독 이 작은 무리에 집중할 만한 이유가 대체 무엇인가? 사실 어떤 특정 종의 삶을 콕 집어서 들여다본다는 것 자체가 일반적인 시각으로 봤을 때 이미 ‘요상한’ 일이다. 영장류의 경우는 물론 인간이 그 그룹에 속해 있다는 것이 우리가 관심을 갖는 가장 큰 이유이다. 말하자면 인간 중심의 시각으로 봤을 때 이보다 더 흥미롭고 의미있는 동물은 없다. 인간이라는 생물이 속한 전체적인 ‘맥락’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늘에서 똑 떨어진 것이 아니라, 여러 친척을 둔 ‘대가족’의 일원이다. 그래서 그 집안의 특성과 분위기를 두루 살펴봄으로써 우리가 과연 어떤 점이 특이하고 평범한지 알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얘기는 예를 들면 쉬워진다. 언제인가 방송에 출연한 한 여대생이 키가 작은 남자를 ‘루저’라 부른 것이 사회적 이슈가 된 적이 있다. 이 학생은 이 일로 말미암아 집중포화를 받았지만, 여자들이 키가 큰 남자를 선호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동물의 세계에서 수컷의 덩치가 암컷보다 꼭 크지 않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 아니다. 대체적으로 수컷 한 마리가 여러 마리의 암컷을 거느리는 종인 경우 수컷의 몸집이 암컷보다 크다. 생물학 용어로 ‘희귀자원’인 암컷을 최대한 많이 확보하려면 다른 수컷과의 경쟁에서 이겨야 하고, 센 힘은 보통 큰 덩치에서 나온다. 암수가 한 마리씩만 짝지어 사는 일부일처제에서는 이런 일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 즉, 몸집의 크기는 번식체계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그 좋은 예가 바로 내가 연구하는 긴팔원숭이이다. 예외는 있지만 대부분 일부일처제로 사는 이들은 암수의 몸집이 비슷하다. 같은 유인원이지만 긴팔원숭이와 우리 사이에는 이런 큰 차이점이 있는 것이다. 사실 인간은 엄격히 일부일처제를 따르는 동물이 아니다. 약한 일부다처제에 가깝다. 오늘날 우리는 남자와 여자 각각 한 명씩 만나 부부가 되지만, 원시인간은 남자 한 명이 한 명 이상의 여자와 짝을 지어 사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침팬지, 고릴라, 오랑우탄은 이런 점에서 우리와 유사하다. 작은 키를 패배자로 단정한 것은 좋지 않지만, 자신보다 큰 남성을 선호하는 여성의 취향은 따지고 보면 영장류학적 ‘전통’에 따른 것이다. 다만 그녀도 누군가의 두세 번째 부인이 되는 걸 원하진 않겠지만 말이다. 긴팔원숭이를 보며 문뜩 그 여대생의 말이 생각난 것이다. 암수의 몸 크기라도 좀 확연하게 다르면 구별하기 쉬울 텐데, 혀를 차고 있던 참이다. 온종일 밀림에서 보내다 보면 이런저런 잡생각을 찬찬히 곱씹게 된다. 특히 이 녀석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가 나에겐 명상의 시간이다. 15분마다 행동을 기록하는 노트에도 휴식, 휴식, 휴식이 적힌다. 정말 어떤 때는 팔자 좋게 이리저리 뒹구는 모습이 부럽기 짝이 없다. 그것도 저렇게 경치 좋은 높은 곳에서! 가끔은 우리랑 흡사하게 다리를 꼬고 앉아서는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우리를 내려다보기도 한다. 이럴 때는 조금 미운 마음이 드는 것이 나의 솔직한 심정이다. 하지만 오늘은 예기치 않게 긴팔원숭이 부부의 사생활 한켠을 본 것이 생각의 단초를 제공하였다. 지친 몸으로 맞이하는 대지의 환희 내가 연구하는 세 그룹 각각의 영역이 서로 겹치는 지역이 하나 있다. 강을 끼고 있는 A그룹, 논 쪽을 등지고 있는 B그룹, 그리고 가파른 산등성이를 차지한 D그룹 모두의 영역 경계가 맞닿은 곳이다(C그룹은 지형이 너무 어려워서 중도에 연구를 포기했다). 대부분 이 세 그룹 중 둘 간에 싸움이 벌어지지만, 가끔은 세 쌍 모두가 뛰어드는 삼파전도 벌어진다. 이날은 A그룹과 D그룹 사이의 힘겨루기. 여느 때처럼 수컷들이 앞장서 서로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벌이고, 암컷들은 뒤에서 소리를 지르는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것이 긴팔원숭이가 싸우는 방식이다. 남자들이 벌이는 경기를 관전하며 소리로 응원하는 우리네 치어리더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오늘따라 A그룹의 수컷이 싸움에 별 흥미가 없어 보인다. 거의 예의상 한두번 쫓아가는 무성의한 시늉을 보이더니 뒤에 있는 과일나무에 가서 밥을 먹고 있는 게 아닌가? 우리에게 아직 훈련이 덜 되었을 때에도 서로 다투는 데 정신이 팔려 도망도 안 가던 긴팔원숭이로서는 상당히 이례적인 현상이다. 암컷은 여전히 큰 소리를 지르며 자신의 의무를 다하고 있었다. 하지만 참는 데도 한계가 있는 모양이다. 남자 구실 못하는 영감을 더는 못 참겠는지, 암컷은 고함을 멈추더니 냅다 수컷에게 달려와 머리를 거칠게 후려쳤다! 기세로 봐서는 몇 대 더 때릴 것 같았지만 수컷이 얼른 몸을 피하는 바람에 더 이상의 피해는 일어나지 않았다. 태연히 입에 무화과를 쑤셔 넣다가 얻어맞은 수컷은 여간 스타일을 구긴 게 아니었다. 음, 저 종에서 남자의 위상은 저런 건가. 오늘 내 생각의 사슬은 여기서 출발했던 모양이다. 긴 하루를 녹색 세상 속에 갇혀 보내다가 집으로 돌아올 때면 늘 기다려지는 광경이 하나 있다. 밀림이 끝나고 인간 세상이 시작되는 경계에 다다르면 바로 그제야 탁 트인 시원한 공간이 펼쳐진다. 잠시 숲 속에 머무는 사람은 이 느낌을 알지 못한다. 적어도 몇 개월, 아니 몇 년 동안 우거진 수풀을 직장으로 삼아 출퇴근하다 보면 무성한 자연이 편안해지는 만큼, 시야가 바로 앞에서 끝나지 않고 저 멀리까지 미치는 말 그대로 공(空)간을 갈구하게 된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고생으로 지친 몸을 터벅터벅 끌고 나와 맞이하는 이 대지의 환희는 사막에서 만난 오아시스처럼 감격스럽다. 아이들이 뛰놀고 여인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뒷동산의 동그란 봉우리에 걸린 저녁노을이 부드럽게 녹아 흐르고 있다. 오늘 하루 수고했다. 열심히 일한 팀원들에게 인사를 건넨다. 그리고 나도 수고했다. 혼잣말로, 한국말로, 속삭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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