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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피장파장의 오류’에서 벗어나는 길

등록 2006-04-23 16:52수정 2006-04-24 14:06

시사로 잡는 논술

“여당이든 야당이든 다 그 놈이 그 놈이야. 뽑아 놓으면 뭐해! 선거 때만 국민들이 보이고, 당선되면 국민들은 안중에도 없잖아! 난 이번 투표일에도 투표 안 할 거야! 어디 조용한 데 여행이나 다녀올 거야!”라며 투표하지 않는 원인을 정치인, 남의 탓으로 돌리는 사람들이 있다. 과연 이 사람의 주장은 타당하고 설득력이 있는 것일까?

<맹자>에도 전쟁터에서 오십 보 도망한 사람과 백 보 도망한 사람의 차이는 있으나 도망쳤다는 사실에서는 본질적으로는 같다는 오십보백보(五十步百步)의 이야기가 나온다. 하지만 오십 걸음 도망한 자는 백 걸음 도망한 자보다 그래도 덜 비겁한 것이고, 백 걸음 도망한 사람은 오십 걸음 도망한 사람에게 원인을 제공하기도 한 것이기 때문에 더욱 비난받아야 한다.

이와 같이 ‘양비론’이나 ‘양시론’의 논리로 자신의 부당한 행위를 정당화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 곳곳에 있다. 양비론이란 맞서 있는 양쪽의 주장이나 태도가 다 틀리다고 하는 견해나 주장을 말하는 것이고, 양시론이란 맞서 있는 양쪽의 주장이 다 옳다고 하는 논리이다. 하지만 이런 논리는 정당성을 갖지도 문제를 해결해주지도 않는다.

말과 글을 언어라 하고 언어를 학문의 대상으로 삼는 학문이 논리학이다. 이 논리학을 공부하는 이유는 언어의 정확한 사용을 통해서 오해와 갈등을 줄이고 시시비비를 올바르게 하기 위해서다. 논리학의 오류론에는 두 개의 잘못이 하나의 정당화를 만드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오류인 ‘피장파장의 오류’가 있다. 자신의 주장이나 행동이 비록 잘못되기는 했지만 다른 사람도 같은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에 괜찮다며 자신의 행동이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야당이고 여당이고 다 잘못했다고 해서 투표로 심판하지 않고 투표를 포기하는 것은 민주시민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다. 야당의 잘한 점과 못한 점, 여당의 잘한 점과 못한 점을 분명하게 밝혀서, 잘한 점은 더 잘하게 하고 잘못한 점은 잘할 수 있도록 구분해 주어야 하는 것이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고 피장파장의 오류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잘하는 사람은 더욱 잘하라고 격려하고 못하는 사람은 잘할 수 있도록 비판하며 잘못에 대한 책임을 추궁해야 한다. 그 책임 추궁의 방법과 국민의 심판이 투표이다. 너무나 많은 후보가 난립하기 때문에 누가 누구인지를 알기도 어렵기 때문에 투표하지 않겠다는 말도 핑계일 뿐이다. 인터넷을 통해서 후보들의 면면을 살펴 볼 수 있고 사람들을 통해서 알음알음 알 수도 있는 일이다. 권리는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수고하고 지키는 노력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제 양비론과 양시론을 통한 정치적 냉소주의는 누가 어떤 점에서 잘하고 못했는지를 구분하는 투표를 통해서 심판하고 극복해야 한다. 그리하여 성철 스님의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라는 말이, 진실은 진실이고 거짓은 거짓이라고 구분할 수 있는 의미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그리고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자신의 권리인 투표는 행사해야 한다.

이수석/인천 동산고 철학교사
이수석/인천 동산고 철학교사
선거에 나서는 출마자들이 공약(空約)을 남발하지 않고 지킬 수 있는 공약(公約)만을 내세우고, 그런 정치인들이 봉사하는 지방자치시대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자신의 권리를 당당하게 행사해야 한다.

이수석/인천 동산고 철학교사, <재미있는 철학수업>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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