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팔원숭이 연구가 방송을 탔다. 야생 그 자체인 정글에 들어온 카메라는 낯설고 어색했다. 김산하 제공
[토요판] 긴팔원숭이박사 김산하의 탐험
⑮ 정글 노트
⑮ 정글 노트
눈을 뜬 순간부터 오늘이 그날임을 나는 떠올렸다. 그 일을 꼭 오늘 해야 할 이유는 없었다. 다만 언젠가는 날을 잡아야 했고, 오늘을 그날로 지정했을 뿐이다. 아마도 마음속으로 계속 굴리던 일이라 깨어나자마자 생각이 든 모양이었다. 아침 햇살은 얇은 커튼을 무시한 채 뚫고 들어와 벽을 넓게 어루만지고 있었다. 창문 바깥에선 물소리와 새소리의 발랄한 수다가 흘러 들어왔고, 집 안에서는 먼저 일어난 이들의 인기척이 부드럽게 감돌았다. 나는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잠의 여운을 달콤하게 탐닉했다. 퍽 긴 세월 동안 고단한 나의 몸을 품어주고 덮어준 이 침구들이 새삼스럽게 고마웠다. 그래, 이 단순하고 부드러운 섬유에 나를 파묻고 얼마나 많은 밤을 통과했는가. 아직 이곳을 떠나는 날은 아니었다. 시간은 충분히 남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오늘 몇 가지 것들에게 작별을 청하기로 작심했었다. 남은 기간 동안 어차피 써야 할 생필품과 연구 장비를 제외하고, 숲 속에서 지내는 동안 생겨난 각종 편지, 글, 메모, 사진 등을 정리하기로 한 것이다. 누군가가 내게 보내준 것도 있고, 나 혼자 끼적였던 것도 있다. 모두 내가 밀림의 세계와 씨름하고 사랑하던 삶의 조각이 하나씩 담겨 있고, 나의 고독한 시공간에 언어와 의미와 위안을 더해주었던 것들이다. 그래서 이들과의 헤어짐은 제대로 된 의식을 필요로 했다. 하늘은 높고 공기는 안온했다. 이만하면 좋은 날이겠구나, 나는 혼잣말을 했다.
숲 속에서 지내는 동안 생긴
편지·메모·사진을 정리했다
한국으로 가져가는 대신에
나의 기억, 그리움과 더불어
이곳에 영원히 묻고 싶었다 차마 버리지 못한 노트 한 권엔
원망도 했지만 아름다웠던 비
왔다갔다하며 고생시킨 D그룹
고심해 지은 정글 아기의 이름
선물 같은 시간 흔적이 곳곳에… 정리는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꼭 소장해야 할 것만 제외하고 대부분 버리기로 결심한 이상 나는 그 기준을 주저함 없이 과감하게 적용했다. 사실 버린다는 표현은 적절치 않다. 알 수 없는 어느 매립지에서 뒹굴게끔 그냥 휴지통에 넣을 수는 없었기에 나는 이들을 태우기로 결심했다. 읽고 또 읽은 편지, 나의 시선에 닳아버린 사진, 나는 이들을 한국으로 가져가고 싶지 않았다. 여기 이 땅에 묻고 싶었다. 한때 새것으로 빳빳했던 자태는 어느새 열대의 온기와 습기로 풍화작용을 거쳐 이제는 옛 탐험가의 유물처럼 바래고 낡아져 버렸다. 벽에 붙여 놓은 뒷면에 곰팡이가 눌러앉은 것들도 있었다. 이런 물리적 노화 때문에 이 소중한 마음의 기록들을 두고 가려는 것은 아니었다. 야자수가 바람에 출렁이고 안개에 휘감긴 숲이 우뚝 선 이곳에서 나와 함께하였기에 이 대지와 떼어놓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나의 기억과 그리움과 더불어 이곳에 머물러야만 했다. 어쩌면 나를 대신해서 여기와 영원히 하나가 되길 희망했을지도. 헤어지기 전, 하나하나 자세히 보고 있자니 깊은 곳에서 조용한 소용돌이가 이는 것이 느껴졌다. 이러다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 확실했다. 무관심한 듯 쓱쓱 보며 인사하는 수밖에 없었다. 헤어짐이란 건 원래 이런 것이었다. 