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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닭·풍뎅이·쥐·개미가 호시탐탐 노린다

등록 2013-08-09 19:24수정 2013-08-22 10:07

때로는 언어가 담을 수 없는 무언가도 있다. 밀림 안에서 만난 어느 순간의 느낌과 기억은 오롯이 혼자의 것이었다. 고독했고 외로울 때면 한집에 사는 식구이자 손님들이 나타나 친구가 되어주었다. 마음과 다르게 살상을 한 적도 있지만…. 그림 김산하
때로는 언어가 담을 수 없는 무언가도 있다. 밀림 안에서 만난 어느 순간의 느낌과 기억은 오롯이 혼자의 것이었다. 고독했고 외로울 때면 한집에 사는 식구이자 손님들이 나타나 친구가 되어주었다. 마음과 다르게 살상을 한 적도 있지만…. 그림 김산하
[토요판] 긴팔원숭이박사 김산하의 탐험
<6> 정글 라이프
한국에서라면 두기 어려운
정글의 특별한 이웃은 동물
쥐 잡으려 끈끈이 설치했다가
도마뱀·거미·바퀴벌레까지
한집 식구가 다 걸려버렸다

주소도 없고 전화도 안 되는
밀림에서의 삶은 고독하지만
사랑하는 이들과 연락닿을 때면
나의 하루는 영롱하게 빛났다

같은 곳을 다녀오고도 사람에 따라 그 소감은 완전히 다를 수 있다. 어떤 이는 타지가 우리와 얼마나 다른지를 엄청나게 부각시키는가 하면, 어떤 이는 사람 사는 데 다 똑같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과연 둘 중 정답은 무엇일까? 우선 후자는 확실히 틀린 말이다. 사는 모습이 다르고, 사는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우리는 굳이 여행이라는 걸 하는 것이다. 물론 어떤 의미에서 같다는 뜻인지 우린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절대로 똑같지는 않다. 그렇다고 세상이 전혀 다른 차이점만으로 만들어진 것도 아니다. 어쩌면 단편적인 방문이나 즐기기 위한 여행을 하는 자에겐 세상이 진짜 모습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지도 모른다. 피상적인 접근으로부터 숨겨진 실체에 도달하기 위해 필요한 것: 바로 탐험이다.

평평한 땅 위에서 보내고픈 소망

그런데 여기에 역설이 하나 존재한다. 대단한 발견에 집착하는 탐험은 필연적으로 실패한다는 사실이다. 금의 왕국을 상상하며 엘도라도를 찾아 나선 수많은 탐험가들이 끝내 꿈을 이루지 못했듯이, 대상화된 목적지나 목표물을 가진 탐험은 원하는 게 너무 강한 나머지 눈앞에 펼쳐진 보물을 쉬이 놓치기 때문이다. 대신 성취에 대한 의지를 바탕으로 공간에 완전히 몸을 담그되, 물속을 유영하듯 세상을 감각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무엇을 발견할지는 거의 전적으로 탐험을 하는 자에게 달려 있다. 가장 멋진 광경을 보고도 시큰둥한 이가 있는 반면, 채 몇 걸음 가지 않아도 스펀지처럼 진수를 빨아들이는 이가 있다. 나는 그 중간 어디쯤, 조금은 후자 쪽으로 기운 사람이라 스스로 말하고 싶다. 프랑시스 퐁주의 <미완의 진흙을 위한 송시>나 이탈로 칼비노의 <미스터 팔로마>에서 보는 바와 같은 수준의 지각력이나 통찰력에는 물론 이르지 못한다. 내 나름대로 밀림에 살며 보고 느끼는 바가 있어 기록해놓은 것들이 있다. 어떤 것은 아주 기본적인 삶의 조건에 관한 것이고, 또 다른 것은 조금 더 복잡한 심상에 관한 것이다. 시시콜콜한 얘기들이지만, 그 어느 하나도 빼놓고서는 나의 밀림 탐험기는 아마 완전치 않을 것이다.

