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노동시장연구회가 12일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 호텔에서 노동시간 관리단위와 임금체계 개편을 핵심 내용으로 한 권고문을 발표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윤석열 정부가 노동시장 개편이라는 배에 돛을 달았다. 미래노동시장연구회가 12일 고용노동부에 권고문을 내면서다. 정부는 권고문을 토대로 법 제도 개편에 나서기로 했다. 이제 바람만 잘 불면 윤석열표 노동시장 개편은 순항할까?
쉽지 않아 보인다. 연구회는 권고문에서 세가지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며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첫손에 꼽았다. 그런데 막상 연구회가 내놓은 주요 대책은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과는 동떨어진 것이다. 연장근로시간 관리단위 변경은 당장 장시간 노동을 조장한다는 논란을 불렀다. 임금체계 변경은 사기업의 자율적인 영역으로, 정부가 감 놔라 대추 놔라 하기 어렵다.
연구회는 대신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책을 추가 과제로 넘겼다. 그런데도 윤석열 대통령은 권고문 발표 이튿날 국무회의에서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며 권고문을 토대로 조속히 정부 입장을 정리하고 개혁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권고문을 안 읽어본 듯하다. 연구회에서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에 대한 답이 나오지 않은 까닭은 뻔하다. 노동시장만 들여다봐선 이중구조 개선책이 나올 수 없다. 맨 위 물줄기에 있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원·하청 수직계열화, 불공정 거래와 이로 인한 이윤 독점 등 경제 구조의 문제를 해소하는 게 먼저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라는 삼각형의 밑변은 건드리지 않은 채 그 위만 두들겨선 답을 찾을 수 없단 얘기다. 박근혜 정부 때 경제민주화는 내던지고 결국 ‘정규직 과보호론’으로 흘러 이중구조 개선에 실패한 것도 이런 한계 때문이다.
취약 노동자들이 결사체를 만들어 법의 테두리 안에서 사용자와 자율적인 교섭을 통해 노동조건 개선에 나서게 하는 것도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좋은 방안이다. 화주와 운송사, 차주, 공익위원이 모인 안전운임위원회에서 운임을 결정하는 안전운임제가 좋은 예다. 하지만 이 정부는 이마저도 걷어찰 태세다. 교섭 상대방을 찾지 못해 거리를 헤매는 수백만 노동자한테 사용자를 찾아주고 평화적으로 교섭하라는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엔 기를 쓰고 반대한다. 정부는 지난 7월 불거진 대우조선해양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 뒤 조선업 이중구조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지난달 구성한 상생협의체에도 노동자는 빼고 원청과 하청업체만 넣었다.
돛은 올렸으되 배가 산으로 갈 판이다.
전종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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