옆구리에 잔뜩 끼고, 성냥갑을 집고, 터덜터덜 걸으며 나는 바깥으로 향했다.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미소 짓고 싶지 않을 때 사회가 자리를 살짝 비켜주는 것만큼 고마운 것은 없다. 첫번째, 두번째 성냥은 바람이 꺼버렸다. 바람을 등지자 세번째부터 불이 붙었다. 뛸 듯한 반가움에 열어본 봉투, 친근하고 우아한 손글씨가 산소와 만나 허상처럼 사라지기 시작했다. 비 오는 날 우두커니 응시하던 사진, 심심풀이로 모은 그림조각들이 까맣게 후퇴하며 연소되었다. 비가역적인 변화의 작은 무더기 위에는 회색 연기만 아련함처럼 떠 있다가 흩어졌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푸르게 펼쳐진 계단식 논마다 채워진 물은 잔잔했고, 울창한 밀림은 조용히 호흡하고 있었다. 멀리서 검고 마른 농부 한 명이 힘겹게 괭이질을 하고 있었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곳에서 그동안 내가 살았구나. 너무도 당연한 이 문장을 나는 몇 번이고 뒤풀이했다. 아무리 반복에 반복을 거듭해도, 충분치 않았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나는 뭘 들고 다니는 것을 싫어했다. 학창 시절엔 언제나 최소한의 물건만을 지닌 채로 등교했고, 특히 시험 때에는 수성 사인펜 딱 두 자루만 주머니에 꽂고 고사장을 향했다. 유난히 자신감이 넘쳐서가 아니라 더 이상 뭘 본다고 달라질 것도 없다는 생각과 함께, 정말 물건을 지니는 것이 거추장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나는 가방 없이 다니며, 가방을 둘러싼 온갖 수요와 공급의 난리 통이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는 사람이다. 세상을 경험하는데 거치적거리는 사진기도 나에겐 도저히 소지하고 다니기 어려운 물건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사진을 찍는 순간 그 포착이 삶을 풍성하게 해주기는커녕 오히려 세상과의 만남이 변질되고 경험치가 감쇠된다. 연구 장비의 일환으로 가져온 카메라와 친절한 방문객의 촬영 기여가 없었다면 정글에서 지냈던 내 생애 가장 특별했던 이 시간이 어쩌면 시각적으로 전혀 기록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동영상이나 기타 디지털 기기는 거의 언급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나와 무관하다. 이토록 막무가내인 나이지만 글과 그림이라는 고전적인 기록 매체에 대해서는 무한히 호의적이다. 나이로는 옛날 사람이 아니더라도 아날로그적 고집만큼은 스스로 봐도 꼰대다운 데가 있다. 그래서 숲속 생활을 정리하면서도 일부러 챙겨 들고 온 것이 있는데 바로 한 권의 노트이다. 윌리엄 모리스 특유의 자연 모티브 패턴이 앞뒤를 장식하고, 책등에 훤히 드러난 끈으로 묶여 제본된 이 공책에 나는 밀림생활의 생각과 사건을 기록하였다. 실제 글의 양은 얼마 되지 않는다. 언젠가 제대로 쓰고 싶을 때 잊지 않기 위해서 메모나 단서로 남긴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래도 불길을 면한 이 한 권 덕분에 지금 이야기꽃을 피울 기억의 재료를 건진 것이 참으로 다행스럽다. 두서없기도 하고, 서로 연관도 적은 그 시절의 파편적인 이야기들이지만 나름 깨알 같은 재미가 있어 들춰볼 만하다. 주제별로 엮어보니 콜라주를 연상케 하는 글 모음이 되어버렸다.