1) 땅: 긴팔원숭이를 쫓던 시간 내내 나에게 가장 큰 염원이 하나 있었다면 그건 하루 일과의 상당 부분을 평평한 땅 위에서 보내고픈 소망이었다. 보통 방이나 사무실에서 생활하는 우리는 수평으로 고르게 난 표면 위에서 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간혹 비탈길이 좀 많은 캠퍼스에서 대학 시절을 지내는 경우도 있지만, 헉헉 숨을 몰아쉬며 뛰어 들어가는 강의실은 최소한 평평한 바닥을 제공한다. 열대 우림이라고 해서 늘 나의 연구지처럼 산악지대에 있는 것은 아니다. 원래는 고도가 낮은 저지대에도 광범위하게 숲이 펼쳐져 있었지만, 그만큼 이동하기가 쉽고 접근성이 좋은 바람에 인간이 전부 차지해버려서 이젠 남아 있는 서식지가 손에 꼽을 정도이다. 인도네시아 자바섬의 경우는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수도와 인구가 집중된 이곳은 원시림의 90% 이상이 손실되었다. 게다가 최근 팜유 농장의 확산으로 그나마 남은 작은 녹색조각마저 모두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그래서 자연은 교통이 불편한 산으로 모두 도망을 간다. 자동차가 쉽게 올라갈 수 없는 울퉁불퉁한 산지에서 그나마 동식물은 숨을 돌릴 수 있는 것이다. 안정이 보장된 안식처는 아니다. 블루마블 게임의 무인도처럼 잠시 일회 휴식하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언제 어떤 개발 압력이 닥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덕분에 나의 두 발은 언제나 높이가 서로 다른 두 곳을 디디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두 다리 곧게 펴서 설 수 있게만 해준다면, 앞으론 누가 시키지 않아도 짝다리 짚지 않으리.

2) 기후: 사람이 편안함을 느끼는 기후 범위는 왜 이토록 좁을까? 밀림을 탐험하던 기간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질문이다. 수은주가 약간만 올라가거나 내려가도 우리는 금세 불편하다. 습도도 적정 수준이 아니면 피부 문제가 생기거나 찝찝하다. 이런 점을 고려해서 만든 것이 불쾌지수인 모양이지만, 이 덕분에 견딜 만한 날씨도 더더욱 불쾌하게 느껴진다. 열대지방에서는 냉방기를, 온대지방에서는 난방기를 트는 호들갑을 떨어야만 하는 우리. 이에 비해 주어진 날씨를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있는 동식물의 자태는 호젓하고 기품이 있다. 열대 우림은 말 그대로 비의 양이 절대적으로 많은 곳이다. 나의 연구지인 구눙할리문 국립공원은 한 해 강수량이 4000~5000㎜를 웃돈다. 우리나라 역대 최고 연강수량이 1792㎜인 것에 비춰 보면 그 양을 가히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숲에 들어가면 무조건 젖는다. 마른날도 지난밤의 비나 이슬이 식물의 잎에 맺혀 있어, 스쳐 지나가는 내 옷자락에다 방울방울을 건넨다. 옷에 달라붙은 축축한 천의 감촉, 마르지 않는 샘처럼 흐르는 땀, 수분이 물리적으로 느껴지는 공기, 그리고 강렬한 태양. 밀림 생활의 기본 조건이다. 물과 빛과 공기의 이 소용돌이 속에서 그토록 많은 생명이 탄생하고 그토록 화려한 생태계가 자라나는 것이다. 쾌적함의 요구조건이 쓸데없이 까다로운 인간이 끼기에 어색한, 진정한 야생의 공간이다.

