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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봄마중…벌레마중…설레는 마음

등록 2006-03-26 18:39수정 2006-03-29 11:32

붉나무와 떠나는 생태기행
붉나무와 떠나는 생태기행
붉나무와 떠나는 생태기행

학교 갔다 오는 길, 숲 옆 고갯길에서 나무는 며칠 동안 네발나비가 날아다니는 걸 보았지. 이른 봄, 벌레들이 잠에서 깨어나고 있어. 부지런한 네발나비는 일찍도 깨어났어. 집 목욕탕 세면대 위엔 집 안에서 겨울을 난 톱다리개미허리노린재가 돌아다녀. 아직 잠이 덜 깨었는지 느릿느릿 돌아다녀. 슬슬 벌레들도 깨어나기 시작하고 봄맞이 대청소나 할까 해서 방안에 있는 형광등 갓을 떼어내 보니, 그 안엔 온통 벌레들 투성이야. 날도래, 무당벌레, 조그만 나방이나 벌 따위. 작년에 불빛을 찾아 날아 들어왔다 죽은 벌레들이야. 빈 달걀판에 나눠 담고 하나하나 이름을 붙여 뒀어. 지난 가을 마당 담벼락에 붙여놓은 무당거미 하얀 알집은 겨울을 잘 났을까? 생각 난 김에 후다닥 밖으로 나가 살펴보니 아직 깨어날 생각이 없는 모양인지 잠잠.

흙더미 헤치는 나무랑 단.
흙더미 헤치는 나무랑 단.
봄 햇살이 따끈따끈 봄바람이 살랑살랑 봄이 왔어. 벌레들아, 어서어서 일어나. 벌레들이 얼마나 깨어 나왔을까? 봄 마중 벌레 마중 가자. 어디어디서 네발나비가 날아다니고 있을까? 뒷산으로 벌레 찾으러 나서는 길, 개암나무 노란 수꽃이 벌써 축축 늘어졌어. 수꽃 옆에 빨갛고 아주 조그만 암꽃이 부끄러운 듯 살짝 꽃을 드러내 놓았어. 가장 일찍 봄을 알리는 생강나무는 그럼 그렇지. 부지런히 노란 꽃을 틔워 여기저기 오종오종 달고 있어. 차곡차곡 한 짐 싸서 긴 겨울 여행을 떠났던 겨울눈들이 툭툭 벌어지며 겨울 짐들을 풀어내. 싱싱한 초록빛 찔레나무 가지엔 손톱보다 조그만 새싹들이 삐죽삐죽 올라왔어. 조팝나무 싹도 나오고 인동 싹도 나오고. 얼마 안 있으면 숲은 여러 가지 색으로 단장을 할 거야.

가만, 마른 풀 더미 위에 뭔가 움직여. 거미 떼가 와그르르 발발발. 우아, 우글우글 많기도 해. 땅 속에서 겨울을 난 벌레들은 어떡하고 있을까? 산비탈 흙을 조심스레 헤쳐 보니까 벌레가 있어. 어른벌레로 겨울을 난 꽃벌, 노린재, 좁쌀메뚜기가 화들짝 놀라 허둥지둥 도망가. 겨울잠에서 덜 깨어 조금 느릿하긴 하지만. 미안, 얼른 보고 흙을 살살 다시 덮어 주었지. 산 아래 찰흙 속에선 하얗고 통통한 애벌레를 보았어. 헛발이 없는 걸 보니 딱정벌레 애벌레인 듯 해. 나무랑 단이는 벌레보다 찰흙이 더 좋은지 가지고 나선 잠자리채에다 찰흙을 잔뜩 담아 들고 갔지. 이른 봄 잠자리채를 들고 돌아다니는 나무랑 단이 모습이 뜬금없어 보이는지 지나가는 사람들이 자꾸 흘낏흘낏. 그나저나 네발나비를 만날 수 있을까 했더니 날씨가 꾸물꾸물해서인지 보이지 않아. 네발나비가 알을 낳는 환상덩굴이 무성하게 자라던 자리를 찾아가 보았더니 떡잎 두 장이 길쭉한 환상덩굴 새싹이 어느새 많이 자라나 나왔어.

집 가까이에 있는 절에 가니 햇살 따사로운 앞마당에 하얀 냉이 꽃이랑 남보랏빛 꽃마리 꽃이 피었어. 냉이 꽃 위로 비단노린재 한 마리가 올라왔어. 쌍살벌(왕바다리) 여왕벌이 땅위에서 굼실굼실. 잠이 덜 깨 비실비실해 보이지만 겨울을 견뎌낸 여왕벌은 이제 어엿한 왕국을 만들 거야. 활기차게 붕붕 날아다니는 벌도 있어. 몸집이 커다래. 별명이 똥파리 단이한테 진짜 파리가 한 마리 달라붙었어. 먹고 있는 하얀 떡을 한 입 나눠 먹자고 온 걸까? 형님, 나도 떡 한 입 주쇼! 단아, 동생 파리한테 떡 한 입 줘. 하하하, 단이를 놀려먹었지. 스님이 지나가다 노린재를 보고는 무슨 벌레냐고 물어보셔. 혹시 냄새나는 벌레 아니냐고. 법당 안에 엄청 많이 들어온다고. 노린내 풍기는 노린재예요. 그런데 어디선가 무당벌레 냄새가 나. 땅 아래를 내려다보니까 담벼락 아래에 남생이무당벌레, 무당벌레가 붙어 있어. 떼를 지어 모여 겨울을 나고 다른 무당벌레들은 흩어지고 몇몇이 남아 있나 봐. 남생이무당벌레는 겨울을 못 나고 죽어 있었어.

벌레 찾으러 나선 길, 네발나비를 못 만나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른 봄 겨울잠에서 일찍 깨어난 부지런한 벌레들을 많이 만났지. 자그맣게 일어나고 있는 봄도 느끼고 말이야. 봄이 우리 코밑에 다가와 있어. 봄은 참 확확 변화가 많은 계절이야. 엄청 빨리빨리 바뀌니까 게을러선 안 돼. 봄을 느끼려면 우리도 부지런해야 해. 나무랑 단이는 잠자리채에 담아온 찰흙을 마당에다 펼치더니 조물딱조물딱 신이 났어. 물을 받아서 뿌리고 그릇에다 다시 질척한 찰흙을 퍼 담고. 흙이 그렇게나 좋을까? 나무야, 단아, 오늘 무슨 벌레를 만났니?

na-tr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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