비, 비, 그리고 비
열대 우림에서 생활하는 자는 비라는 테마로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든 생명과 생태계를 관통하여 흐르는 혈액인 동시에 경험적으로 가장 압도적인 현상이다. 비는 음악을 끄는 대신 연필을 들게 한다. 비를 맞고 있으면 하늘의 두들김에 어찌할 바를 모르지만, 비를 보고 있으면 사물이 분명해진다. 물이 중력에 따라 내려오는 현상일 뿐이지만 물에 닿지도 않은 가슴은 어느새 흠뻑 젖어 기억을 춤추게 한다. 비가 오면 모든 이는 은신처를 찾는다. 아니면 넋이 나간 듯 그 자리에 우두커니 있다. 생명은 그렇게도 물에 의존하면서도 무한히 제공되는 물 앞에서는 대범하지 못하다. 숲에서 동물을 추적하는 행위는 비에 의해서 가장 크게 좌지우지 당한다. 어느 날 긴팔원숭이를 찾아 반나절을 헤매다가 겨우 높은 나무에 몸을 숨긴 녀석들을 발견했다. 그 순간 엄청난 양을 머금고 있다가 마침내 그 천금 같은 물의 무게를 내려놓는 열대의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털이 달린 짐승이라면 비가 내리는 동안은 절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털은 추위와 열기 그리고 기생충으로부터 몸을 지켜주지만 젖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게 된다. 차가운 빗물에 털이 젖은 동물이 체온 조절에 실패하면 그날 밤 생명이 위태로울지 모른다. 후드득 소리에 꼼짝 않기로 결정한 동물과 마찬가지로 그들을 연구하는 사람도 별 도리가 없다. 나무 밑에서 아무리 기다려봤자 얻는 것이라곤 비와 땀이 섞인 흥건함뿐이다. 비는 멈출 낌새가 조금도 없어 나는 어렵게 달성할 뻔했던 하루의 성과를 모두 접고 집을 향했다. 몸무게에 눌려 초콜릿 아이스크림처럼 무너져 내리는 진흙 위를 신들린 듯 미끄러져 달려서 집으로 돌아왔다. 열대 우림의 비는 때로는 고맙고 때로는 원망스럽다. 하지만 언제나 사무치게 아름답다.
가장 험난한 D그룹과의 사투
나는 3개의 긴팔원숭이 그룹을 따라다니며 연구를 하였다. 그중에서 맨 마지막으로 합류한 D그룹은 하필이면 지형적으로 가장 험악한 지대를 영역으로 삼은 녀석들이었다. 안 그래도 평지라곤 거의 없는 이곳에서, 유독 D그룹은 밀림의 달동네를 그들의 주소지로 삼았던 것이다. 산이 시작되는 지점부터 출발해서 최소 45도 이상의 경사로 쭉 뻗은 비탈길을 네발로 기어서 엉금엉금 올라가야 했다. 그것마저도 어려운 구간도 더러 있어, 라탄 식물의 속줄기로 만든 밧줄을 설치해서 암벽등반 하듯 산을 타야 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D그룹의 영역에도 산꼭대기에 다다르면 평평한 고원지대가 나타난다. 그곳에 오르면 반대편 능선이 눈에 들어오고, 운이 좋으면 밀림 전역에서 발원하는 긴팔원숭이들의 울음소리가 메아리로 된 합창처럼 울려 퍼지는 공연을 감상할 수 있다. 하지만 보통은 그럴 여유가 없다. 정상은 나무가 얇고 과실 생산성이 낮아 긴팔원숭이가 오래 머무르는 법이 없다. 곧 다시 반대편 산자락으로 내려가고 우리는 따라가야 한다. 한참을 내려가면 얇은 시내가 있고, 거기서부터 두번째 등정이 또 시작된다. 그것도 쭉 가기면 하면 그나마 낫다. 왔다 갔다, 이랬다저랬다, 그 속은 대체 알 수가 없다. D그룹, 너희들은 D학점이야!
영장류끼리의 줄다리기
점점 겁을 상실하던 A그룹의 처녀 아스리가 드디어 선을 넘은 날이 있었다. 내가 한 명의 연구보조원과 B그룹을 쫓던 중, 나머지 팀원인 아리스와 누이는 A그룹을 따라가고 있었다. 나중에 들은 얘기인즉슨, 아스리가 덩굴식물의 열매를 먹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아리스의 장난기가 발동했던 모양이다. 아스리가 손을 뻗어 잡으려던 덩굴을 일부러 당겨 멀어지게 한 것이다. 낚시질하듯 이 짓을 몇 번 했더니 뿔따구가 난 아스리는 지지 않고 덩굴을 위로 잡아끌었다. 아리스 말에 따르면 젊은 암컷이지만 긴팔원숭이의 힘이 만만치 않았다고 한다. 그것도 서로 겨우 5미터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팽팽한 줄다리기를 했다는데, 이런 명장면을 놓친 것이 어찌나 아쉬운지 모른다. 상호 아무런 이득도, 뚜렷한 원인도 없는 이 갑작스러운 종간 기싸움을 과학은 과연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정글 아기의 이름 짓기
우리가 당도하기 한참 전부터 인도네시아 밀림에서 살던 긴팔원숭이들에게 이름을 붙여주는 행위는 어딘가 주제넘게 느껴지는 구석이 있다. 녀석들이 언제 이름이 필요하다고나 했나? 하지만 새로 태어난 아기에 대해서는 마치 어떤 선험적 권리라도 있는 양, 우리는 진지하게 고심해서 이름을 짓곤 했다. 이름은 항상 그룹의 철자로 시작하도록 지었는데, 이는 국제 야생영장류학에서 통용되는 관행이기도 하다. 내가 목격한 첫 출생인 B그룹의 아기는, 호칭부터 부르는 인도네시아어에 따라 아기(Bayi) 쿰쿰(Kumkum)이라 이름 지었었다. 불행히도 쿰쿰은 이후에 사라져버렸는데, 다음에 태어난 아기는 나의 성을 따라 아기 김김(Bayi Kimkim)이 되었다. 몇 년 전에 나온 A그룹의 신생아는 긴팔원숭이 연구의 든든한 후원 기업인 아모레퍼시픽을 따라 아모레(Amore)로 작명하였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아모레의 동생이 태어났다는 경사스러운 소식이 들어왔다. 어미에겐 묻지도 않고, 교수님과 연구진은 또다시 A로 시작되는 이름을 물색 중이다. 마치 조부모라도 된 기분이다.
