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자유 이야기 /
아무런 생각 없이 쓰던 생리대가 문제가 되기 시작한 것은 결혼하고 남편과 영월에서 목회를 시작하면서부터입니다. 15~6년 전 그곳 시골교회는 화장실 오물을 교인들이 직접 퍼서 거름더미에 버리곤 했습니다. 그러니 도시처럼 생리대를 화장실에 버릴 수도 없었습니다. 쓰레기차가 지금처럼 곳곳에 다니던 때가 아니라서 생리대만 모아놓았다가 구석진 곳에서 그냥 태우든지 해야 하는데, 일회용 생리대는 완전히 타지도 않고 흉물스럽게 엉겨붙어 시커먼 덩어리를 고집스레 남겨놓으니 참으로 처치가 곤란한 쓰레기였습니다.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것은 또 있었습니다. 일회용 생리대 값이 만만치 않다는 것입니다. 생리대는 우리가 확인할 길 없는 효능들을 더하면서 가격이 자꾸 올라갔습니다. 게다가 어떤 상품의 광고모델로 나온 여성이 더 깔끔하고 활동적이며 세련되어 보였던가 하고 마켓 진열대 앞에서 서성이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보이지 않는 자본의 손아귀에 조종당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딸이 초등학교 5학년이 되는 해, 아이는 드디어 자신의 속옷에 묻어난 붉은 몸엣것을 보이며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그러나 난 딸아이와 나눌 수 있는 이야깃 거리가 하나 더 늘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들떴습니다. 아이의 몸을 성스러운 마음으로 우러르며 면 생리대를 정성껏 접어 아이 앞에 무릎을 꿇어 속옷에 대 주었습니다. 아이의 첫 경험을 ‘소중하게’, ‘자연스레’ 받아들이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아이와 함께 면 생리대를 처음 쓰던 날, 마음이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었습니다. 나를 옭아매 왔던 모든 것으로부터 일순간에 해방되는 기분이었습니다. 매번 슈퍼마켓 진열대 앞에서 서성거릴 필요가 없어 자유로웠고, 비싼 생리대 값을 치르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더 이상 내가 쓴 생리대를 보이지 않게 꼭꼭 싸서 버리지 않아도 되었고, 몸과 통하는 바람을 막지 않아 자연과 소통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결단을 쉽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어린 시절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중학교 1학년 무렵, 어머니는 내게 하얀 면 기저귀를 건네주었습니다. 그때 경험이 나에게 면 생리대를 사용하도록 마음을 이끌었습니다. 아이도 면 생리대를 더 이상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겠죠. 회복해야 할, 되돌아가야 할 원래 삶의 방법이라 생각하겠죠. 마흔살이 넘은 나도 가슴을 옥죄는 속옷 벗어버리기, 머리 파마하지 않기 등 새로운 삶의 목록을 하나하나 늘려가면서 소박한 삶이 주는 자유를 맛보고 있습니다. 내게 나이듦은 새로운 삶에 도전하는 용기를 주는 선물과도 같습니다.
강현/김포시 월곶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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