아끼던 책 한권이 흰개미들의 잔칫상이 된 것을 안 시점은 이미 식사가 상당히 진행된 뒤였다.   김산하 제공
아끼던 책 한권이 흰개미들의 잔칫상이 된 것을 안 시점은 이미 식사가 상당히 진행된 뒤였다. 김산하 제공

열대 우림엔 음식물 쓰레기가 없다

3) 음식: 나는 음식 남기는 것을 보지 못하는 성격이다. 아니 성격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생활철학이다. 먹을 수 있고 소화할 수도 있는 유기물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뼈저리게 경험한 탓이다. 음식이 넘쳐나는 도시에 사는 이에겐 먹을거리가 잉여자원으로 보인다. 생물로 가득 찬 곳에 살면서 그중 내가 먹을 수 있는 건 극히 적은 밀림에서 나날을 보낸 이에겐 사무치게 귀한 것이 음식이다. 짊어진 배낭 속 작은 도시락 통이 동이 나면, 남은 시간을 에너지 무방비의 상태로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 때론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기후와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음식이라는 개념은 왜 이리도 협소할까, 주린 배를 안고 정글을 누비며 하던 생각이다. 슈퍼에 가보면 다양한 것처럼 보이지만, 다 적당히 물렁물렁하고, 부드럽고, 식물성이든 동물성이든 육질이 있는 무엇이다. 눈앞에 생물다양성의 총화를 보여주는 거대한 무화과나무가 우뚝 서 온갖 동물의 만찬장이 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정작 나만 못 끼고 있는 기분을 아는가. 억지로 먹으려면 한두 개 삼킬 순 있다. 실제로 먹어보니 긴팔원숭이가 먹는 대부분의 과일은 쓰거나 신 맛이라 무슨 맛으로 먹는지 궁금할 정도이다. 그걸로 식사를 하는 건 절대 불가능하다. 물론 토착민들은 내가 감히 견줄 수 없는 생활의 지혜를 갖고 있어 야생의 숲에서도 필요한 자원을 채취할 줄 안다. 그런 노하우는 내게 요원하다. 열대 우림에서 한 가지 아주 편리한 점은 남은 음식을 처리하기 좋다는 것이다. 도시에서는 처리하기 곤란한 음식물이 여기서는 자동적으로 처리된다. 순식간에 개미가 달려들고, 균류가 작업에 들어간다. 조금만 지나면 남은 거라곤 흔적도 없다. 물론 동물들이 내가 원하는 것만 처리해주지는 않는다. 아끼던 책 한권이 흰개미들의 잔칫상이 된 것을 안 시점은 이미 식사가 상당히 진행된 뒤였다. 잘 안 보는 책도 많은데 하필 아끼는 이것을!

4) 이웃: 어디에 있는지가 아니라 누구와 있는지가 중요하다는 말이 있다. 다분히 사회적인 존재인 우리는 어떤 이들과 함께하느냐에 따라 행복과 불행을 거침없이 왕복한다. 내가 머문 밀림 옆의 작은 마을은 집이 겨우 열 채 남짓한 작은 공동체이다. 만나면 언제든지 인사를 나누고, 모르는 사이라도 눈웃음 또는 미소를 주고받는 문화이다. 나도 모르게 한국에서 이 버릇대로 하다가 난감했던 적이 여러 번 있다. 더군다나 여대에서 근무를 했으니 알 만하지 않은가. 인도네시아 산골에서 일상으로 여겼던 이웃 간의 이 다정다감함이 우리네 세상에서는 자취를 감춰버렸다는 사실이 슬프다.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라면 두기 어려운 이웃은 동물이다. 갈수록 주변을 인공적으로 변모시키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내가 살던 밀림 동네는 동물 이웃이 즐비하다. 우선 닭이 온 식구를 이끌고 하루에도 수십번 찾아온다. 특별히 볼일도 없으면서 당당히 대문을 통해 들어와 마당을 거닐다가 심지어는 집 안까지 넘본다. 뉘 집 녀석들인지 모를 고양이와 개들도 툭하면 제집인 양 와서 쉬고 있다. 어느 날 밤, 앞문을 둔탁하게 두들기는 소리에 아닌 밤의 불청객을 예상하며 조심스레 문을 열었는데, 커다란 풍뎅이 한 마리가 계속해서 문에 부딪혀서 내는 소리였다. 현관문 앞 불빛에 홀려 날아온 것이었다. 가늘게 낑낑거리는 소리가 나면 어딘가에서 개구리가 뱀에 먹히고 있다는 신호이다. 아니나 다를까, 불쌍한 신음소리의 진원지를 찾아가면 뒷다리부터 조금씩 빨려 들어가는 개구리를 만날 수 있다. 집 안을 나눠 써야 하는 이웃도 물론 많다. 늘어나는 쥐가 곡식을 건드리는 바람에 어느 날 저녁 다락에 끈끈이를 설치한 적이 있다. 다음날 떨리는 손으로 꺼내 든 이 함정에는 한집식구 동물의 5종 세트가 고스란히 모아져 있었다. 쥐, 바퀴벌레, 도마뱀, 개미, 그리고 거미. 이렇게까지 다 잡을 생각은 없었는데. 무거운 마음으로 난 이 이웃사촌들을 처리해야 했다. 얘들아, 정말 미안하구나.

