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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예고된 재앙, 도시의 멸종

등록 2006-02-03 16:39

도시가 멸종한다? 언뜻 황당한 얘기 같지만 잘 생각해 보면 그럴 듯합니다. 수많은 도시민들은 거저 사는 게 아닙니다. 막대한 양의 식량과 물, 에너지를 도시 밖에서 공급받고 또 분뇨와 쓰레기, 오염된 공기 등 많은 폐기물을 도시 밖으로 내보냅니다. 이런 기능이 한 순간이라도 멈추면 신문기자들이 바빠지겠지요. 무슨 무슨 '대란'이 바로 이런 거니까요. 또 홍수나 태풍으로부터 도시를 지켜 줄 둑과 댐 등 수많은 시설도 필요합니다. 그래서 어떤 이는 도시를 암세포에 비유했습니다. 꼭 그렇게 나쁜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탐욕스런, 살아있는 존재인 것은 분명합니다.

도시의 죽음은 과거에 흔했습니다. 제어드 다이아몬드는 최근에 번역된 책 <붕괴>에서 그런 사례를 여럿 소개했습니다. 남태평양의 이스터 섬, 북미대륙의 아나사지와 마야 문명, 그리고 그린랜드와 이아슬란드 등에서 부침을 겪은 바이킹의 도시들이 그런 예이지요. 그는 한 도시 또는 문명을 사라지게 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지나친 벌목 등 환경파괴, 기후변화, 이웃과의 교류 단절 등을 들었습니다. 한 마디로, 많은 사람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은 곳에서 환경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거나 고립된다면, 또는 자연재해를 맞는다면 그 도시는 멸망한다는 것이겠지요. 아마 그는 <붕괴>에 새 장을 더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바로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황폐화시킨 뉴올리언스입니다.

<비비시>의 간판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인 '호라이즌'(지평이란 뜻)은 2월2일 '잃어버린 도시 뉴올리언스'를 방영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뉴올리언스가 현대 도시 가운데 멸종의 대열에 들어선 첫 도시라는 시각에서 카트리나 참사를 접근했다고 <비비시 뉴스> 인터넷판이 2일치로 보도했습니다.

미시시피 강 하류의 거대한 습지에 들어선 이 불행한 도시는 정교한 홍수대응 체계를 갖추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 곳에 틈이 생겨 축적돼 왔지요. 그런데 이 체계에 근본적인 헛점이 있었다는 겁니다. 도시 배후에 있는 습지의 기능을 간과했다는 거죠. 애초 강 하구엔 막대한 양의 퇴적물이 홍수 때 떠밀려와 쌓입니다.

이 중 일부는 다시 바다로 씻겨나가지요. 그런데 수백킬로미터 길이의 제방으로 도시를 둘러싸다 보니 흙의 공급이 중단된 것입니다. 게다가 해안은 급속히 깎여 나갔습니다. 강물 수위보다 낮은 사발 모양의 장소에 제방으로 주위를 둘러치고 살아온 형국입니다. 물을 막기 위해 지하수를 퍼내다 보니 지반이 내려앉아, 1878년 이래 4.6미터나 지반이 낮아졌다고 합니다. 카트리나는 이런 위태로운 균형을 깨트린 방아쇠였을 뿐입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뉴올리언스를 다시 복구할까를 두고 논란이 이는가 봅니다. 천문학적 길이의 제방을 쌓고 다시 자연과 맞서볼 것인가, 아니면 현명한 후퇴를 할 것인가입니다. 지구온난화로 해수면을 갈수록 높아지고 홍수의 강도는 커가는데 아무래도 후자가 옳아 보입니다. 도시를 버리자는 얘기가 나오는 배경입니다. 곧 현대도시의 첫 사망인 셈이죠. 먼 나라의 불행한 얘기처럼 들리시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애초 저습지였던 곳을 둑으로 막아 수십만~수백만명이 사는 도시가 수두룩합니다. 서울에도 그런 곳이 적지 않고 문산의 汶자는 '흙탕물 문'이라지 않습니까.

영국 동해안에서는 가라앉는 해안선을 지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해수면이 상승해서가 아니라 지난번 빙하기 때 북쪽을 누르던 빙하가 사라지자 무게 균형이 깨어져 눌렸던 북서쪽이 솓아오르는 반면 남동쪽은 내려앉기 때문입니다. 영국 정부는 처음 둑을 단단히 쌓아 해안을 보호하려 했지만 그런 대책이 거대한 자연의 움직임을 막는데 얼마나 무력한지를 깨닫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요즘엔 곳곳에서 '전략적 후퇴'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제방 일부를 허물어 바다가 들어오게 해서 다른 곳의 제방을 보호하고 습지를 범람원으로 만들어 생태학적 가치를 높인다는 전략입니다.

지난번 한일 월드컵 때 일본 메인 경기장 주변에도 이런 식의 홍수 대책을 세우더군요. 경기장 주변의 땅을 사 하천 범람원으로 만드는 겁니다. 아주 쉬워 보이지요? 하지만 이미 개발된 곳을 자연에 넘겨주는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땅값을 지불해야 합니다. 조 단위의 돈을 단지 땅을 사는데 들였더군요. 물론 범람하는 기간은 홍수 때 며칠 뿐이기 때문에 나머지 기간엔 생태공원이나


스포츠, 산책용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수세적이지만 현명한 대책이 언제나 나올까요. 아마 땅 값이 어지간히 오른 뒤가 아닐까요?

<비비시 뉴스> 기사 원문 보기

New Orleans 'risks extinction' http://news.bbc.co.uk/2/hi/science/nature/4673586.stm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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