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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꽃을 뜯어먹던 처녀, 갑자기 메뚜기를 낚아채…

등록 2013-07-12 19:34수정 2013-07-14 10:27

열대우림 안에서 올려다보는 하늘은 초록색이다. 짙은 초록 안에 숨어든 생명들이 먹을 것을 찾아 나무 위를, 땅 밑을 헤맨다. 긴팔원숭이와 함께 밥을 먹으며 나를 둘러싼 시간과 공간, 지구에 대해 생각한다. 김산하 제공
열대우림 안에서 올려다보는 하늘은 초록색이다. 짙은 초록 안에 숨어든 생명들이 먹을 것을 찾아 나무 위를, 땅 밑을 헤맨다. 긴팔원숭이와 함께 밥을 먹으며 나를 둘러싼 시간과 공간, 지구에 대해 생각한다. 김산하 제공
[토요판] 긴팔원숭이박사 김산하의 탐험
<4> 정글 속의 밥
A그룹의 아리따운 아리스가
잡은 메뚜기는 거대한 놈
다리부터 하나씩 입에 넣더니
그다음에는 머리를 와지끈!
고단백 영양분 벌레만찬 뒤
다시 꽃무덤 식사로 돌아간다

열대우림엔 먹을 게 넘친다고?
팔 뻗어 마구 따먹으면 되니
과일이 주식인 긴팔원숭이는
먹고살기 편하지 않겠냐고?
실상은 이와 전혀 딴판이다

야생이 숨소리를 고르는 열대의 어느 밤, 나는 갑자기 눈을 떴다. 어둠을 더듬어 시계를 찾는다. 하루 일과가 시작되는 새벽 5시보다도 한참 이른 시각이다. 무엇이 나를 깨웠을까? 집 안은 죽은 듯이 조용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불편한 마음에 살며시 커튼을 젖혀 보았다. 순간 철렁 소리가 속에서 들릴 만큼 가슴이 내려앉았다. 창문 바로 앞 난간 위에 커다란 부엉이 한 마리가 앉아서 나를 정면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부스스한 내 얼굴을 째려보려고 얼마 동안 여기서 기다리고 있었을까. 긴히 할 말이라도 있는 듯 나를 지그시 쏘아보는 눈매가 심상치 않았다. 왠지 움츠러든 나는 조용히 커튼을 닫고 침대로 돌아갔다.

나 때문에 압사한 귀뚜라미야 미안해~

어제저녁 의도치 않게 죽인 귀뚜라미 한 마리 때문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무거웠던 모양이다. 방 안에서 너무 시끄럽게 울어대는 바람에 잠들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냥 잡아서 밖에다 던져주고 싶었지만 몸집이 너무 작고 나도 잠결에 덤벙대다 보니 그만 눌러버린 사고였다. 이제 방은 조용했지만, 내 마음은 평화롭지 못했다. 열심히 제 할 일을 하던 귀여운 녀석일 뿐이었는데. 생각보다 죄책감이 큰 것이 이상했다. 열대우림 한가운데에 살면 툭하면 동물들이 집 안으로 들어오고, 어쩔 수 없이 쫓아내거나 퇴치해야 하는 일이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야생의 세상에 인간이 불쑥 들어와 벽을 세운 거라 동물들에게 이 인위적인 경계는 당연히 무의미하다. 화장실에 손바닥만한 나방이 날아들고, 지붕 틈새론 박쥐가 드나든다. 밤사이에 멧돼지가 화단을 망가뜨리거나, 살쾡이가 닭을 훔쳐가기도 한다. 부엌에 뱀이 무려 2마리가 동시에 발견된 적도 있다. 자연의 품에 안겨 살면서 인간만의 프라이버시를 바라는 건 확실히 무리이다. 밀림의 다른 생물들처럼 이 공간을 공유하는 법에 익숙해져야 한다. 원치 않은 이웃까지도 말이다.