‘공중’ 화장실
지정된 장소가 나타날 때까지 고통스러워도 참아야 하는 인간의 팔자는 얼마나 고단한가. 동물이야 어디든 화장실로 쓰지만, 긴팔원숭이는 한 걸음 더 나가 어느 높이에서나 볼일을 본다. 두 팔로 대롱대롱 매달려 수십 미터 높이에서 내보내는 배설의 기쁨에는 남다른 ‘맛’이 있지 않을까 한다. 하늘로 뻗은 나무의 긴 가지는 이들에게 영락없는 공중(空中) 화장실이다. 워낙 높이에서 떨어지다 보니 중간에 부딪히고 흩어져서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대피하느라 정신이 없다. 이들과 동행하다 보면 인간도 같은 곳에서 실례를 할 수밖에 없다. 소변은 쉽지만 대변은 간혹 당혹스럽다. 휴지가 없어 나뭇잎을 써본 나로서는 이 곤란함을 잘 알고 있다. 조언 한마디 하자면 어린잎을 골라야 한다는 점이다. 에헴.
긴팔원숭이의 방송출연
우연찮은 기회에 나의 긴팔원숭이 연구는 브라운관에 데뷔할 기회를 얻었다. <지구촌 네트워크 한국인>이라는 프로를 위해 촬영팀이 방문한다는데, 와보니 일인다역의 피디(PD) 한 명이었다. 우리는 카메라를 짊어지고 밀림의 구석구석을 누비며, 긴 세월 동안 발품을 팔아 닦아놓은 숲의 노하우를 카메라 렌즈 앞에 펼쳐주었다. 문명과 단절된 채로 살다가, 느닷없이 문명의 눈초리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자니 기분이 묘했다. 지극히 혼자였고 고독했던 나의 이야기가 고국의 불특정 다수에게 건네진다는 그 엄청난 도약이 그때도, 지금도 나는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어쩌면 나는 그 간극 속에 남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어떤 중간세계에 머물면서 ‘긴 팔’을 뻗어 인간과 자연 모두와 닿고 싶다. 일생의 선물 같은 이 시간을 떠올리며 글을 쓸 때면 늘 차오르는 생각이다. 홀로됨과 나눔의 사이에서.
