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8 책세상 / <전갈의 아이>(비룡소)
세상과 격리되어, 이유도 모른 채 오두막에서 숨어 지내던 소년이 어느 날 다른 사람들에게 발견된다. 그 뒤 6개월 동안 이 소년은 모진 학대와 멸시를 당하며 짐승 취급을 받다가 어느 날 한 노인에 의해 그 끔찍한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도대체 이 소년은 누구이고, 이 노인은 누구인가? 소년은 왜 사람들에게 짐승 취급을 받는 것일까?
읽는 이의 궁금증을 한없이 자극하면서 시작한 이야기는 절대로 친절하게 모든 걸 한번에 설명해 주지 않는다. 그래서 독자는 주인공 소년 마트와 함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주위를 관찰하며, 끊임없이 뒷이야기가 어떻게 될까 생각을 하며 읽어야 한다. 700쪽이 넘는 긴 이야기인데도 끝까지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런 매력 때문이다.
마트는 과학기술이 지금보다 훨씬 발달한 미래에, 미국과 멕시코 사이에서 마약을 재배하는 아편국이라는 가상의 나라에서 절대 권력을 가진 마테오 알라크란(전갈), 일명 엘 파트론(마트를 보호해 준 바로 그 노인이다!)의 복제인간으로 만들어졌다.
소설과 달리 현실에서 인간 복제의 문제는 아직도 논쟁 중인 과제이다. 난치병 치료나 생명 연장 가능성 등 긍정적인 필요성도 많이 제기되고 있으나, 인간을 실험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 복제 인간을 인간으로 볼 것이냐 하는 점 등 해결해야 할 윤리적인 문제가 아직 많이 남아 있다. 이 소설에서는 복제인간(클론)의 뇌를 파괴하여 클론을 가축으로 분류하는 법을 시행함으로써 민감한 윤리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있으나, 과연 인간 복제가 현실화되면 우리는 어떤 방법을 택해야 할까 좀더 고민해 봐야 할 것 같다.
주인공 마트는 엘 파트론의 의지 때문에 클론인데도 뇌가 파괴되지 않았다. 그리고 엘 파트론과 똑같은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인간이면서도 클론이라는 이유로 가축 취급을 받는 것이 부당함을 느낀다. 또한 엘 파트론이 자신의 장기가 필요해 언제라도 자신을 죽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마트는 인간으로서의 자신의 존재 가치를 입증하려고 노력한다. 아편국을 벗어난 후반부 이야기에서 마트는 친구들과 더불어 살아갈 줄 아는 진정한 인간으로 거듭나게 된다.
이 작품은 복제라는 문제를 떠나서도 자아의 정체성 찾기라는 측면에서 한 편의 훌륭한 성장소설이다. 그러나 복제 인간의 문제, 인간을 기계처럼 철저히 통제하는 아편국의 모습 등에서 과학 기술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어 그 의미가 더 큰 작품이다. 조지 오웰의 <1984>,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와 함께 읽으며 과학기술의 발달이 인류의 삶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 나가야 할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박정해/전국학교도서관담당교사모임 회원, 서울 성재중 교사
박정해/전국학교도서관담당교사모임 회원, 서울 성재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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