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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봄 다 가기전에 아까시꽃 따 먹으러 가자

등록 2006-05-28 16:39수정 2006-05-29 14:19

붉나무와 떠나는 생태기행 /

한바탕 비가 쏟아지고 나니 땅바닥 둥그렇게 고인 빗물 가엔 노오란 가루가 둥둥, 한창 송화가루 날리는 계절. 팥배나무 하얀 꽃 지고 산딸기 하얀 꽃 시들시들, 막 여름으로 넘어갈락말락 하는 계절. 열어둔 창문 밖으로 슬며시 밀려 들어오는 향긋하고 달짝한 냄새. 흐흠~ 뒷산 언덕으로부터 솔솔 풍겨오는 아까시 꽃향내. ‘동구 밖 과수원길 아카시아 꽃이 활짝 폈네 하아얀 꽃 이파리 눈송이처럼 날리네 향긋한 꽃 냄새가 실바람 타고 솔솔~’ 입에서 노래가 절로 흥얼흥얼. 아까시 꽃 지면 이제 봄은 끝나고 여름이 시작되지.

얘들아, 봄 다 가기 전에 아까시 꽃 따 먹으러 가자! 뒷산 언덕 위 아까시나무들에 하얀 꽃이 주렁주렁, 아니 치렁치렁 달렸어. 아~ 달짝지근한 아까시 꽃향내에 머리가 다 어질어질. 꽃향내 짙은 만큼이나 아까시 꽃은 달기도 달지. 꽃 가운데 단 맛이 가장 으뜸. 어찌나 달던지 옛날엔 따 먹고 또 따 먹고. 배 아프다고 어른들 말려도 단 맛에 굶주린 아이들 따 먹고 또 따 먹고. 하지만 나무랑 단이는 아까시 꽃이 낯설어서 먹는 데 주저주저. 벌써 다른 단 맛에 길들여진 혀는 아까시 꽃 단 맛 정도는 느끼지도 못 해. 지나가던 아저씨 아까시 나무 아래서 서성거리시더니 닿을 듯한 가지에 손을 뻗어 아까시 꽃 한 송이 따 드시고 가시지. 어릴 적 그 아까시 꽃 맛 그리워서.

위부터 아까시 꽃 모둠, 튀김, 버무리
위부터 아까시 꽃 모둠, 튀김, 버무리
아까시 이파리는 작은 잎 여러 장이 마주 붙어 한 개 잎을 이뤄. 커다란 아까시 이파리 하나씩 따서 작은 잎 개수를 똑같이 맞춰. 자, 가위바위보! 하고는 이긴 사람이 잎을 한 개씩 떼 내는 거야. 가장 먼저 잎을 모두 떼 내는 사람이 이겨. 헤헤헤, 이번엔 아빠가 꼴찌다. 좀더 어렵게 하고 싶으면 잎자루를 손으로 잡고 엄지랑 검지로 튕겨서 잎을 떼 내. 잎 없이 줄기만 달랑 남은 걸 가지고는 아까시 파마를 뽀글뽀글. 가지에다 머리카락을 돌돌 말았다가 사르르 풀어주면 머리카락이 뽀글뽀글.

아까시나무 줄기엔 뾰족한 가시가 많아. 하늘 위로 곧게 쭉 뻗어 자란 나무는 가시가 별로 없지만, 아까시나무를 베어 내려고 가지를 막 쳐내 줄기가 무성하게 올라온 데는 뾰족한 가시가 다닥다닥 붙었어. 자꾸 쳐내려고 하니까 성질이 사나워져 그래. 아까시나무 가시는 잎이나 줄기가 바뀐 거라서 똑 따면 잘 떨어져. 똑 떼 낸 가시에 침을 살짝 발라 이마에 붙이면 뿔 달린 도깨비. 가시 한 개는 한 뿔 도깨비, 가시 두 개는 두 뿔 도깨비, 가시 세 개 단이는 세 뿔 도깨비닷!

아까시나무 그늘 아래에 돗자리를 깔았어. 하늘 위쪽에는 하얀 아까시 꽃이 치렁치렁한데, 땅 아래쪽에는 하얀 찔레꽃이 소복소복하고 하얀 국수나무 꽃이 수북수북해. 오동통 물오른 찔레꽃 새순이나 따 먹어 볼까 했는데 벌써 억세져서 먹기가 그래. 조그만 찔레꽃 잎을 따 먹었더니 새순처럼 맛이 시큼달짝해. 나무랑 단이는 단 맛 나는 아까시 꽃보다는 시큼한 찔레꽃 잎을 더 좋아해. “얘들아, 여기 며느리배꼽 이파리가 벌써 자랐다!” 나무랑 단이가 반가워하며 좋아해. 지난 가을 입술에 풀색이 배도록 엄청 따 먹었거든. 그만 먹으라고 말려도 몰래 따 먹었어. 나무랑 단이는 며느리배꼽 신맛이 좋나 봐.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계속 따 먹었으니 말이야.

곧고 높게 쭉 뻗은 아까시나무 꼭대기에서 뻐꾹뻐꾹 뻐꾸기 울음소리가 들려. 붉은머리오목눈이 둥지에다 몰래 알을 낳아 놓았나?(뻐꾸기의 탁란) 뻐꾸기는 우리 머리 위를 왔다 갔다 하며 계속 울어대. 호호 호이횻 호호 호이횻, 구슬처럼 맑은 이 새 소리는 높은 나무 꼭대기에 꼭꼭 숨어사는 꾀꼬리 울음소리야. “잠깐, 저기 노란 꾀꼬리가 보인다!” 나무랑 단이는 꾀꼬리를 보려고 살금살금 다가가 보았지만, 꾀꼬리는 여간해서 쉽게 볼 수 없어. 녹음이 우거진 나무 사이로 다시 꼭꼭 숨어 버렸지. 어디선가 소쩍소쩍 소쩍새 소리도 들려. 멀리서 들리는 소리야. 이 소쩍새는 밤낮이 바뀌었나 봐. 밤에 울어야 하는데 낮에 울고 있으니 말이야.

아까시 꽃향내 가득한 숲을 나오며 나무랑 단이 손엔 아까시 꽃이 가득 든 통에 들려 있었지. 집으로 돌아와 아까시 꽃 잔치를 거나하게 벌였어. 아까시 꽃 버무리, 아까시 꽃 튀김. 거기다 토끼풀 꽃 튀김까지 곁들여서. 참 맛있는 봄이야. 봄아, 내년에 또 만나자.


na-tr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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