세상과 접속 비용은 1메가당 7360원

5) 슬픔: 삶이란 생로병사인데 어찌 아픔이 없으리오. 그간의 마음고생을 넋두리처럼 일일이 늘어놓을 생각은 없다. 그래도 하나만 꼽으라면 그건 그리움이었다. 누구나 가족과 친구로부터 떨어져 지낸 경험이 적어도 조금씩은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가 특수했던 점은, 연락 자체가 어려운 곳에서 긴 세월을 지냈다는 사실일 것이다. 군중 속에서도 우리는 얼마든지 고독함을 느낄 수 있다. 나를 찾아주는 이, 나를 반겨주는 이가 없다면, 그 많은 사람들도 나의 홀로됨을 경감시키는 데에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울리지 않는 핸드폰, 편지가 없는 우편함을 전제로 한 세상이었다. 통신망은 물론 편지가 도착할 우편주소도 없는 곳에서 느끼는 고독의 맛은 모든 서신 교환의 가능성이 차단되어 있기 때문에 더욱 진하다. 이 사태를 미리 예견하고 나는 원양선박의 통신용으로 개발된 인마르샛위성 단말기라는 통신장치를 미리 구입해 왔었다. 때마침 국제 위성 네트워크 서비스가 개시되어, 멀리서 고기잡이를 하는 어부들과 신세를 같이하는 마음으로 나는 때때로 이 고가의 장비를 켰다. 하지만 진정으로 때때로였다. 송수신 정보 1메가당 7360원씩이나 하는 가격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모든 메일은 읽지도 않은 채 복사해서 붙여놓고, 답장은 미리 써놓은 것을 붙여서 보낸 다음 급히 전선을 뽑아야만 했다. 헉헉, 이번엔 얼마나 나왔을까. 검색은 꿈도 못 꾸었다. 그나마 이런 인터넷 사용도 어쩌다가 즐기는 럭셔리, 대부분의 시간은 소식 감감의 침묵 속에 천천히 흘러갔다. 나 없이도 세상은 돌아가겠지.

6) 기쁨: 그리움이 가장 힘들었던 만큼, 그것이 충족될 때 나는 기뻤다. 때때로 연락이 닿아 사랑하는 이들이 잘 있다는 소식과, 그들이 아직 나를 완전히 잊지 않았다는 단서를 얻었을 때 나의 하루는 영롱하게 빛났다. 최고의 기쁨은 내가 몸담고 있는 이곳으로부터 왔다. 이 신비롭고 아름다운 밀림에 내가 있구나. 정말로 여기에 내가 있구나. 이곳이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이렇게 존재한다는 것, 오늘 하루도 저 소중한 동식물들이 무사하다는 안도감, 이 찬란한 녹음과 용솟음치는 야생의 삶이 아직도 세상에 있다는 그 명백한 사실이 나를 눈물 나도록 기쁘게 하였다. 그리고 이 심상에 곁들이는 맥주 한 잔의 기쁨! 요것도 물론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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