편지·메모·사진을 정리했다
한국으로 가져가는 대신에
나의 기억, 그리움과 더불어
이곳에 영원히 묻고 싶었다 차마 버리지 못한 노트 한 권엔
원망도 했지만 아름다웠던 비
왔다갔다하며 고생시킨 D그룹
고심해 지은 정글 아기의 이름
선물 같은 시간 흔적이 곳곳에… 정리는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꼭 소장해야 할 것만 제외하고 대부분 버리기로 결심한 이상 나는 그 기준을 주저함 없이 과감하게 적용했다. 사실 버린다는 표현은 적절치 않다. 알 수 없는 어느 매립지에서 뒹굴게끔 그냥 휴지통에 넣을 수는 없었기에 나는 이들을 태우기로 결심했다. 읽고 또 읽은 편지, 나의 시선에 닳아버린 사진, 나는 이들을 한국으로 가져가고 싶지 않았다. 여기 이 땅에 묻고 싶었다. 한때 새것으로 빳빳했던 자태는 어느새 열대의 온기와 습기로 풍화작용을 거쳐 이제는 옛 탐험가의 유물처럼 바래고 낡아져 버렸다. 벽에 붙여 놓은 뒷면에 곰팡이가 눌러앉은 것들도 있었다. 이런 물리적 노화 때문에 이 소중한 마음의 기록들을 두고 가려는 것은 아니었다. 야자수가 바람에 출렁이고 안개에 휘감긴 숲이 우뚝 선 이곳에서 나와 함께하였기에 이 대지와 떼어놓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나의 기억과 그리움과 더불어 이곳에 머물러야만 했다. 어쩌면 나를 대신해서 여기와 영원히 하나가 되길 희망했을지도. 헤어지기 전, 하나하나 자세히 보고 있자니 깊은 곳에서 조용한 소용돌이가 이는 것이 느껴졌다. 이러다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 확실했다. 무관심한 듯 쓱쓱 보며 인사하는 수밖에 없었다. 헤어짐이란 건 원래 이런 것이었다. 옆구리에 잔뜩 끼고, 성냥갑을 집고, 터덜터덜 걸으며 나는 바깥으로 향했다.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미소 짓고 싶지 않을 때 사회가 자리를 살짝 비켜주는 것만큼 고마운 것은 없다. 첫번째, 두번째 성냥은 바람이 꺼버렸다. 바람을 등지자 세번째부터 불이 붙었다. 뛸 듯한 반가움에 열어본 봉투, 친근하고 우아한 손글씨가 산소와 만나 허상처럼 사라지기 시작했다. 비 오는 날 우두커니 응시하던 사진, 심심풀이로 모은 그림조각들이 까맣게 후퇴하며 연소되었다. 비가역적인 변화의 작은 무더기 위에는 회색 연기만 아련함처럼 떠 있다가 흩어졌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푸르게 펼쳐진 계단식 논마다 채워진 물은 잔잔했고, 울창한 밀림은 조용히 호흡하고 있었다. 멀리서 검고 마른 농부 한 명이 힘겹게 괭이질을 하고 있었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곳에서 그동안 내가 살았구나. 너무도 당연한 이 문장을 나는 몇 번이고 뒤풀이했다. 아무리 반복에 반복을 거듭해도, 충분치 않았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나는 뭘 들고 다니는 것을 싫어했다. 학창 시절엔 언제나 최소한의 물건만을 지닌 채로 등교했고, 특히 시험 때에는 수성 사인펜 딱 두 자루만 주머니에 꽂고 고사장을 향했다. 유난히 자신감이 넘쳐서가 아니라 더 이상 뭘 본다고 달라질 것도 없다는 생각과 함께, 정말 물건을 지니는 것이 거추장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나는 가방 없이 다니며, 가방을 둘러싼 온갖 수요와 공급의 난리 통이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는 사람이다. 세상을 경험하는데 거치적거리는 사진기도 나에겐 도저히 소지하고 다니기 어려운 물건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사진을 찍는 순간 그 포착이 삶을 풍성하게 해주기는커녕 오히려 세상과의 만남이 변질되고 경험치가 감쇠된다. 연구 장비의 일환으로 가져온 카메라와 친절한 방문객의 촬영 기여가 없었다면 정글에서 지냈던 내 생애 가장 특별했던 이 시간이 어쩌면 시각적으로 전혀 기록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동영상이나 기타 디지털 기기는 거의 언급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나와 무관하다. 이토록 막무가내인 나이지만 글과 그림이라는 고전적인 기록 매체에 대해서는 무한히 호의적이다. 나이로는 옛날 사람이 아니더라도 아날로그적 고집만큼은 스스로 봐도 꼰대다운 데가 있다. 그래서 숲속 생활을 정리하면서도 일부러 챙겨 들고 온 것이 있는데 바로 한 권의 노트이다. 윌리엄 모리스 특유의 자연 모티브 패턴이 앞뒤를 장식하고, 책등에 훤히 드러난 끈으로 묶여 제본된 이 공책에 나는 밀림생활의 생각과 사건을 기록하였다. 실제 글의 양은 얼마 되지 않는다. 언젠가 제대로 쓰고 싶을 때 잊지 않기 위해서 메모나 단서로 남긴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래도 불길을 면한 이 한 권 덕분에 지금 이야기꽃을 피울 기억의 재료를 건진 것이 참으로 다행스럽다. 두서없기도 하고, 서로 연관도 적은 그 시절의 파편적인 이야기들이지만 나름 깨알 같은 재미가 있어 들춰볼 만하다. 주제별로 엮어보니 콜라주를 연상케 하는 글 모음이 되어버렸다.
정글에서 동고동락했던 반려자이자 세상으로 내가 들 고나온 유일한 정글의 산물인 노트. 김산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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