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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부회장이요? 그냥 ‘가위바위보’로 뽑아요”

등록 2006-03-05 17:07수정 2006-03-06 16:36

전성호/서울 휘문고 교사
전성호/서울 휘문고 교사
선생님이 말하는 교실 안팎

말이 좋아 회장, 부회장이지 도대체가 하는 일이 없는 게 고등학교 회장, 부회장이다. 고작 잡비나 걷고, 수업 시작과 끝에 차렷, 경례 구령을 붙이는 정도. 하지만 아무리 할 일 없는 회장일지라도 명색이 학급의 ‘얼굴 마담’이다. 반 아이들을 대표해서 얻어터지는 것도 회장 몫이요, 선생님들이 문제 풀 때 심심하면 불러내는 애가 또한 회장이다.

그 회장과 부회장 자리를 놓고 아이들이 그려내는 선거 풍속도를 보면 우리나라 총선이나 대선과 하나 다를 바 없다. 입후보자에 대한 유권자들의 철저한 무지와 무관심, 그리고 즉흥적인 선택이 그렇다. 하긴 모든 걸 신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아이들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냥 쓰윽 봐 가지고, ‘저 애 성가시게 굴지 않았어. 저 애 햄버거 대신 피자 쐈어.’ 하면 무조건 한 표다.

대개 학기 초에는 임시 회장으로 지목된 아이가 회장되기 쉬운데, 그럼 그 임시 회장은 또 누가 되느냐. 십중팔구 전년도에 회장, 부회장을 역임한 아이가 된다. 그러면 전년도에 회장, 부회장은 또 누가 되느냐. 그 전해에 성적 좋은 아이가 된다. 결국 그 밥에 그 나물인 셈이다.

“자, 우리 어떻게 할까? 회장, 부회장을 따로 뽑을까? 아니면 그냥 한꺼번에 다 투표해서 득표수가 제일 많은 아이를 회장, 차점자를 부회장 해버릴까?” “한꺼번에요.” 묻는 내가 잘못이지.

“햄버거 확실하게 쏘겠습니다.” “저는, 피자에 음료수까지 쏘겠습니다.” “숙명 여고와의 미팅을 확실하게 책임지겠습니다.” 의지는 좋았지만 미팅 건을 내세운 아이는 보나마나 낙선이다. 왜냐? 산전수전 다 겪은 아이들이라 ‘피자 뿌라쓰 음료수’를 회장으로 낙점할 게 뻔하다. “박수!”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기껏 뽑아 놨더니, 회장은 벌점이 많아 ‘자격 미달’이라고 학생과로부터 통보가 온 거다. 그러니 반 아이들에게 피자 쏜다고 약속까지 한 아이에게 ‘관둬’라는 말을 해야 하니 담임 처지가 여간 난처한 게 아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재선거를 어떻게 치르냐는 거다. 투표를 다시 하자니 만약 지금의 부회장이 회장으로 승진하거나 아니면 그냥 부회장으로 남게 되면 모르지만, 여차해서 탈락하면 그건 자격 미달된 회장 때문에 괜히 부회장까지 피해를 보는 셈. 그리고 지금 부회장이 자기 시간 빼앗기는 것이 싫어 오히려 회장 안 한다고 하면 이 역시 곤란한 일 아닌가.(회장도 그렇지만 부회장은 지인짜 하는 일 없다) 그리고 설사 회장 한다고 해도 그럼 차점자 누구를 부회장으로 임명하냐는 거다. 차점자들의 득표수라야 기껏해야 두세 표 정도였으니 그 순위란 것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어떻게 할까 고민, 고민하다 그래도 아이들에 의한, 아이들을 위한, 아이들의 선거라 아이들에게 물어본다.


“야들아, 할 수 없이 또 투표를 해야겠는데 우리 어떻게 할까?” “그냥 부회장이 회장 되고 부회장은 차점자끼리 ‘가위, 바위, 보’ 하라 그러세요.” “!”

ohyeah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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