향긋한 볶음요리 냄새에 나는 설친 잠을 뒤로하고 하루를 시작한다. 나보다 언제나 먼저 일어나는 관리 아줌마께서 우리의 밥을 만들고 있다. 사나이 4명이 아침으로도 먹고 점심 도시락으로 싸갈 만한 양을 한번에 준비하느라 부산스럽다. 인도네시아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쌀을 주식으로 하고 여기에 몇 가지 반찬을 곁들이는 식단이라 좋다. 열대지역의 특성상 기름에 볶거나 튀기는 음식이 대부분이긴 하지만 워낙 맛있어서 나는 그저 먹기에 바쁘다. 오늘도 내가 좋아하는 두부와 멸치, 메주 비슷한 템페(tempe), 그리고 언제나 빠지지 않는 여기 고추장인 삼발(sambal)소스가 메뉴이다. 조금 후에는 숲의 이슬과 땀에 흥건히 젖겠지만, 집이라고 하는 작은 문명의 공간에서 모락모락 김이 나는 밥 챙기는 이 시간이 나는 참으로 행복하다. 사각형 플라스틱 그릇을 빼곡히 채우고, 여기에 후식으로 굴려 먹을 사탕 두어 개를 얹으면 마음이 든든하다. 숲에서 먹을 때쯤이면 다 식은 상태겠지만 소중한, 너무나도 소중한 나의 양식이다.

사람들이 열대우림에 대해 흔히 갖고 있는 그릇된 상식은 그곳에 먹을 것이 넘쳐흐른다는 생각이다. 사방에 과일이 주렁주렁 열려 있어서 팔을 뻗어 아무거나 따 먹으면 되는, 그야말로 낙원 같은 곳으로 여기곤 한다. 특히 과일을 주식으로 먹는 긴팔원숭이라면 한마디로 먹고살기 너무 편하지 않을까? 하지만 실상은 이와 다르다. 밀림은 다른 서식지에 비해 단위 면적당 생물량(biomass)이 가장 높은 곳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먹이가 그냥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많은 동물이 살기에 그만큼 경쟁이 치열하기도 하고, 먹이의 총량은 많을지 몰라도 어느 한 종이 먹을 수 있는 먹이는 그중 얼마 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이 좋은 예이다. 도시락을 아쉽게 다 비운 상태에서 숲을 둘러보면 내가 먹을 수 있는 것은 거의 아무것도 없다. 숲의 자원을 활용할 줄 아는 원주민들의 지혜도 없을뿐더러, 야생 그대로의 상태에선 사람의 소화기관으로 처리할 수 있는 유기물이 별로 없다. 먹이는 그래서 상대적인 개념이다. 같은 것이라도 내가 먹을 수 있으면 음식이고, 먹을 수 없으면 음식이 아니다. 마냥 풍부해 보이기만 하는 밀림에서 동물들이 저마다 먹이찾기 전략을 갖고 사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긴팔원숭이의 여러 가지 특성 중에서 이 먹이를 찾는 행동이 나의 연구 주제였다. 곧 죽어도 밥 생각만 하는 사람이라서 그런 주제를 택한 것은 아니다. 자신이 차지한 영역이라는 제한된 공간 안에서 식량을 전부 해결해야 하는 긴팔원숭이가 과연 어떤 방식으로 숲의 자원을 이용할까? 나는 이들의 야생 살림살이가 궁금했던 것이다. 녀석들은 잘 익은 과일과 어린 이파리로 배를 채워야 하는데 이런 자원이야말로 정글에선 귀한 축에 속한다. 잘 찾으면 나오지만 아무 데나 널려 있진 않아서이다. 그런데 마구잡이로 찾아 나섰다간 체력만 낭비하기 십상이다. 어린 식솔까지 딸려 있는데 이 나무 천지에서 한 그루 한 그루씩 위아래로 훑을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그냥 풀을 뜯어먹는 초식동물이라면 또 다르다. 과일이나 씨앗 등 식물의 번식기관을 먹이로 삼는 동물일수록 좀 더 피곤한 운명을 타고난 셈이다. 식물이 때가 되었을 때만 이런 것들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다소 까다로운 긴팔원숭이의 식성과, 주거지를 자유로이 옮길 수 없는 이들의 생태적 특성을 고려하면, 먹이 수급을 위한 나름의 ‘경영전략’이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에서 시작된 것이 나의 연구이다.

긴팔원숭이가 뭘 먹건 무슨 상관이냐고?

언젠가 사석에서 나의 이런 연구 주제를 설명한 일이 있었다. 뜬금없게 받은 질문은 대체 이런 연구를 왜 하는지에 관한 것이었다. 긴팔원숭이가 밀림에서 뭘 먹건 우리와 무슨 상관인가? 그러게요?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사실 그런 반응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루하루 살아가기 바쁜 우리에게, 눈앞에 있지도 않고 이 나라에 속하지도 않은 무슨 원숭이의 밥 먹는 얘기는 더할 나위 없이 무관하다. 내 당장의 일상은 도시의 건물 속에, 내 책상과 모니터에서 벌어진다. 그런 직접적인 의미에서라면 물론 긴팔원숭이와 우리 사이에 상관관계 따위는 없다.

하지만 어린이책을 들춰보라. 숲 속의 호랑이가 어흥 포효한다. 예쁜 색깔의 음료수를 골라보라. 열대의 태양 아래 영근 과일이 상큼하다. 영화관에 가서 앉아보라. 울창한 정글에 사는 종족이 등장한다. 카페에서 커피를 살펴보라. 열대산 원두의 포장지에 앵무새가 날개를 편다. 가구점에서 원목을 두들겨보라. 보르네오 한가운데에 섰던 나무일지 모른다. 그냥 리모컨을 눌러보라. 악어와 아나콘다가 아마존에서 씨름판을 벌인다. 그리고 숨을 깊이 들이켜 보라. 지구의 허파에서 내뿜은 산소의 맛을 보라.

긴팔원숭이의 행동생태를 연구하면 인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과학적 근거를 제시할 수도 있다. 또는 이들이 사는 인도네시아 숲의 천연자원을 우리 경제가 얼마나 수입하는지 보여주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구차한 설명은 늘어놓고 싶지 않다. 자연이 우리에게 이런 혜택도 주지 않느냐, 그러니 가치가 있지 않으냐, 변명하는 순간 자연을 제대로 존중하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재즈가 뭐냐고 묻는 질문에 루이 암스트롱이 대답했듯이 “굳이 물어봐야 한다면 당신은 어차피 알 수 없다.” 한국인이라면 남대문과 본인과의 관계를 따진 다음에 화재 소식에 분노하지 않는다. 지구인인 나에게 지구의 자연은 나의 첫번째 관심사이다. 나와 세상의 상관 여부는 나에게 달려 있다. 그것은 나의 취향이나 이해타산에 따른 것일 수도 있다. 더 근본적인 것일 수도 있다. 이해관계나 합리성을 훌쩍 넘어서 먼 세상의 이야기도 마치 나의 것인 양 소중하고 중요할 수가 있다.

어느덧 고개를 들어보니 해는 중천에 떠 있었다. 배는 이미 2시간 전부터 밥시간임을 주장하고 있었다. 유난히 허기가 진 이유 중 하나는 A그룹의 아리따운 처녀인 아스리가 너무나도 맛있게 식사하는 모습 때문이었다. 오늘은 현지어로 하미룽이라는 나무에 만발한 꽃 무덤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긴팔원숭이는 과일의 당분을 주된 에너지원으로 섭취하면서 여기에 꽃과 연한 이파리를 추가해서 필수아미노산과 같은 단백질을 얻는다. 특히 꽃은 잎에서 발견되는 큐틴이나 펙틴과 같은 보호물질이 없어서 먹기에 안성맞춤이다. 그래서 열대우림의 영장류는 과일에 든 씨앗을 멀리 뿌려주는 역할을 함과 동시에 꽃가루를 운반하는 수분매개자로도 기능한다. 예쁜 꽃잎을 감상하기는커녕 먹어 해치우는 이들을 보면서, 꽃에 대한 우리의 사랑도 조금은 식욕과 관련되어 있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비에 헹군 나침반으로 점심을 퍼먹었다네

그런데 꽃을 잡수시던 아스리가 갑자기 나무에서 내려오기 시작했다. 어디까지 오려고 저러나 하고 있는데, 어? 아예 땅으로 내려오고 있잖아! 지면을 한 발 정도 남겨놓고는 여전히 나무를 잡은 채 아스리는 뭔가를 휙 잡았다. 메뚜기였다. 그것도 상당히 거대한 놈이다. 아스리는 조금도 주저함이 없이 이 메뚜기의 다리부터 하나씩 뜯어 먹기 시작했다. 그다음에는 머리를 와지끈! 젊은 처녀에게 썩 어울리는 광경은 아니었지만, 바삭바삭한 질감을 즐기는 광경이 고소해 보일 지경이었다. 벌레 만찬을 끝낸 아스리는 휙 제자리로 돌아가더니 아직 끝나지 않은 식사를 이어나갔다. 긴팔원숭이는 곤충을 일부러 사냥하지는 않지만 기회가 생기면 잘 먹는다. 고단백일 뿐 아니라 무기질도 공급하는 먹이이다.

당분간 이 나무에 머물겠다는 확신에 나도 냉큼 도시락 통을 꺼냈다. 우르릉 쾅쾅,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마침 잘됐다. 비가 오면 보통 가만히 있으니 점심 먹기에 그만인 타이밍이다. 녀석들의 만찬을 더 이상 쳐다보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빗물이 조금 걸러지는 나무 밑으로 피신하고, 부리나케 비옷을 꺼내 뒤집어쓰고, 큰 잎사귀 하나를 잘라 방석을 마련했다. 신나게 뚜껑을 여는 순간 숟가락을 깜빡 잊고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무리 문명으로부터 먼 정글 생활에 익숙한 나라지만, 처참하게 더러운 이 손으로 음식물을 만질 수는 없었다. 가방을 아무리 뒤져봐도 숟가락 대용으로 쓸 만한 물건이 없었다. 이런 젠장, 거의 포기 상태에 다다를 즈음 바지의 건빵 주머니에 있는 나침반이 손에 만져졌다. 동서남북을 가리키는 바늘이 있는 쪽 말고, 지도 위에 대고 좌표를 그을 수 있게끔 눈금과 돋보기가 달린 반대쪽 부분이 있다. 비록 너무 넓고 각이 져서 불편하지만 이 정도면 충분했다. 기름진 인도네시아 요리에 번들거리는 나침반을 때때로 비에 헹궈가며 나는 기분 좋은 점심을 즐겼다. 나침반을 입안 깊숙이 넣어본 경험, 아마 흔하지는 않을 거다.

고된 하루를 마치고 돌아와 나는 잠자리에 들었다. 나의 삶을 긴팔원숭이의 삶에 맞춰 살다 보면 정말 그들처럼 살게 된다. 그들이 자는 시간에 나도 자야, 그들과 함께 일어날 수 있다. 아마 녀석들도 지금쯤 아늑한 가지를 하나 골라 꿈나라에 빠져들고 있겠지. 나도 그러려는 찰나에 툭툭 뭔가 부딪히는 소리가 방에서 난다. 오늘 밤엔 또 어떤 동물이 날 괴롭힐 건가! 불을 켜고 이 작은 소음의 진원지를 보았다. 여태껏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요상한 괴물이 날 가만히 바라보았다. 대체 이건 뭐지? 눈을 비비고 자세히 보니, 머리에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개구리였다. 어떻게 내 방까지 들어왔는지 모르겠지만, 나가려고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다 온 방의 쓰레기로 치장을 하게 된 것이었다. 귀뚜라미에게 저지른 실수를 떠올리며 나는 개구리를 안전하게 잡아 밖에 놓아주었다. 이제 정말 마음 놓고 잠들 수 있었다. 이 정글에서 함께 지내는 수많은 이웃들이 쌕쌕 잠드는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했다. 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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